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단독] 북 공연 한국가요는 김정은・여정 남매의 사모곡

8일 저녁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에는 모두 11곡의 한국 대중가요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공연에서 북한 체제선전 가요 등이 포함된 노래를 이어가던 북한 멤버들은 다섯 번째 곡으로 가수 이선희의 'J에게'를 선택했다.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여성 2중창과 코러스로 소화해 한국 관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삼지연관현악단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 성공 기원 특별공연에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한국 가요를 부르고 있다. [중앙포토]

삼지연관현악단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 성공 기원 특별공연에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한국 가요를 부르고 있다. [중앙포토]

 
이어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르며 본격적인 한국 레퍼터리가 이어졌다.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나훈아의 '이별' 등이 차례로 선보였다. 북한에선 남한 가요를 듣거나 부르는 경우는 물론 음원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 체제에서 손꼽히는 악단이 남한방문 공연에서 이를 연주하고 부를 수 있었을까. 
한복 차림으로 공연을 펼치는 삼지연관현악단. 강릉=권욱기자

한복 차림으로 공연을 펼치는 삼지연관현악단. 강릉=권욱기자

 
사실 이번에 평창에 오기 위해 꾸려진 삼지연관현악단의 모태인 모란봉악단이나 청봉악단 등에게 한국 가요는 익숙한 프로그램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나 이른바 로열패밀리라고 불리는 김씨 일가에서 한국 가요나 음악을 즐겨듣거나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일가나 핵심 고위층의 연회나 축하행사에 동원되는 '친솔(親率, 김정은이 직접 챙긴다는 의미)악단'에게 한국 노래는 필수란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부인 고용희가 함께 한 모습. 북한 간부들에게만 공개된 영상에 담긴 장면이다.[중앙포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부인 고용희가 함께 한 모습. 북한 간부들에게만 공개된 영상에 담긴 장면이다.[중앙포토]

 
이번 공연에서 선곡된 한국 가요는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여동생 김여정(당 제1부부장)에게 있어 '사모곡' 성격이 짙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경우 2004년 유선암으로 숨진 생모 고용희가 가장 좋아하던 심수봉의 곡 가운데 하나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는 자신의 책에서 고용희가 자신에게 "김정일 장군님과 연애 시절 둘이 차안에서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 같은 한국 노래를 밤새 들었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어린 김정은의 공부를 봐주는 생모 고용희의 모습. 일반 주민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북한 내부 영상자료에 담긴 장면이다.[중앙포토]

어린 김정은의 공부를 봐주는 생모 고용희의 모습. 일반 주민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북한 내부 영상자료에 담긴 장면이다.[중앙포토]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정은・여정 남매의 아버지인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이 즐겨 듣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 조용필・김연자·최진희·이선희 등 우리 가수의 방북 공연이 이어질 시기 "혜은이도 꼭 불러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케쥴 등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하자 애를 태웠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측근에서 챙기는 여동생 김여정.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측근에서 챙기는 여동생 김여정.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남한 가요에 대한 애착이 특히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8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논의 차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묘향산 특각(별장)에서 김정은을 만나 오찬을 함께했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에 흥이 오른 김정일은 "밴드 들어오라 그러라우"라고 지시한 뒤 모두 11곡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 가운데 3곡이 한국 가요였다는 게 당시 현대 측으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았던 정부 당국자의 귀띔이다. 여기에는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도 포함됐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기원 삼지연관현악단 특별공연에서 참석하고 있다. 강릉=권욱기자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기원 삼지연관현악단 특별공연에서 참석하고 있다. 강릉=권욱기자

평창 올림픽 참가와 함께 예술단·응원단 파견 등을 결정한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신임이 깊은 모란봉악단 단장 현송월을 남한 방문 공연 책임자로 임명했다. 현 단장은 사전에 서울과 강릉을 다녀가는 등 공연을 꼼꼼히 챙겼다. 사안의 성격상 선곡 등 공연 관련 주요 사안은 김정은의 재가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김정은·여정 남매는 10대 시절 부모를 떠나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함께 조기 유학했다. 이미 세상을 등진 부모에 대한 애뜻한 마음에서 생전 애창곡 위주로 남한 가요를 선정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 악단에게 이미 익숙한 곡들이란 점도 고려됐을 것이란 얘기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