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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15년전 나도 당해 … 조희진, 제대로 조치 안 해줬다”

여검사들이 ‘검찰 개혁의 기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제 목소리 내기 시작한 여성 검사들

서지현(45·사법연수원 33기) 통영지청 검사가 지난달 말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8년 전 자신의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이후 다른 여검사들도 잇따라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기 시작했다. “남성 위주와 엄격한 상명하복 문화, 폭탄주를 강요하는 음주 습관 등 검찰 내 뿌리깊게 자리 잡은 구습이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소신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네가 사표 써라, 알려지면 너만 손해” 
 
5일 임은정(44·30기)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는 이프로스에 또다시 검찰 내 후진적 조직문화를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이번엔 임 검사 자신도 15년 전 한 선배검사로부터 강제 키스를 당하는 등 성추행 피해를 겪은 사실을 털어놓으며 ‘미투(#Me too)’ 대열에 합류했다.
 
이프로스에 게재된 글에 따르면 임 검사는 2003년 5월 경주지청에서 근무할 당시 자신의 직속 상사인 부장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임 검사는 “집까지 바래다준 A부장이 ‘물을 달라’고 해서 만취한 정신에 안이한 생각으로 물을 주고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줬는데 갑자기 입안으로 들어오는 물컹한 혀에 술이 확 깼다”고 적었다.
 
임 검사는 당시 수석검사를 통해 가해자인 선배 검사가 사표를 낼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같이 근무했던 선배로부터 “그냥 네가 사표를 써라, 알려지면 너만 손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안팎에서 임 검사는 ‘강골’ 소신파로 꼽힌다. 지난 10년간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조직의 반성·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약 50차례 썼다. 2012년 12월 고(故)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장의 민청학련 사건 재심에선 무죄를 구형해 정직 4개월 징계를 받았다. 당시 윗선으로부터 법원 판단에 맡기는 이른바 ‘백지구형’을 하라는 지시를 어겼기 때문이다.
 
조희진 조사단장 자격에 이의제기 
 
5일 작성한 글에서 임 검사는 대검찰청 직속 ‘성추행 사건 진상조사단장’을 맡은 선배 여검사 조희진(56·19기) 서울동부지검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05년 1박 2일 여검사 모임에서 직접 겪은 성추행, 인사 불이익 등 피해 사례를 이야기했지만 당시 여검사들의 리더격인 조희진 검사장이 제대로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며 “지금 내가 조 단장의 조사단장 자격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썼다.
 
지난 4일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을 받았다고 밝힌 안미현(39·41기) 춘천지검 검사 역시 소신파에 해당한다. 안 검사는 “강원랜드 수사가 진행 중인 지난해 4월 당시 최종원 춘천지검장이 갑자기 수사를 조기 종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과 모 고검장,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측근 사이에 많은 연락이 오간 정황이 있다”며 정치권과 검찰 수뇌부의 수사 개입 의혹도 제기했다.
 
안 검사의 의혹 제기에 대해 검찰은 5일 “사실무근”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이날 춘천지검은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을 불구속 기소한 건 당시 수사팀의 의견을 반영한 조치일 뿐”이라며 “수사팀과 춘천지검 지휘부는 안 검사에게 일방적으로 증거목록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권성동 의원 역시 “수사 과정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제가 법사위원장인데 잘못 연락을 하면 압력을 행사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지검장이 압력” 
 
지난해 8월 진모(42·34기) 검사가 자신이 근무 중인 제주지검 내 서열 1·2위인 지검장·차장검사를 대상으로 “몰래 구속영장을 회수하는 등 수사 절차를 어겼다”며 대검찰청에 감찰을 요청한 사건도 있다. 대검 감찰 결과 두 달 전 김한수 당시 제주지검 차장검사가 진 검사가 법원에 제출한 사기 혐의 사건 피의자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를 몰래 회수한 정황이 발견됐다.
 
최근 ‘미투’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 역시 여검사들이 풀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일 출범한 성추행 사건 진상조사단은 전체 검사(7명) 중 6명이 여검사로 채워졌다. 검찰 관계자는 “성범죄 조사의 특수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비록 임은정 검사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단장을 맡은 조 지검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법무부 과장, 차장검사, 지청장 등을 거쳐 2013년 ‘여성 1호 검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문무일 현 검찰총장과 나란히 신임 총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부단장인 황은영(52·26기)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와 실무를 주도하는 박현주(47·31기)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도 성범죄 수사 전문가로 꼽힌다.
 
내부 비난 등 2차 피해 감수하고 나서 
 
여검사들의 잇따르는 소신성 발언은 조직 내부의 비난, 인사상의 불이익 등 ‘2차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고 나선 측면이 크다. 특히 현직 검사가 소속 기관장의 승인 없이 이름·얼굴을 드러내고 공개 인터뷰를 할 경우, 정직·감봉 등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 검사윤리강령상 언론 인터뷰는 기관장 승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서지현 검사도 지난달 28일 JTBC 출연 전 사전에 통영지청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했다면 징계를 피할 수 없다.
 
정영훈 변호사는 “권위주의적 검찰 문화에 길들여진 남성들이 나서지 않으니 참다못한 여성들이 나섰다고 볼 수 있다”며 “여성의 편을 들면 인사 불이익 같은 걸 감수해야 하는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가 현재 검찰 조직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수도권 지검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그만큼 여검사들이 절박하다는 방증 아니겠느냐”며 “조직 내 상급자에게 먼저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 외부로 나올 수밖에 없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사라·김영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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