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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인데 보수는 인성교육, 진보는 민주시민교육 ‘썰전’

삽화=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삽화=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이젠 인성교육 사업도 민주시민교육으로 이름을 몽땅 바꿔야겠네.”
 얼마 전 NGO 경력 30년차의 간부 A씨가 한 말이다. 그는 “몇 년 동안 ‘인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어린이·청소년 사업을 해왔는데 이젠 그 말을 못 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현 정부가 인성교육 대신 민주시민교육이란 표현을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을 하면서 전에 있던 인성체육예술교육과(인성교육과)를 없애고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A씨는“인성교육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강조되던 사안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쓰는 게 안 좋을 것 같다. 우리가 하던 사업의 문패도 바꿔달아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인성교육이냐, 민주시민교육이냐’는 표현의 방식을 놓고 때 아닌 ‘썰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보수 정권에서 인성교육을 담당했던 전담과가 사라지면서다.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전 국회인성교육실천포럼 대표)은 “전담과를 없앤 건 3년 전 국회가 제정한 ‘인성교육진흥법’의 취지를 무시하는 일이다. 김상곤 부총리가 교육감 시절 만든 민주시민교육과를 교육부에 똑같이 만든 건 개인의 이념 성향을 국가 교육정책에 덧씌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해명은 다르다. 조직 개편 당시 교육부는 “중복된 업무를 통폐합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 이후에도 업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임창빈 대변인은 “과거 인성교육과가 하던 업무를 민주시민교육과가 그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설된 민주시민교육과의 실무자 B씨도 “명칭은 달라졌지만 하는 일은 똑같다”고 이야기 했다. 간판만 바꿔 달았다는 이야기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민주시민교육과의 업무. 과거 인성체육예술교육과의 업무 내용과 비슷하다. [교육부 캡처]

교육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민주시민교육과의 업무. 과거 인성체육예술교육과의 업무 내용과 비슷하다. [교육부 캡처]

 실제로도 교육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민주시민교육과의 업무 내용은 과거와 비슷하다. 인성교육, 학교체육, 예술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이 주요 업무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3급 부이사관급이 맡던 과장 자리가 외부 전문인이 맡는 개방형 직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는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하는 일은 같은데 굳이 문패만 바꿔 단 이유는 뭘까. 또 인성교육과 민주시민교육 사이에는 무슨 차이점이 있는 걸까? 지난 정부에서 인성교육을 담당했던 공무원 C씨의 말이다. “프레임이 다른 거죠. 학교 현장에선 이름이 뭐가 됐든 교육 내용은 똑같아요. 좋은 시민과 바른 인성은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언제부턴가 ‘인성교육=보수’, ‘민주시민교육=진보’라는 프레임이 생겼다는 겁니다.”
울산시교육청은 인성교육을 전담하는 창의인성교육과가 있다. [울산시교육청 캡처]

울산시교육청은 인성교육을 전담하는 창의인성교육과가 있다. [울산시교육청 캡처]

 교육감에 따라 이념 성향이 뚜렷한 교육청을 보면 이 같은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먼저 보수 성향 교육감이 있는 울산교육청에는 교육국 산하에 창의인성교육과가 있다. 대구도 교육과정과 안에 3개의 담당 팀이 있는데 가장 큰 게 창의인성 담당이다. 1명의 책임 장학관 아래 실무자 7명이 배속돼 있다. 반대로 서울과 경기 등 진보 교육감이 수장인 교육청은 조직도에서 ‘인성교육’이란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별도의 민주시민교육과가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4년 조희연 교육감 당선 후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서울시교육청 캡처]

서울시교육청은 2014년 조희연 교육감 당선 후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서울시교육청 캡처]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는 왜 각기 서로 다른 표현을 쓰는 걸까. 첫 번째는 과거에 실시됐던 인성교육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다. 1994년 ‘국민교육헌장’이 없어질 때까지 인성교육은 국가가 특정 이념과 덕목을 주입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왔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진보적인 교사와 이론가 사이에서 시민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할 줄 아는 학생으로 기르자는 취지다. 학교를 민주적인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미에서 앞에 ‘민주’라는 표현도 덧붙었다.  
 
 두 번째는 2012년을 전후해 인성교육이란 단어가 보수 진영의 전유물처럼 돼버린 측면도 있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인성교육을 근본 해법으로 제시하며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한국교총 등 정권에 우호적이던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인성교육실천범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정부 예산도 투입됐다. 2014년 12월에는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됐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중앙포토]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중앙포토]

 그러나 진보 진영에선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김상곤 당시 경기도교육감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만들고 2013년 3월 민주시민교육과를 독립 부서로 신설했다. 이후엔 학교민주시민교육 조례까지 제정했다. 서울교육청도 2014년 조희연 교육감 취임 직후 민주시민교육과를 만들었다. 보수 정권은 인성교육을, 진보 교육감은 민주시민교육을 지지하는 현상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인성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은 목적상 큰 차이가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경기도 조례에 나오는 민주시민 교육의 정의(“민주시민으로서 사회 참여에 필요한 지식, 가치, 태도를 배우고 실천하게 하는 교육”)와 다르지 않다.  
지난해 발의된 인성교육진흥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지난해 발의된 인성교육진흥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둘은 크게 구분해 쓰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의 인성교육은 과거와 달리 ‘바른 품성’ 뿐 아니라, ‘시민적 역량’을 함께 기르는 것으로 인식된다. 정창우 서울대 윤리학과 교수는 “과거의 인성교육은 도덕과 규범의 측면이 강했지만 최근엔 시민적 인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시민교육이 사회와 공동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인성교육은 내면의 품성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의미”라고 말했다.
 
 물론 같은 내용의 교육이라도 문화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Education Civique)와 영국(Civic Education)은 시민교육, 독일은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 미국은 인성교육(Character Education) 등이 주로 쓰인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똑같은 교육 내용을 놓고 두 진영이 서로 다른 표현 방식으로 치열하게 다투는 경우는 드물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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