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짧지만 아름답던 시절, 삶의 찬란한 기쁨

잡지 ‘유겐트’ 제10호(1903, 위) 본문 전면과 제8호(1902, 아래) 본문 세부. ‘에크만체’가 사용됐다.

잡지 ‘유겐트’ 제10호(1903, 위) 본문 전면과 제8호(1902, 아래) 본문 세부. ‘에크만체’가 사용됐다.

‘카페 리케(Cafe Riquet)’에서는 경쾌한 왈츠가 흘러나왔다. 독일 라이프치히 중심가의 유겐트슈틸 건물이다. 점잖은 손님들이 신문을 읽거나 나지막이 대화를 나눈다. 유겐트슈틸에 더불어 중국풍과 일본풍, 그리고 코끼리 조각들이 혼재한 이 독특한 카페에 앉아있으면, 20세기 초 유럽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
라이프치히의 카페 리케 전경과 에크만체가 적용된 입구 ⓒBetram Kober

라이프치히의 카페 리케 전경과 에크만체가 적용된 입구 ⓒBetram Kober

카페 리케의 지붕 위로 뾰족한 중국풍 탑이 있고, 그 아래로는 공작새와 동양 여인의 모자이크 장식이 있다. 1층 간판에는 오토 에크만이 디자인한 ‘에크만체’가 보인다.
 
때는 세기전환기인 1900년 전후, ‘벨 에포크(La belle epoque)’시대. 이름 그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번창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긴 19세기’라는 표현을 썼다. 벨 에포크는 20세기이지만 아직 19세기적 경향이 짙었다. 제1차 대전이 지나고 1920년대에 접어들며 진정한 20세기적 현대가 등장한다.
 
그래도 새로운 세기에는 새로운 활력과 도전이 싹텄다. 그에 걸맞는 새로운 미술과 디자인, 건축 사조가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이다. 이 양식은 유럽 각국에서 각자의 이름으로 불렸다. 독일어권에서는 잡지 ‘유겐트(JUGEND)’의 이름을 따서 ‘유겐트슈틸(Jugendstil)’, 즉 ‘청년 양식’이라 했다. 청년같은 젊음과 대담함으로 ‘삶의 기쁨(joie de vie)’을 누리고자 한 것이다.
 
넘치도록 풍족한 시절이었다. 라이프치히에는 유겐트슈틸 건물들이 많았고, 쓸모를 알 수 없는 장식들이 많았던 그 건물들은 보기에 즐거웠다. 이런 ‘잉여’적 장치들은 사람을 여유있게 만들어준다.  
 
과도기의 유겐트슈틸
(위로부터) 윌리엄 모리스의 트로이체(1892) 유겐트슈틸의 에크만체(1900) 유겐트슈틸의 베렌스체(1901) 바우하우스의 유니버설 알파벳체. 헤르베르트 바이어 디자인(1926)

(위로부터) 윌리엄 모리스의 트로이체(1892) 유겐트슈틸의 에크만체(1900) 유겐트슈틸의 베렌스체(1901) 바우하우스의 유니버설 알파벳체. 헤르베르트 바이어 디자인(1926)

책과 글자체 디자인에서도 유겐트슈틸은 만개했다. 건축이나 광고 포스터, 그래픽디자인에서의 유겐트슈틸과는 부각되는 인물들도 다소 다르고 궤를 달리한다.
 
유겐트슈틸의 날줄에서 이해해야 할 키워드는 ‘기계’다. 정확히 표현하면 ‘산업혁명 이후 초기 기계시대, 아직 조악하지만 신속했던 당대 기계기술에 대한 예술의 응답’이다.
 
19세기 후반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이 기계에 대항한 최후의 저항이었다면, 1920년대 ‘바우하우스(Bauhaus)’는 기계의 효율을 힘껏 끌어안아 현대를 펼쳐냈다. 그 과도기에 유겐트슈틸이 있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기계의 대량생산으로 사회에는 물건이 많아졌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따라서 광고가 등장했다. 그 형식은 포스터였다. 글자들은 이제 책 속에 얌전히 머무르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때는 빅토리아 시대였다. 평판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석판인쇄 기술이 개발되면서, 포스터를 제작하는 화가들은 붓으로 광고 글자들을 직접 그렸고 글자체 디자인도 분방해진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아직 기계의 성능이 조악해서 생산품의 디자인과 품질이 떨어졌다. 여기에 인간의 손길을 다시 가해 품질을 회복하자는 의식이 윌리엄 모리스가 주도한 미술공예운동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특히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책과 글자체 디자인에 있어, 윌리엄 모리스의 진정한 후예들은 세기전환기의 독일인들이었다. 그중 오토 에크만은 석판화 화가로, 꽃이 찬란한 유겐트슈틸의 대표주자다. 붓의 흔적이 강하고 일본풍 서예의 영향을 받은 에크만체는 간판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잡지 ‘유겐트’에서는 본문용으로도 쓰였다. 라이프치히의 도서관에서 20세기 초 ‘유겐트’의 원본을 접했을 때, 나는 본문에 적용된 에크만체의 가독성이 의외로 높아서 놀랐다. 안정되고 차분했다. 그러면서도 장식적인 풍미가 있어 읽는 맛이 독특했다.
 
페터 베렌스 역시 화가로 경력을 시작했다가 후에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로 활약한다. 베렌스체는 에크만체보다 건축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정돈돼 있다. 베렌스는 무척 실용적인 인물이었다. 유겐트슈틸에서 출발한 꽃피는 낙천성과 유기적 곡선을 간직한 채, 베렌스는 기하학적인 공간 배치로 나아간다. 독일 전기제품회사 AEG에서는 체계적 디자인 일관성을 갖추는 문제해결력을 보여주었다. 페터 베렌스의 신객관주의는 마침내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으로 이어진다. 책과 글자체 디자인, 타이포그래피의 현대는 이렇게 열렸다.
 
에크만체와 베렌스체는 대체할 수 없는 그 시대만의 정서를 품어내며 큰 인기와 성공을 누렸다. 그리고 제 소임을 다한 유겐트슈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잿더미속에서 꽃처럼 소멸했다. 화창하게 만개했지만, 보편적인 범용성과 확장력이 떨어져 지속력이 짧았다.  
 
아름다움과 쓸모
철컥 철컥. 카페 리케에서 저 아름다운 시절의 쓸모없는 몽상에 잠기며 틈틈이 그 시대의 문헌들을 구해 읽던 때, 머릿속에서 역사의 퍼즐 조각들은 이렇게 맞춰져갔다. 인간이란 마냥 쓸모 없어지기도 참 힘들다.
 
디자인의 역사는 아름다움이 쓸모와 관계를 맺어온 역사다. 순수미술과 달리, 응용미술은 조형에 기능적 쓸모를 응용한다. 유겐트슈틸 디자인은 화창한 낙천성과 유기적인 장식들이 쓸모를 잠시 압도하는 것 같았지만, 쓸모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에크만체와 베렌스체는 생각보다 기능적이었고, 이 유겐트슈틸 글자체들은 윌리엄 모리스에서 바우하우스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이 나른하고도 열정적인 글자체들은 시간 여행자에게 즐거운 기분을 스멀스멀 뿜어주기도 했다.
 
한 주간 쓸모로 점철된 일정을 보냈다면, 일요일 하루 정도는 쓸모 없어지기로 작심해도 큰일나지 않는다. 잉여는 새로운 쓸모를 만든다. 그리고 순수하게 쓸모 없어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유지원 :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저술가·교육자·그래픽 디자이너. 전 세계 글자들, 그리고 글자의 형상 뒤로 아른거리는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전한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