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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팔려야 입에 풀칠이라도 …” ‘독자님’ 입맛에 맞춘 소설 주인공

구소련 인민 예술가 레베제프가 그린 러시아 비평가 벨린스키(1948)

구소련 인민 예술가 레베제프가 그린 러시아 비평가 벨린스키(1948)

나는 러시아에 가면 보통 전철로 이동한다. 낡긴 했지만 정확하고 신속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는데 전철만한 게 없다. 전동차 안 풍경은 흥미롭다. 스마트폰 시대임에도 러시아인들은 늘 무언가 읽는 듯하다. 종이책도 읽고 스마트폰이나 기기로도 읽는다. 아니 적어도 내 눈에는 책 읽는 러시아 사람만 보인다. 조금은 선입견 때문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을 알아본 당대 최고의 비평가 벨린스키는 일찌감치 문학 작품의 독서를 민족 정체성과 연결시켰다. 19세기 러시아에서는 모든 게 문학으로 흡수됐다. 철학도 사상도 윤리도 정치도 모두 문학이라는 큰 물줄기의 지류였다. 문학은 문화와 교양의 동의어였다. 벨린스키에 의하면 러시아인을 러시아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혈연이나 신분이 아니라 러시아 문학의 독서다. 문학은 수 세대를 교육했고 도덕을 구축했다. 교육의 핵심은 문학에 대한 사랑이며 오로지 그것만이 러시아를 통일시켜준다는 것이다. 무척 감동적으로 들리는 주장이다. 벨린스키의 말에서 시작된 ‘러시아=문학=독서’라는 등식이 뇌리에 박힌 후 내 눈에 책 읽는 러시아인만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나 한편 어느 나라 국민이 얼마나 더 많이 책을 읽는가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얼마나 읽느냐보다 무엇을 읽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국민 평균 독서량이나 독서 시간은 어느 한도 안에서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게다가 통계자료를 보면 벨린스키의 주장은 일종의 ‘희망사항’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러시아의 문맹률은 1897년 센서스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 시점에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인구의 21%에 불과했다. 같은 시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프랑스의 경우 읽고 쓸 줄 아는 인구는 90%에 육박했다. 전문가들은 도스토옙스키가 문단에 데뷔할 당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5~10%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것도 간신히 글을 깨친 사람까지 포함시켜 그렇다. 수준 높은 논문이나 문학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독서 시장의 판도와 직결됐다.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읽고 쓸 줄 알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책에 돈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이 먹구름처럼 포진해 있다는 뜻이다. 책을 쓰는 저자, 그 책을 논평하는 평론가, 출판사 및 잡지사의 발행인과 편집자에게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 러시아 최초의 본격 문예지는 1834년 스미르딘이 창간한 월간 ‘독서문고(Library for Reading)’였다. 단행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문학을 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해 개발된 새로운 창구였다. 정기 구독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연 50루블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그 해 ‘독서문고’의 정기구독자 수는 5000명 정도였다. 184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독자는 3000명 선으로 떨어졌고 재정난에 허덕이던 스미르딘은 파산했다. 편집장과 기고자에게 너무 후하게 고료를 지급한 것이 파산 이유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구독률 하락이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지라르댕이 창간한 신문 ‘라 프레스’가 7만 정기 구독자를 확보하고 1863년 매각 당시 300만 프랑의 순이익을 남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판매부수는 출판사와 잡지사, 저자와 평론가 모두에게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특히 도스토옙스키 같은 ‘전업 작가’의 경우 독자는 시쳇말로 ‘밥줄’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만 그도 먹고 살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에 있는 대형 서점 돔크니기(윗 사진 오른쪽 검정 건물)와 서점 내부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에 있는 대형 서점 돔크니기(윗 사진 오른쪽 검정 건물)와 서점 내부 모습

빈털터리 소설가의 관심사는 오로지 판매부수  
톨스토이는 800명의 남자 농노가 딸린 영지를 상속했고 투르게네프는 4000명의 농노가 딸린 거대한 영지를 형과 공동으로 상속했다.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아버지가 죽은 뒤 상속받은 돈이 있었지만 순식간에 탕진해버렸다. 공병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해서 보잘것없는 월급을 받다가 그나마 그만 두었다. 이 시점에서 그는 오로지 자기 펜대에만 의지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합류한 것이다.
 
그의 육필 원고 여백에 자질구레하게 남아있는 숫자들이 원고료와 판매부수와 생활비 계산의 흔적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형에게 보낸 편지 역시 판매 부수 얘기로 가득 차 있다. “2000부를 찍으면 1500루블, 그 이상은 아니야. 그러니까 1년 반 동안 장편을 쓰면 계속 책이 팔리는 한 나는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지.” “독자는 게걸스럽게 내 책을 읽을 거야. 1년 내에 2000부는 팔릴 거야. 권당 1루블 25코페이카라고 치면 1년에 2000루블이 생기는 거야!”
 
판매부수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을 때면 그는 형에게 공포와 불안을 호소했다. 좋은 책을 쓰기에 앞서 팔릴 책을 써야만 한다고 구시렁거렸다. “당장 입에 풀칠할 일을 걱정해야 하는 판에 명성이 무슨 소용이겠어!”
 
어떤 편지에서는 심지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간 독일 시인들의 이름을 들먹거리기까지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딱히 누구를 위해서 쓴다는 생각은 없다. 나를 위해서 쓴다. ‘내가 즐기기 위해서 쓴다’는 기본적인 자세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는데, 도스토옙스키가 들었더라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독자의 의미가 너무나 커서였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첫 소설부터 주인공을 ‘책 읽는 인간’으로 설정했다. 하급관리에서 대학생까지 그의 인물들은 항상 무언가 읽는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성경책도 읽고 소설도 읽고 시도 읽는다. 그들의 인간적인 품격이나 이념이나 야망은 읽는 책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마치 포이어바흐의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를 개작해서 “당신이 읽는 책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라고 못 박는 것 같다.  
 
“책만 읽는 것과 책을 안 읽는 것은 비슷하게 위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무조건적인 독서예찬은 하지 않았다. 독서는 소통과 고립 둘 다를 의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만나고 사랑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책을 빌려 주고, 빌려 읽고, 읽은 책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것은 그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여주인공 바렌카만 해도 책 덕분에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게 된다. 그녀가 15세 때 포크롭스키라는 이름의 가정교사가 입주한다. 몇 날이고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포크롭스키를 그녀는 남몰래 연모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외출한 틈을 타 그의 방에 들어가 본다.
 
“나는 책의 무게로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휘어진 기다란 선반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화가 나고 슬펐다. 나는 그의 책을 마지막 한 권까지 다 읽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그가 아는 것을 나도 다 알아야 그와 우정을 나눌 자격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두 사람의 사랑은 포크롭스키가 그녀에게 책을 빌려주면서 무르익어간다. 남자가 읽은 책을 자기도 다 읽겠다고 나서는 바렌카의 모습은 백 마디 말보다 더 절절하게 사랑의 강도를 확인해 준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에 관해 알고 싶어진다. 그 사람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읽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독서는 사랑의 한 방식이다.
 
반면 독서는 고립을 의미할 수도 있다. 벨린스키는 37세로 요절할 때까지 수시로 문학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독서가 러시아인의 “고결한 도덕적 기쁨”이자 “생생한 황홀경의 원천”이 되길 꿈꾸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속에서 “책을 많이 읽자”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 책을 많이 읽은 인물이 적게 읽은 인물보다 반드시 더 훌륭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어설픈 독서, 잘못된 독서, 현실과 괴리된 독서에 대해서 경고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벨린스키와 도스토옙스키가 갈라져나가는 것도 이 지점일 것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독서는 인물들을 무기력하고 위험한 이른바 ‘몽상가’로 변형시킨다. 세상과 교감하거나 소통할 수 없는 인물들이 책의 세계에 칩거할 때, 요즘 식의 ‘은둔형 외톨이’가 탄생한다. 그들은 ‘책에서 읽은’ 혹은 ‘책에서 잘 못 읽은’ 이론으로 무장한 채 ‘책을 읽듯이’ 말하고 ‘책에서처럼’ 행동한다. 훗날 대작들에 등장하는 지적인 범죄자들 대부분이 이 유형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책만 읽는 것’과 ‘책 안 읽는 것’은 비슷하게 위험하다.
 
물론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일단은 많이 읽어야 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실제로 독서광이었다. 그에게 책은 창조의 원천이었다. “형 나는 엄청나게 읽어. (...) 거기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끌어내.” 훗날 그가 잡지사를 경영할 때 원고를 보내온 젊은 여성에게 한 조언 역시 책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읽는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무거운 책을 읽으세요. 나머지는 삶이 다 알아서 해 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책 읽는 러시아’의 이미지는 양보다는 질적인 개념인 것 같다. 19세기 러시아 독서계를 선도한 것은 소수의 어마어마하게 읽는 독자들과 어마어마하게 쓰는 작가들, 이른바 ‘소수정예’가 아니었나 싶다. 러시아의 날씨도 공룡 작가들의 탄생에 기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춥고 길고 어두운 밤은 읽고 쓰는 것에 맛들인 사람들에게 최적의 환경이었으리라. 기묘한 자부심의 뉘앙스를 풍기며 예카테리나 여제가 외국 사절단에게 즐겨 했다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여덟 달이 겨울이고 넉 달은 악천후랍니다, 호호호.”
 
 
석영중 :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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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