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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무른 '교활한 늙은이'"…최영미 시인 성추행 폭로

시인 최영미(57)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계간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린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서 밝혔다. 
최영미 시인. 신인섭 기자

최영미 시인. 신인섭 기자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100권의 시집을 펴낸", "노털상(노벨상을 일컫는 듯한 시어)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는" 시인의 "삼십년 선배"를 겨냥하고 있다. 시 중간에는 Me too라는 행이 등장한다. "En선생"이 자신 역시 "만졌다"는 뜻으로 보인다. 1인칭으로 진행되는 시엔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선생에게 "이 교활한 늙은이야!"라고 항의한 내용까지 담겨있다. 
 
아래는 시 '괴물' 전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황해문화>, 2017 겨울, 128
황해문화에 게재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

황해문화에 게재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

 
정확히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실명 폭로라 해도 무방한 수위다. 이 시는 현재 트위터 '문단_내_성폭력 아카이브' 계정에 공개돼 약 1,500회 가량 리트윗 되고 있다. 이외에도 '#문단_내_성폭력' '#MeToo' 이라는 해쉬태그를 달고 회자되고 있다. 
 
실제 최 시인은 지난해 4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성희롱을 일삼는 한 원로 시인에게 '이 교활한 늙은이야'라고 소리쳤다가 문단 내 왕따가 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지난 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실상 고발 이후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계로 퍼지고 있다. 2016년 문화·예술계에선 한 차례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트위터 등 SNS에선 '#영화계_내_성폭력'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등 해쉬태그와 함께 문화계에 몸담은 여성들의 과거 성폭력 경험이 상당수 공개됐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여성 배우들이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당한 성폭력·성추문 사례를 고발하며 미투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킬빌' 시리즈, '장고:분노의 추적자' 등을 제작한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AP]

'킬빌' 시리즈, '장고:분노의 추적자' 등을 제작한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AP]

 
최근엔 국내 한 여성 영화감독이 동료 여성 감독을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피해 여성 측은 SNS를 통해 "준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고 상대 감독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고 알렸다. 가해 여성 감독은 2017년 올해의 여성영화인 시상식에서 연출상을 받았다. 성폭력 사실이 알려진 지난 5일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측은 수상을 취소했고, 한국영화감독조합 역시 그를 제명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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