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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워 아름다웠네, 부모님의 인생극장

대중영화에는 당대 보통 사람들의 심층소망이 숨어 있다. 영화를 보면 시대가 보이는 이치다. 세속의 사회학자 노명우씨는 훌쩍 세상을 떠난 보통 사람, 부모님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옛날 영화를 훑었다. 사진은 1964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빨간 마후라'의 포스터. 반공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60년대의 산물이다. Ⓒ양해남 컬렉션

대중영화에는 당대 보통 사람들의 심층소망이 숨어 있다. 영화를 보면 시대가 보이는 이치다. 세속의 사회학자 노명우씨는 훌쩍 세상을 떠난 보통 사람, 부모님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옛날 영화를 훑었다. 사진은 1964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빨간 마후라'의 포스터. 반공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60년대의 산물이다. Ⓒ양해남 컬렉션

인생극장  
노명우 지음, 사계절 

『세상물정의 사회학』으로 유명한 노명우 아주대 교수
새 책 『인생극장』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모진 인생 복기
영화·소설 참조해 복원했더니 각자도생 현대사의 축소판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상아탑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 세속의 사회학을 개척해온 노명우(52·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씨의 새 책이다. '자전적 사회학'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2013년 10월), 알기 쉬운 시정(市井)의 언어로 생활세계를 풀이한 『세상물정의 사회학』(2013년 12월)을 잇는 또 하나의 '대중사회학' 저술이다. 이번에는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삶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의 일생을 인생극장이라 이름 붙였다. 
 
'빨간 마후라'와 비슷한 시기인 66년에 개봉한 '소령 강재구' 포스터. 당시 군인은 충무공의 후예이자 월남에서 베트콩을 무찌르고 북한 공산당을 쳐부수는 영웅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양해남 컬렉션

'빨간 마후라'와 비슷한 시기인 66년에 개봉한 '소령 강재구' 포스터. 당시 군인은 충무공의 후예이자 월남에서 베트콩을 무찌르고 북한 공산당을 쳐부수는 영웅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양해남 컬렉션

 인생을 극장에 빗대는 수사학은 새로울 게 없다. 세상에 태어난 누구나 자신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연기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나마 잠깐 피었다 지는 꽃처럼, 금세 막 내리는 한 편의 연극처럼 인생은 짧고도 짧다. 당연히 노씨의 입사각은 그런 통속적인 감각과는 거리를 둔다. 오히려 '인간-배우'의 연기를 지시하는 무대 뒤 연출자에 주목한다. 물론 그 연출자는 시대나 전체, 구조, 명분이나 이데올로기 등등의 이름으로 주체의 삶을 규정짓고 조종하는 거대한 손, 사회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어떤 도도한 흐름을 말한다(노씨는 책에서 '껍데기'라고 표현했다). 그 거대한 껍데기에 맞서 저항해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적응해 생존을 도모하느라 '그저 그런' 사람들로 뭉뚱그려지는, 특례(特例) 아닌 범례(凡例)들의 인생궤적을 복원하고자 했다. 
 
노명우씨의 새 책 『인생극장』.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노명우씨의 새 책 『인생극장』.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1924년 충남 공주군의 시골 마을에서 7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난 노병욱, 36년 서울 창신동 우물터의 가난한 집 막내딸로 태어난 김완숙. 자신의 아버지·어머니가 바로 그런 범례였고, "형적 없이 그러나 세차게 흘러가는 힘", 즉 '세상물정'에 순응했던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자신의 부모가 대표하는 평균치의 삶을 그럴싸하게 되살리면 당대의 사회 풍경 전모가 드러나리라는 게 노씨 손에 들린 사전 계산서였다. 
 
김지미가 양공주 역할을 맡았던 1963년 영화 '혈맥'의 한 장면. 양 공주의 매춘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묵인된 '동맹 속의 섹스'였다. 『인생극장』의 저자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가 미군 부대 앞에서 양공주를 들이는 레인보우 클럽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영화에 비친 미군 클럽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 괘적을 상상한다. Ⓒ한양학원

김지미가 양공주 역할을 맡았던 1963년 영화 '혈맥'의 한 장면. 양 공주의 매춘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묵인된 '동맹 속의 섹스'였다. 『인생극장』의 저자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가 미군 부대 앞에서 양공주를 들이는 레인보우 클럽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영화에 비친 미군 클럽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 괘적을 상상한다. Ⓒ한양학원

평균치의 삶이라고 했지만 노씨 부모의 궤적은 꽤나 이례적으로 보인다. 농사꾼이 될 게 뻔한 운명에 염증을 느껴 10대에 만주로 출분(出奔)한 노병욱은 당시 조선에 비해 모던했던 중국에서 사진술을 배워가지고 돌아온다. 전쟁 폐허에서 띠동갑인 김완숙을 만나 결혼식도 없는 신방을 차렸다가 한국전쟁 직후 달러 원조경제의 부유한 냄새를 맡고 경기도 파주 미군부대 코앞에 레인보우 클럽과 미장원을 차린다. 양공주들이 화대를 흥정하는 술집, 그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미장원이었다. 미군 부대의 이전과 함께 클럽은 한국군을 상대하는 비어홀, 다방으로 전업하는데, 유년 시절 어머니의 다방에서 목격한 마담과 레지, 군인과 면회객 사이의 세상물정이 자신의 사회학의 자양분이 됐다는 게 노씨의 고백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조국의 밝은 미래와 다방 손님들의 울분 사이에 가로 놓인 수수께끼를 풀면서 성장했다는 거다.
 
1976년 영화 '고교얄개'의 한 장면. 호철이가 반공 작문을 발표하는 대목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76년 영화 '고교얄개'의 한 장면. 호철이가 반공 작문을 발표하는 대목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문제는 부모의 삶을 복원할 자료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 생전 자식이 살갑게 묻지도 않았고 그래서 굳이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에 대해 말할 이유가 없었던 노병욱·김완숙은 2015년, 2016년 차례로 세상을 떴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 노씨는 몇장 없는 부모 사진을 뒤적거리고, 옛 신문을 오린다. 향토지를 뒤적이고, 박완서·채만식의 소설을 들춘다. 시대 속의 그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다. 스무 살 무렵 징용에 끌려간 노병욱이 '조토헤이(じょうとうへい·상병)'로 근무했던 일본 나고야를 찾아 명물인 나고야 모닝구(카페 아침식사)를 씹고, 소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월사금이 없어 비인가 교육시설에서 조선어을 배워야 했던 소녀 김완숙이 살던 서울 창신동 산동네를 오른다. 흔적 찾기다. 
문화영화는 1962년 영화법에 따라 본영화 상영 전 반드시 상영해야 했다. 사진은 64년 제작된 문화영화 '유쾌한 삼형제'의 한 장면. 선정영화에 나타나는 대통령 가족의 모습은 노명우씨의 부모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유사 가족의 이미지, 이상적인 가족의 이미지로 다가갔다. 대통령 가족은 국민이라는 일체감을 심어주기 위해 전국적 자원에서 공개되고 연출되는 '극장가족'이었다. e영상역사관 제공

문화영화는 1962년 영화법에 따라 본영화 상영 전 반드시 상영해야 했다. 사진은 64년 제작된 문화영화 '유쾌한 삼형제'의 한 장면. 선정영화에 나타나는 대통령 가족의 모습은 노명우씨의 부모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유사 가족의 이미지, 이상적인 가족의 이미지로 다가갔다. 대통령 가족은 국민이라는 일체감을 심어주기 위해 전국적 자원에서 공개되고 연출되는 '극장가족'이었다. e영상역사관 제공

 
 무엇보다 192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옛날 영화를 샅샅이 섭렵한다. 40년 영화 '소학교'를 보며 아버지의 소학교 시절을 상상하고, 64년 본영화 상영에 앞서 의무적으로 틀어줬던 문화영화 '어머니의 지만이의 하루'(여기서 지만이는 박지만, 영화는 박정희 가족을 이상적 가족으로 그린 선전물이다)를 찾아내 당대를 지배했던 국가 이데올로기의 허울을 살핀다. 영화는 적어도 관람하는 시간 만큼은 사람들의 성별·학력·계급 차이를 무력화시켜 동일성의 블랙홀, 단일한 상상의 공동체로 끌어들이는 마술환등(판타스마고리아)이다. 특히 대중영화에는 보통 사람들의 심층 소망이 배어있기 마련이다. 또 상영작과 대한뉴스·문화영화 내용을 결정하던 특례들의 손길을 폭로한다. 
1963년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한 장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해병대원들이 북진을 앞두고 단체로 기지촌을 찾는다. Ⓒ원승숙

1963년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한 장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해병대원들이 북진을 앞두고 단체로 기지촌을 찾는다. Ⓒ원승숙

 
 이렇게 영화와 소설, 일간지와 통계의 도움을 받아 상상해낸 부모의 삶은 고쿠고(國語·일제 시대 일본어)에서 영어로 지배 언어가 바뀌고, 유교식 입신양명에서 처절한 각자도생으로 삶의 준칙이 바뀌는 모진 세월이었다. 책은 그런 삶을 살다간 이 땅의 범례들에게 바치는 뒤늦은 만가(挽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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