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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통영으로 귀향 확정

유럽에서 고향 통영을 그리워 하다 세상을 떠났던 작곡가 윤이상 선생. [중앙포토]

유럽에서 고향 통영을 그리워 하다 세상을 떠났던 작곡가 윤이상 선생. [중앙포토]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95) 선생의 묘소가 통영으로 옮겨온다. 통영시와 통영국제음악재단은 “이달 초 베를린 시장이 공식 허가했고 이에 따라 유해를 다음 달 통영으로 이장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김동진 통영시장은 “유족의 뜻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추진해오던 일이 6개월 만에 성사됐다”고 말했다. 현재 윤이상 선생의 유해는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치돼 있다.
 
이장 시기는 다음 달 30일 2018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일이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이용민 예술기획본부장은 “통영국제음악당 인근 산에 작은 비석과 함께 소박하게 모실 것”이라며 “고인의 생전 소원대로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고 말했다. 묘소는 봉분 없이 작은 추모 공간만 만드는 것으로 결정됐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윤선생이 음악 교사로 처음 부임했던 옛 화양 국민학교 근처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윤이상 선생.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젊은 시절의 윤이상 선생.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윤이상 선생은 생전에 “유럽에 체재하던 38년 동안 한번도 통영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파도 소리는 나에겐 음악으로 들렸다”며 “나는 통영에서 자랐고, 통영에서 그 귀중한 정신적, 정서적인 모든 요소를 내 몸에 지니고 그것을 나의 정신과 예술적 기량에 표현해 나의 평생 작품을 써왔다”고 했다. 유럽으로 떠난 후 고향에 대한 기억이 더욱 강렬해져서 전통 음악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윤선생은 통영 앞바다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은 채 세상을 떠났고 통영에서 가져온 흙 한 줌과 함께 베를린에 묻혔다. 묘비명은 “윤이상은 고향인 통영에서 퍼 온 흙 한줌과 함께 여기 잠들어 있다”다. 그는 1950년대에 유럽으로 떠나 도나우싱엔 등 각종 현대음악제에 작품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북한에 방문했던 일로 1967년 동백림사건에서 간첩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은 후 독일 문화계와 정부의 도움으로 석방돼 독일로 귀화했다. 이후 남북한 합동 음악제 등을 주도하며 한국 방문을 몇차례 추진했지만 그때마다 불발돼 한번도 귀국하지 못했다.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의 정신과 문화를 연결한 예술가로 꼽히며 지금도 유럽에서 자주 연주되는 작곡가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7월 베를린의 윤이상 선생 묘소를 찾아 동백나무를 심어줬다. [중앙포토]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7월 베를린의 윤이상 선생 묘소를 찾아 동백나무를 심어줬다. [중앙포토]

묘소 이장은 지난해 통영시의 주도로 추진됐다. 통영시가 베를린시에 공문을 보냈고 윤선생의 부인인 이수자(91) 여사가 편지를 썼다. “나이가 구순이 넘어 사후 처리를 걱정하게 됐는데 고향인 통영 땅에 묻히고 싶고 남편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독일의 법에 따라 공원묘지 안치 20년이 지나 이장이 가능해졌다. 김동진 통영시장, 플로리안 리임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가 청와대에 찾아가 여러 차례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해 7월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베를린 윤선생 묘소 옆에 심었던 동백 나무도 이번에 함께 옮겨 오기로 했다.  
 
2002년 시작된 통영국제음악제의 올해 주제도 ‘귀향(Returning Home)’이다. 윤선생 유해의 귀향에 주제를 맞췄다. 오페라 연출가 루트거 엥겔스는 율리시스가 고향에 돌아오는 과정과 윤이상의 삶을 엮어 ‘귀향’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인간에게 고향이 지니는 의미를 묻는 오페라로 동양과 서양의 음악이 함께 들어간다.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바라’도 각각 개막ㆍ폐막(4월 8일) 공연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독일의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스티블 슬론 등이 참여한다.  
베를린에 재개관한 윤이상 하우스. 정식 개관식은 4월에 열린다. [사진 윤이상 평화재단]

베를린에 재개관한 윤이상 하우스. 정식 개관식은 4월에 열린다. [사진 윤이상 평화재단]

  
이처럼 지난해 윤이상 100주년에 시작한 기념 사업들이 올해 결실을 맺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윤이상하우스가 지난달 재개관했다. 윤선생이 살던 집인 윤이상하우스는 자료 전시관, 게스트 하우스, 음악회 공간 등으로 쓰이게 된다.  
  
시민 모금으로 재개관 비용 1000만원을 달성한 윤이상 평화재단은 작곡, 음악이론, 연주, 인문학 등 석사과정 이상 연구자에게 6개월에서 1년동안 입주를 제공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윤이상평화재단 장용철 상임이사는 “윤이상 선생이 단지 역사적 비극의 주인공 같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는 것보다는 그의 음악에서 어떤 부분을 들어야 하는지,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며 “지난해 100주년을 지나면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윤이상을 연구하기 위한 사업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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