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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방식

성석제 소설
국수광이라고 불리는 K에게는 단골 국숫집이 딱 하나 있었다. 국수광에게 단골이 하나만 있다는 건 이상한 일 같지만, 그는 진정코 국수를 좋아한다면 어떤 국수든 다 좋아하게 마련이고 새롭게 등장하는 국수에 대한 탐구와 모험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의 단골집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참 걸어야 하는 동네 안쪽 후미진 곳에 있었다. 낡고 좁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주차시설 같은 건 아예 없었다. 한 번 와본 사람들은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날 집에서 먹던 국수의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데 감동하고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데리고 다시 오곤 했다. 그렇게 해서 단골이 된 손님들 간에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간판조차 변변치 않은 그 국숫집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그 집이 유명해지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J에 따르면 국수처럼 손님의 좋고 나쁨이 순식간에 갈리고 분위기를 많이 타는 음식을 파는 식당은 유명해지는 순간 그 많은 손님들의 평균적인 취향에 맞게 맛이 변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그 식당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이 사라져 버릴 것이니 그건 그 식당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단골 중에는 이른바 ‘맛집’을 다루는 방송사의 기자·프로듀서·작가·음식평론가까지 있었고 그 국숫집에서 마주치면 목례와 미소를 나누는 것으로 서로 간의 합의를 확인하곤 했다. 주인으로서는 손님이 과하게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의문의 1패’를 당하고 있던 셈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그 국숫집에 우연히 온 손님에 의해 ‘그 옛날의 맛’이 알려지기 시작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국숫집 앞 동네 골목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매일처럼 연출되고 그 때문에 또 줄을 선 사람들이 그 국숫집을 광고하는 모양이 되었다.
 
늘어난 손님 중에는 그 국숫집의 위치와 불편한 교통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오래된 단골들이 그 국숫집을 옮기면 더 이상 오지 않겠다고 똘똘 뭉쳐 저항하는 바람에 ‘어머니의 국수’로 간판을 새로 해 다는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해 전쯤 그 국숫집에서 서너 집 정도 떨어진 곳에 4층 건물이 들어섰다. 널찍한 1층의 가게에는 건물주의 친척이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식당을 차렸다. 그 식당의 주 메뉴 또한 국수였다. K의 단골집은 소면과 비빔국수 단 두 종류만 취급했지만 새 국숫집은 메밀국수·오뎅국수·비빔국수·잔치국수·콩국수·쫄면·냉면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새 국숫집답게 인테리어도 산뜻했고 종업원도 여러 명 두었다. 그런데 장사가 되지 않았다.
 
J의 단골집에는 손님이 줄을 서서 골목을 돌아서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인데 새 국숫집의 손님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곱빼기를 보통의 값으로 드립니다’라는 커다란 광고판과 텅텅 비어 있는 넓은 주차장 때문에 새 국숫집은 더 초라하고 안 돼 보였다. 그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국숫집에 들어가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J처럼 온 세상 국수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과 열정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J가 새로 생긴 국숫집에 간 건 한여름 점심때였다. 자전거를 타고 온 J에게 새 국숫집 주인은 얼음물과 함께 땀을 닦으라며 차가운 물수건을 건네주었다. 국수의 맛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나쁠 것도 없었다. 국수 한 그릇만 먹고 가기가 미안해진 J는 주인에게 덕담을 했다.
 
“제가 다녀가는 집은 그 뒤에 꼭 손님이 몰려오더라고요. 손님이 손님을 부르는 법이거든요. 옆집에 온 손님들이 이 땡볕에도 저렇게 줄 서서 기다리는 게 뭐 때문이겠어요? 손님이 안 보이는 집은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건 철칙이에요. 제 말을 한 번 믿어보세요.”
 
계절이 가을로 바뀐 뒤 J는 단골집에 갔다가 새 국숫집 앞에 서너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몇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단골집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꿋꿋이 서 있을 수 있는 힘은 스마트폰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 국숫집 안에는 손님들이 어느 정도 들어차 있었고 차를 가지고 그곳까지 국수를 먹으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J의 단골집 앞에 줄을 서지 않고 넓은 주차장이 있는 새 국숫집으로 가고 있었다.
 
겨울이 오고 나서 두 식당에 드나드는 손님의 격차는 더욱 줄어들었다. 새 국숫집에서 싼 가격과 많은 양을 강조하고, ‘주차시설 완비’라는 간판 글씨 테두리에 네온사인을 달았다. 사고는 J가 단골집에서 국수를 먹고 있을 때 발생했다.
 
손님이 J의 단골집 앞에 차를 댄 뒤 들어와서 전화 통화를 하면서 국수를 주문했다. 통화의 내용은 자신이 얼마나 오랜만에 제대로 맛이 나는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왔는지 여러 사람에게 생중계하는 것이었다. 국수가 나오고 난 뒤에도 그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그가 전화를 끊은 것은 자신의 차에 불법주차 딱지가 붙여진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는 딱지를 떼어와 주인의 얼굴 앞에 내밀면서 “2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 먹자고 100여 ㎞를 달려왔는데 4만원짜리 딱지를 끊으면 어쩌자는 거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건 주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국숫집 앞에는 주정차를 하면 즉시 벌과금을 부과하고 견인을 할 수 있다는 시청의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으니까.
 
손님은 입맛을 버렸다고 하면서 국수를 반도 먹지 않고 남겼다. 국수 값을 받으면서도 주인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윽고 주인은 몇 군데 전화를 걸어서 뭔가를 확인했다.
 
“동네 사람이 신고한 거 같다네요. 세상 무섭다, 정말.”
 
J는 마지막 말은 못 들은 체하고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새 국숫집 주인은 팔짱을 끼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J를 보고 몸을 돌리고 있었다.
 
 
성석제
소설가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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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