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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갑질제보 5478건…"한국인의 직장생활은 재난수준"

서울 정동 직장갑질119 사무실에서 한 시민단체활동가가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을 점검하고 있다. 주변 상자는 최근 기자회견을 하며 갑질고발자들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된 용품이다. 조문규 기자

서울 정동 직장갑질119 사무실에서 한 시민단체활동가가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을 점검하고 있다. 주변 상자는 최근 기자회견을 하며 갑질고발자들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된 용품이다. 조문규 기자

 
"전 국가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상사의 인격모독적 폭언에 업무를 못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지난해 11월1일 오후 3시12분,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 들어온 첫 '갑질' 제보였다. 이날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총 14만5767번의 대화가 오갔다. 1만2287명이 채팅방을 찾았다. 3841건의 '갑질 제보'가 들어왔다. e메일과 페이스북 메시지로 온 제보까지 합치면 총 5478건이었다. 지난 몇 달간 갑질 제보의 홍수 속에서 지내온 직장갑질119 스태프들은 진단했다. "한국인의 직장생활은 재난수준에 달했다."
 
8일은 직장갑질119가 출범한 지 꼬박 100일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11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알바노조 등 비정규직 운동 단체 활동가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변호사·노무사 241명이 참여해 만든 직장갑질119는 '오픈채팅방 제보'라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채팅방에는 밤낮없이 '갑'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을'들의 제보와 문의가 이어졌다. 한림대 성심병원 직원들의 직장 내 갑질 고발도 여기서 시작됐다. 고발 이후 병원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새로 결성했다.
 
지난해 10월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이 체육대회를 위해 간호사들이 병원 행사에서 장기자랑 하는 모습. 직장갑질119를 통해 성심병원의 갑질이 공론화된 이후 병원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새로 결성했다. [사진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ㆍ‘직장갑질119’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10월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이 체육대회를 위해 간호사들이 병원 행사에서 장기자랑 하는 모습. 직장갑질119를 통해 성심병원의 갑질이 공론화된 이후 병원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새로 결성했다. [사진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ㆍ‘직장갑질119’ 페이스북 캡처]

 
직장갑질119 법률스태프인 김유경 노무사는 "각양각색의 '갑질 사용자'들로 인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여성 노동자 중에서는 직장 내 성폭력 제보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100일간 들어온 제보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근로계약서본적없음#연차가뭐예요#퇴사하고싶어요
제보들 가운데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수당을 제때 챙겨받지 못하고 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등 '임금을 떼였다'(24%)류의 제보였다. 김 노무사는 "법의 취약한 점을 틈타 사용자들은 쉽게 노동법을 위반했고 '을'은 부당함에 맞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고 말했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한 제보자는 "주에 백시간 이상씩도 일하는데 포괄임금제라서 추가 수당을 전혀 못받고 있다"고 전했고 "'빨간날을 연차로 대체한다'고 계약서에 사인을 강요당했다"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 입사 후 근로조건이 변경된 계약서를 다시 쓰라고 강요받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퇴사를 결심한 노동자들에게 '무단 퇴사'라며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또한 대표적인 갑질 사례였다.
 
#주말체육대회#김장담그기#직장생할이원래그런거야
지난해 강릉의 한 병원 직원들은 쉬는 날 사장님과 일가 친척에게 보낼 김장 1만 포기를 담갔다. 어떤 직장인은 여행을 떠난 회장님을 대신해 회장님이 키우는 개와 닭에게 사료를 줘야 했다. 사장이 따로 운영하는 고깃집 숯불 피우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일명 '군대식 갑질'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을들은 이러한 지시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쉽게 저항하지 못했다. 김 노무사는 "신고하거나 문제삼는 순간 '쟤는 왜 저렇게 나대?''너무 유난이네'류의 시선이 두려워 다들 침묵해왔고, 이게 결과적으로는 황당한 갑질 문제를 더 키운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1일 오후 서울시청 바스락홀에서 '직장갑질119 100일 토론회, 함께 하니 쫄지마'를 개최했다. [사진 직장갑질119]

직장갑질119가 지난 1일 오후 서울시청 바스락홀에서 '직장갑질119 100일 토론회, 함께 하니 쫄지마'를 개최했다. [사진 직장갑질119]

#동료앞에서폭언#그림자취급#성희롱당한나만피해자
'직장 내 괴롭힘'도 제보의 다수(15.1%)를 차지했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다양한 이유로 회사에 찍힌 사원을 집요하게 괴롭혀 스스로 그만두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 제보자는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뒤 노동청에 신고해 복직할 수 있었지만 이후 조직 내에서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 한 마디도 못하고 퇴근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는 상사나 동료들의 성희롱 등이 쉽게 이뤄졌지만 그 끝은 늘 인사이동 등 피해자에게만 불이익이 전가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전국 직장인 1500명에게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73.3%가 '최근 1년 간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부당한 성과평가▶과도한 업무 배정 및 진행사항 체크▶트집과 폭언▶공개망신▶회식강요 등이 있었다. 구체적인 조사 결과는 오는 13일 토론회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직장갑질119로 들어온 을의 제보는 그동안 "직장생활이 원래 이런 거야""시키는대로 하는 게 편해""너만 힘드냐" 등의 말에 묻혀온 것들이었다. 직장갑질119 스태프들은 ▶근로계약서·임금명세서·취업규칙 등의 서류 확인하기▶노동조합 설립▶직장내 노동법 및 노동인권 교육 상시 의무화 등을 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3대 과제로 내세웠다. 김유경 노무사는 "제보를 받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법의 적용을 아예 못 받는 분들이었다.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 등이 이뤄질 때까지 직장갑질119 플랫폼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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