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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신뢰도 29%로 떨어져 … 28개국 중 꼴찌

오너리스크에 빠진 한국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53일 만에 석방됐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오너리스크는 여전하다. 오너리스크란 기업 경연진의 위법이나 부도덕한 행동이 경영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새해 들어서도 기업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이달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이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되면서 신 회장에 대한 재판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고발로 들어온 사건들의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탈세·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이달 7일 구속됐다. 이 회장은 부영그룹 계열사가 2013년부터 3년간 전국에 공공 임대주택을 분양하는 과정에서 원가를 부풀려 1조원 가량의 부당이익을 챙기고 부인 명의로 된 건설 자재 회사를 만들어 1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지난달에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업체를 끼워 넣은 방식으로 ‘통행세’를 받아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은 무혐의 처리됐다.
 
금융권은 채용비리 혐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달 6일 검찰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증손녀 등 친인척 채용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KB국민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이틀 뒤 KEB하나은행과 부산은행, 광주은행 등을 잇따라 조사했다. 앞서 VIP고객, 공직자 자녀 등 37명을 부당하게 채용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업무방해 혐의로 이달 2일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검찰이 지나치게 재계를 압박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의 압박에 따라 건넨 돈을 포괄적 뇌물로 보거나 경영상 판단의 실패로 손실이 난 것을 모두 배임·횡령으로 간주한다면 경영진의 의사결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덕성 논란 등 불거지면 주가 20일간 하락
최근엔 기업 총수의 주가조작·자금횡령·비자금 조성 등 경영관련 법적 문제 뿐 아니라 갑질·폭행·성추행 등 부도덕적인 행동까지 오너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들어 기업 평판에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어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엔 몽고식품과 미스터피자, 호식이두마리치킨 등에서 잇따른 ‘갑질’ 논란이 벌어졌다. 김 교수는 “요즘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경영 투명성이나 도덕성에 관심이 커졌고, 소셜미디어(SNS)나 댓글을 통해 조성된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갑질 논란이 일었던 31개 기업(계열사 포함)을 대상으로 오너리스크를 조사한 결과 단기 수익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맡은 임현일 부연구위원은 “성추행·직원 폭언 등 오너의 갑질 논란 이후 신문이나 TV뉴스를 통해 1차 보도된 뒤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개인의 SNS 등을 통한 2차 확산이 이루어지면서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20거래일 동안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SNS를 통한 비판은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그룹은 2016년 정우현 창업주의 경비원 폭행에 이어 지난해 가맹점에 ‘치즈 통행세’를 매긴다는 논란이 일었다.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정 회장은 지난해 6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회장직을 사퇴했다. 호식이두마리치킨도 창업자인 최호식 전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논란이 일자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번졌다. 불매운동은 소비자를 직접 접하는 유통업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2013년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갑질 논란에 휘말린 남양유업은 2년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독립 사외이사 등으로 투명성 높여야
이처럼 되풀이되는 오너리스크로 갈수록 반기업 정서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에델만이 지난해 발표한 ‘에델만 신뢰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의 신뢰도는 1년 전보다 4%포인트 하락한 29%였다. 에델만이 조사한 28개국 중 최하위다. 경영진에 대한 대중의 신뢰 역시 같은기간 11%포인트 하락한 24%를 기록했다. 기업은 국내외 평판이나 이미지가 추락하면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 가맹점주·소액주주 등의 2차 피해도 이어진다. 호식이두마리치킨과 미스터피자의 일부 가맹점주는 소비자 불매운동 당시 고객이 크게 줄면서 폐업 위기에 몰렸다. 소액주주 역시 투자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김진방 교수는 “특히 해외 투자자, 기관투자가들은 오너리스크가 발생한 기업은 벌어들인 이익에 비해 기업가치를 낮춰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오너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영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필수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분이 없는 계열사는 과감히 독립 경영체제를 도입하는 등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진방 교수 역시 “지배주주 배제, 전자투표 방식 등 사외이사 선임 방식을 바꿔서 제대로 경영진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됐지만 거수기 논란을 빚고 있다. 위평량 위원은 지분을 가진 기관투자가가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대책으로 꼽았다.
 
하지만 최고경영자(CEO) 스스로가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모범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현일 부연구위원은 “기업이 평소 활발한 사회공헌활동(CSR)으로 좋은 평판을 쌓아둔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기업가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CSR을 체면치레나 비용으로 보기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관행이었다는 변명이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불통 이미지도 통하지 않는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겸손한 기업이 성과를 내게 된다”고 말했다. 창업 초기에는 기업가의 열정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지만, 기업을 더 키우고 유지하려면 직원들의 협력, 고객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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