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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가 어울리는, 외국인도 입는 그런 한복

이노주단의 오인경 대표. 직접 디자인 한 배냇저고리를 응용한 상의와 한복 스타일의 주름 치마를 입었다.

이노주단의 오인경 대표. 직접 디자인 한 배냇저고리를 응용한 상의와 한복 스타일의 주름 치마를 입었다.

당의에서 본딴 스웨트셔츠. 단추로 여미는 옆트임이 포인트다.

당의에서 본딴 스웨트셔츠. 단추로 여미는 옆트임이 포인트다.

한복 깃에서 따 온 당코 스카프. 데님 소재에 빈티지 스타일로 디자인했다.

한복 깃에서 따 온 당코 스카프. 데님 소재에 빈티지 스타일로 디자인했다.

리슬의 황이슬 대표

리슬의 황이슬 대표

올해의 색으로 꼽힌 보라를 반영해 만든 면 소재 저고리

올해의 색으로 꼽힌 보라를 반영해 만든 면 소재 저고리

요즘 한복, 그야말로 길거리 패션이다. 서울 고궁 일대, 사대문 안에서 한복 입은 국내외 청춘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입은 대여 한복의 정체성 논란도 있지만, 한복업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젊은층의 관심이 반가워서다.
 
수요자가 있으면 공급자도 있기 마련. 특히나 젊은층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는, 젊은 한복 장인 둘을 만났다. 미국 유학파 디자이너인 이노주단 오인경(39) 대표와 전북 전주에 기반을 두고 있는 패션한복 리슬의 황이슬(31) 대표다. 두 사람 모두 전통에서 멈춘 한복을 오늘날의 옷으로 선보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한복, 그 예쁨에 꽂혀서다.
 
만화 캐릭터 저고리에 배냇 재킷 … 한복의 경계를 흐리다
오인경 디자이너의 한복에는 소재나 디자인의 제한이 없다. 도트·스트라이프 무늬는 물론이고 만화 캐릭터까지 한복으로 들어온다. 면 레이스 역시 그가 즐겨쓰는 한복 소재다.

오인경 디자이너의 한복에는 소재나 디자인의 제한이 없다. 도트·스트라이프 무늬는 물론이고 만화 캐릭터까지 한복으로 들어온다. 면 레이스 역시 그가 즐겨쓰는 한복 소재다.

오인경(39) 디자이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폰지밥을 프린트 한 저고리로 이름 난 인물이다. 6일 서울 원서동 이노주단 아뜰리에에서 만났을 때, 그 역시 ‘고객이 가장 기억해 주는 디자인’으로 이 옷을 꼽았다. “스폰지밥 광팬으로서 내가 만드는 옷에도 한번 담아보자는 것뿐이었어요. 한복이니까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실제 그는 데님이나 면처럼 일상복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를 사용하고, 체크·도트·스트라이프 무늬도 과감히 박는다. 맞춤 외 기성복도 만드는데, 배냇 저고리를 변형한 크롭톱(배꼽선까지 올라오는 상의)과 재킷은 이노주단의 시그너처다. 여기다 등이 훤히 보이는 드레스나 주름이 화려하게 잡힌 허리치마를 볼 땐 이게 과연 한복일까 싶다.
 
이런 의구심에 답하듯 그의 슬로건은 ‘한복에서 한복이라는 이름을 놓아주기’다. 한복을 한국의 전통 의상이 아닌, 빈티지 스타일로서 매력적인 옷 그 자체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애국심으로 한복을 입으라고 할 순 없잖아요. 한복이 뭔지 전혀 몰라도 그 자체가 예뻐서 입고 싶은 패션이 돼야죠.”
 
제3의 시선, 이방인의 눈을 지니게 되기까지 외국에서의 경험이 컸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족과 이민을 떠났고, 거기서 패션 기술대학에 진학했다. 마지막 학기 실기 수업의 과제로 옷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 때 처음 한복을 접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옷, 게다가 당시 학생 중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옷을 지었는데 발표 날, 정작 반응이 미지근했단다.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특이하네 하면서도 ‘우와 예쁘다’ 하지는 않았어요. 다르다, 낯설다라는 느낌이 너무 컸던 거죠.”
 
그때 깨달았다. ‘무조건 우리 옷이야’가 아니라, 그네들이 충분히 친근할 수 있게 만든 다음 배경을 알려주자고. LA 핫플레이스에서 기모노를 자랑스럽게 입고 있는 서양인들을 마주치며 또 다른 자극을 얻기도 했다.
 
2010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영희 한복에서 실무를, 단국대 평생교육원에서 고부자 교수에게 복식사를 배웠다. 현재 작업의 근간이 되는 17~19세기 조선 복식도 이때부터 파고 들었다.
 
애초부터 가게를 내자고 작심했던 건 아니었다. 2012년 서울 연남동에 작업실을 냈고 시험 삼아 혼자서 면이나 리넨으로 된 한복을 지어 입고 다녔는데,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씩 자기도 만들어달라고 한 게 계기가 됐다. 얼떨결에 영문 이름을 따 ‘이노주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작업만큼은 자신만의 색깔을 담았다. 오씨는 이를 ‘해체주의’라고 칭했다. “양장과 한복을 모두 분리해서 현대인이 익숙해 할 만한 요소를 뽑아 재조합하는 디자인을 해요. 대신 작업의 70%는 모두 손바느질을 하죠. 똑딱이 스냅 대신 안고름을 고집하는 것처럼 한복에서 의미있는 디테일을 유지하고요. 바꿀 것과 지킬 것을 엄격히 나누자는 의미예요.”
 
스스로의 체험도 적극 반영했다. 언젠가 흰색의 실크 한복 치마를 입고 나갔는데 한번만 입어도 밑단이 까맣게 되는 걸 경험하고는 빨기 쉬운 면으로 소재를 전격 교체했다. 또 뒷사람 발에 밟혀 넘어질 뻔한 위기를 겪은 뒤엔 길이를 무릎 밑으로 확 줄였다. 저고리 배래(소매 밑단)도 활동성을 위해 무조건 통 좁은 직선을 고수한다.
 
2017년부터는 메인 오피스를 LA 다운타운으로 옮기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예약 상담이 쌓이면 비행기를 탔다가 다시 다른 쪽 상담 예약이 쌓이면 건너오는 식이다. 처음엔 북미 해외 동포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일인데, 소셜 미디어·홈페이지 등을 본 아시아·유럽 고객들의 문의가 늘어나는 중이란다. 올해만 해도 미국 쪽 상담이 몰려 4~11월까지 머물 예정이다. “서울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미국에서 또 다른 한복 창작을 해보고 싶어요. 한복의 소비자가 꼭 한국인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시즌마다 신제품 내고 모델 촬영 … 사이즈 표준화
리슬의 봄 신상 패션한복

리슬의 봄 신상 패션한복

한복진흥센터가 주최한 ‘2016 한복개발 프로젝트’에서 데님을 메인 소재로 한 패션한복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복진흥센터가 주최한 ‘2016 한복개발 프로젝트’에서 데님을 메인 소재로 한 패션한복을 선보이기도 했다.

패션한복 ‘리슬’의 황이슬(31) 대표를 6일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첫 질문을 하게 됐다. “그 옷도 파나요.” 그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 울 저고리와 면ㆍ린넨 혼방의 연두빛 치마가 탐나게 예뻤다. 그의 답이 명쾌했다.
 
“2018년 가을ㆍ겨울 시즌 샘플로 만든 건데, 생산하지 않고 제가 입기로 했어요. 체크무늬가 의외로 안 나가거든요. 인기 순으로 꼽자면 꽃무늬ㆍ민무늬ㆍ체크무늬에요. 이런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즌마다 어떤 옷을 새로 선보일지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를 만난 장소는 서울 논현동의 한 사진 스튜디오. 리슬의 2018 가을ㆍ겨울 시즌 ‘룩북(Look Book)’ 촬영 현장이었다. 고궁 앞에서 단아하게 찍는 한복에 하이킥을 날리는 듯, 스튜디오에서는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 흘렀다. 한복의 옷고름을 벨트처럼 재해석한 겨울코트, 옆이 터진 포(袍)에서 힌트를 얻은 소창의 코트 등 한복인 듯 아닌 듯한 옷이 모니터 화면을 채워나갔다. 황 대표는 “밀라노와 파리 패션위크 때 함께 열리는 비즈니스 트레이드 쇼에서 선보일 룩북”이라고 전했다.
 
2006년 퓨전한복 ‘손짱디자인한복’을 창업하고, 2014년 ‘리슬’을 론칭한 그는 올해로 12년차에 접어든 젊은 한복 장인이다. 대학생 시절 코스프레용으로 만든 퓨전한복 한 벌이 전북대 산림자원학과에 다니며 공무원을 꿈꾸던 전주 아가씨의 인생을 바꿔놨다. 황 대표는 “2014년 이전까지 1인 기업으로 파티용 퓨전 한복을 제작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았는데, 리슬 론칭 후 소위 대박이 났다”고 전했다. 현재 직원 13명에, 매출 15억원 달성, 전북 전주에 4층 규모의 빌딩까지 소유하고 있다.
 
리슬의 옷은 주문ㆍ제작하는 맞춤한복이 아니다. 한복에서 모티브를 딴 패션이라는 의미에서 ‘패션한복’이라고 부른다. 황 대표는 “고증하거나, 복원하는 개념이 아니라 일상에서 즐겁게 입을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인 한복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컨셉트를 정하기까지, 그는 2011년부터 ‘1년 동안 한복 100번 입기 프로젝트’를 했다. 직접 만든 퓨전한복, 기존 브랜드의 한복과 생활한복 등을 입고 일상생활을 했다. 한복 입은 그를 길거리에서 본 어린아이가 “엄마, 저 언니는 명절도 아닌데 한복을 입고 다녀”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불편해서 전통한복을 입고 생활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접 알게 됐다. 그래서 20~30대를 겨냥한 생활한복이자, 패션한복을 만들기로 했다.
 
유통의 경우 기존 패션 시장을 벤치마킹했다. 매 시즌 트렌드를 반영한 새 옷을 만들고, 엑스스몰(XS)부터 라지(L)까지 사이즈를 표준화하고, 빨래하기 쉽고 지하철에 타도 부끄럽지 않은 한복을 만들기로 한 것. 온라인 쇼핑몰용 모델 착용 샷도 바꿨다. 올림 머리가 아니라, 단발머리 또는 긴 생머리의 모델이 리슬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촬영했다.
 
“한복도 스트리트 패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던 그였지만 20~30대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처음에는 저도 놀라 고객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대다수가 ‘옛날부터 입고 싶었어요. 이런 스타일 찾고 있었어요’라고 답하더라고요. 한복이 예쁜데 전통한복은 조금 불편하고, 기존 생활한복은 나이 들어보여 주저했던 저와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이 많았던 거죠. 물론 리슬 론칭 후 1년도 안 되어서 비슷한 컨셉트의 브랜드가 많아지기도 했죠.”
 
차별화를 위해 그는 해외 진출에 열중하고 있다. ‘한복+캐주얼’의 줄임말인 ‘한주얼’ 라인을 개발하는데도 열심이다. 바쁜 와중에서도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은 전주에서 열고 있는 ‘한복 스타트스쿨’이다.
 
“한복을 짓고 싶어하는 청년을 위한 교육장을 열어 시즌 3까지 왔어요. 한복 관련한 정보가 너무 없어요. 2년 전, 국내에 있는 한복학과가 모두 폐과된 탓도 큽니다. 제가 걸어온 길과 시행착오들을 공유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복업계 규모가 커졌으면 좋겠어요. 장기적으로 한복 학교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글 이도은·한은화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이노주단·리슬·한복진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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