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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 넣어준 굴비 한상자

삶과 믿음
코가 시리는 겨울밤은 아직도 깊고 어둡다. 작년 요맘때 나는 북해도 여행을 했었다. 눈 깜박할 사이 일 년이 훌쩍 지나갔다. 출발하면서 가벼운 신을 신고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하필이면 신발바닥이 약간 떨어진 신발을 대수롭지 않게 신고 간 게 문제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삿뽀로 공항에 도착해 아내가 “당신 집에 좋은 신발이 많은데 왜 하필 그 신발을 신고 왔어?” 하고 물었다. 가벼운 여행이라고 생각해 평소 동네에 다닐 때 신던 신발을 신고 간 것이다. 결국 삿뽀로시 터미널 근처 신발가게에서 겨울용 신발을 구입했다.
 
지금도 아내는 가끔씩 나를 바보아빠 또는 엉뚱한 사람으로 대한다. 헐겁게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다 보니 완벽하지 못해 이상해 보이는 모양이다. 내 인생도 그러했다. 대충 준비가 된 것 같은데 결론에 가서는 탈이 생기는 일이 가끔 생기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 지나간 시간들은 부족함이 많다.
 
둥근 달도 처음부터 저렇게 가득차 있는 건 아니었다. 입춘(立春)이 지났다. 입춘은 새해를 맞이하는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다. 이날을 중심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도 대문에 붙인다. 어느 핸가 아파트 출입문에 입춘대길을 크게 써 붙인 집을 본적이 있다. 묵은해에 있었던 좋지 않던 기운이나 일들이 새봄이 되면 큰 길운이 생겨 밝고 좋은 소식만 내게 오소서 하는 글귀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그 집안이 잘 되고 그 집에서 자라나는 가족이 또는 자녀가 잘 되기를, 또 아픈 사람 없이 모두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는 소원이기도 하다. 입춘 날 달이 크고 밝았다. 달을 바라보며 소원도 빌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 밤이었다.
 
얼마 전 미국 동부에서 교화를 하고 있는 선배가 잠시 한국에 왔다. 그는 미국에 영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의료비가 너무 비싸 한국에 온 김에 병원에 들러 이곳저곳 몸 상태가 안 좋은 곳을 치료하고 점검하곤 한다고 했다. 특히 치아가 말썽을 일으켜 많이 고통을 겪다 한국에 와서 진료를 하니 ‘내 나라가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찻집에서 만나 그동안 이런저런 수행이나 사는 이야기나 그밖에 몇 가지 어려운 이야기까지 한 세트로 대화를 들으니 한편으로 먼 이국땅에서 교화를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달빛은 더 밝아 보인다. 엊그제 지인이 한 “길이 없는 세상에는 모든 것이 다 길이 될 수 있다”말이 생각난다. 어딜 가든 그곳에서 길을 만들고 도를 전해주고 깨달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수행자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내가 보내준 그림 몇 점(禪畵)을 미국 수행센타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많은 미국 화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감사의 말도 전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영광굴비 한 상자를 내 차 안에 넣어주었다. 그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고 아름답다.
 
 
정은광 교무
원광대 박물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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