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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을 벗어 던져라" 83세 할머니도 나섰다 … 이란판 ‘미투’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는 이란 여성들이 히잡 강요를 거부하며 벌이는 캠페인이다. 최근엔 당국 단속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히잡을 막대 끝에 걸고 흔드는 시위로 번지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는 이란 여성들이 히잡 강요를 거부하며 벌이는 캠페인이다. 최근엔 당국 단속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히잡을 막대 끝에 걸고 흔드는 시위로 번지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자,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하얀 베일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베일을 벗어볼까?”
이 말과 함께 유튜브 영상 속에서 자가용 운전대에 앉아 있는 여성이 머리를 가리고 있던 흰색 스카프를 벗는다. 또 다른 여성은 햇빛 찬란한 거리에서 “나는 인간이니까, 무엇을 입을지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니까”라면서 히잡을 벗은 모습을 ‘셀프 동영상’으로 공개한다.  
 
보수적인 중동국가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 캠페인이다. 2014년 이란 출신 여성 인권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않은 모습을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도록 독려한다. 
 
지난해 5월부터는 ‘하얀 수요일(White Wednesday)'이라는 슬로건도 병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통상적으로 쓰는 검은색 히잡에서 벗어날 자유를 누리자는 것으로 SNS에는 이를 실천한 사진·동영상들이 잇따라 게재되고 있다.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는 이란 여성들이 히잡 강요를 거부하며 벌이는 캠페인이다. 최근엔 당국 단속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히잡을 막대 끝에 걸고 흔드는 시위로 번지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는 이란 여성들이 히잡 강요를 거부하며 벌이는 캠페인이다. 최근엔 당국 단속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히잡을 막대 끝에 걸고 흔드는 시위로 번지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히잡 시위하다 수십명 경찰에 체포
 
최근엔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막대기에 걸고 흔드는 1인 시위까지 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테헤란대학교 앞 엥겔랍 거리에서 이 같은 퍼포먼스를 벌인 비다 모바헤드라는 여성이 ‘원조’다. 31세의 아기 엄마인 모바헤드는 이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한달만에 석방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당국의 이런 조치에 항의하는 모방 시위가 격화하면서 현재까지 29명이 체포·구금됐다.
 
‘히잡이 뭐라고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란에선 다르다. 대부분 국가에서 무슬림은 종교적 신념과 전통 관습에 따라 히잡(또는 차도르·니캅·부르카 등)을 착용하지만 이란에선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종교·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에게 히잡 쓰기가 강요돼 왔다. 심지어 그 전까지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쓰긴커녕 미니스커트를 입는 등 옷차림이 자유로웠다. 당시 군림하던 친미 팔레비 왕조가 서구식 복장과 문화에 관대했기 때문이다.  
 
“1936년에 이란 여성들은 히잡 착용을 허용해달라고 시위를 했죠. 당시 샤 레자 국왕이 히잡을 금지했거든. 지금 공화국이 히잡을 강요하니까 우리는 거기에 또 반대를 합니다.”
 
캠페인에 참가한 83세 할머니의 말은 이란의 히잡 시위가 지향하는 바를 대변한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쓰든 말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중이다. 
이를 통해 히잡 뿐만 아니라 “취업부터 결혼과 이혼, 여행, 스포츠 경기 관람 등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규제의 부당함을 호소”(마시 알리네자드)하는 것이다.
 
남녀 차별에 저항, 개인의 존엄성 강조
 
흡사 영미권 여성들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통해 일상의 권력 관계에 저항하고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것과 비슷하다. 캠페인 참여자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란 여성들이 더한 위협에 처해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 상황을 “그래미상 시상식 참석자들은 ‘타임스 업’(성폭력 피해자 연대 캠페인)에 동조하려고 하얀 장미를 달았는데, 이란 여성들은 하얀 베일 시위를 하다 끌려가 (경찰에) 맞기도 한다”고 전했다.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히잡을 막대 끝에 건 채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비다 모바헤드. 31세의 아기 엄마인 모바헤드는 이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한달만에 석방됐다. [사진 페이스북]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히잡을 막대 끝에 건 채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비다 모바헤드. 31세의 아기 엄마인 모바헤드는 이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한달만에 석방됐다. [사진 페이스북]

 
걸프전 이후 사우디선 '운전 시위' 확산 
이런 점에서 이란의 히잡 시위는 라이벌 중동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운전 시위’와 궤를 같이 한다. 보수적인 와하비즘을 기반으로 하는 사우디는 관습법에 따라 공적인 공간에서 남녀 분리를 철저히 적용했고 여성 운전을 금지해 왔다. 하지만 걸프전쟁(1990~91) 기간 미국 여군들의 운전을 목격한 사우디 여성들은 1990년 운전허용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이후에도 간간이 이어져오던 운전 허용 요구는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SNS를 중심으로 폭발했다. 사우디 여성들은 남몰래 운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유했고 거리에서 운전 허용 캠페인을 벌이다 체포되기도 했다. 
 
사회 개혁에 동조하는 남성들도 이에 호응했다. 코미디언이자 사회활동가인 히샴 파기는 2013년 유튜브에 ‘여성이여 운전 말아요’(No woman, No drive)라는 곡을 공개했다. 자메이카 출신 밥 말리의 세계적인 히트곡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No woman, No cry)를 패러디해 여성 운전 금지를 비꼬는 노래다. 동영상은 현재까지 1500만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사우디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란 국민 절반 "히잡 착용, 개인이 결정을"
이란·사우디 등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 권익 문제는 사회 관습뿐 아니라 국내외 정치와 맞물려 쟁점이 돼 왔다. 보수주의자에게 여성의 복장·규범은 부패하고 타락한 서구 문명으로부터 선을 긋는 상징과 같기 때문이다. 이란이 공화국 수립과 함께 히잡을 강요한 것 역시 왕정 시대 친미주의·세속주의와 갈라서겠다는 선언이었다. 
 
때문에 최근 히잡 시위에 대한 반응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갈린다. 이란 경찰은 이번 시위가 불법적인 위성 채널들을 통해 이란 외부로부터 선동된 행위라고 보고 있다. 모하마드 자파르 몬타제리 검찰총장은 아예 "히잡을 벗는 행위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른 나라에서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슬람혁명이 있기 전 1960~70년대 이란 여대생들 모습. 당시만 해도 히잡을 쓰지 않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이슬람혁명이 있기 전 1960~70년대 이란 여대생들 모습. 당시만 해도 히잡을 쓰지 않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반면 2013년 집권한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인구 70%를 차지하는 30세 이하 젊은이들의 개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편이다. 최근 이란 대통령실은 2014년 전국 단위로 진행된 '강제 히잡에 관한 여론' 조사 설문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란 남녀 국민의 49.8%는 이를 사생활 영역으로 간주하며 정부가 그 사안에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대통령 측이 한참 묵은 설문 조사 결과를 이제 와서 발표한 것이 강경파인 사법 당국과 정면 대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썼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지방선거가 실시된 2015년 12월 12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지방선거가 실시된 2015년 12월 12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에 반해 사우디는 여성 운전을 올 6월부터 허용하기로 하면서 이것이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의 ‘개혁 방침’ 덕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우디 여성문제 전문가인 엄익란 박사(단국대 GCC 국가연구소)는 “사우디처럼 억압적인 사회에서 여성 인권 개선은 상당 부분 톱다운(위에서 아래로 영향이 퍼짐)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서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는 MbS가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 인력을 기반으로 권력 안정을 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사우디 여성은 지난 2015년 처음으로 지방선거에서 참정권을 행사했다. 베일을 벗고 운전대를 잡은 여성들이 중동의 변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관련기사
 
"성폭행범 면죄부 악법 폐지" 아랍 여성들의 승리
지난 2017년 영미권 여성들이 ‘미투’ 캠페인의 성과를 자축할 동안 요르단·레바논 등 아랍권 여성들도 역사적인 변화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해 8월 레바논 의회는 성폭행·폭행·납치와 강제결혼에 대한 형법 522조 폐지를 결정했다. 
 
 522조에는 성폭행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하면 형사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가해 남성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피해 여성을 이중으로 옭아매는 대표적인 반여성 독소조항으로 꼽혀왔다. 수년 간 관련법 폐지를 요구해 온 여성·인권 단체들은 “성범죄자는 더는 처벌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여성 존엄의 승리”라며 환영했다.
 
 앞서 요르단 의회도 유사한 내용의 형법 308조를 폐지했다. 인권단체 통계에 의하면 이 법에 따라 처벌을 면한 성폭행범이 2010~2013년 159명이다. 이 기간 요르단 당국에 신고된 성폭행 건수 5654건의 2.8%에 해당한다. 튀니지도 지난해 7월 유사 악법을 폐지했고 바레인 의회는 폐지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국제 인권단체 및 여성인권운동 단체들은 다른 국가들에도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리비아·시리아·알제리·이라크·쿠웨이트·팔레스타인 등이 여전히 이런 ‘성폭행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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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