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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 떠돌던 세자빈 '죽책', 150년 만의 귀환

150여 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150여 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세도 정치가 판을 치던 1819년, 풍양 조씨 가문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열한 살 딸(1808∼1890)이 한 살 어린 효명세자와 국혼을 올렸다. 하지만 1830년 세자가 급사하며 왕후의 꿈은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의 궁중 생활은 60년이 더 이어졌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즉위한 뒤 남편이 익종으로 추존되면서 ‘신정왕후’로 봉해졌고, 1863년 철종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고종)을 즉위하게 했다. 이후 수렴청정에 나서 경복궁 중건 등을 주도했던 ‘조대비’. '풍운' '명성황후' 등 TV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으며, 2016년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효명세자 역)의 부인으로 채수빈이 연기한 인물이다.
그가 결혼식 때 받은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明世子嬪 冊封 竹冊, 이하 죽책)’이 그의 삶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150여 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31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죽책’을 공개하고, 프랑스 개인 소장자로부터 구매해 국내로 들여온 과정을 설명했다. ‘죽책’ 구매대금 19만5000유로(약 2억5896만원)는 ‘리그오브레전드(롤)’를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전액 지원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효명세자빈(오른쪽). 효명세자(왼쪽)가 1830년 급사한 뒤 60년을 혼자 살며 '신정왕후'와 '조대비'로 조선 후기 왕실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사진은 2016년 방송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사진 KBS]

파란만장한 삶을 산 효명세자빈(오른쪽). 효명세자(왼쪽)가 1830년 급사한 뒤 60년을 혼자 살며 '신정왕후'와 '조대비'로 조선 후기 왕실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사진은 2016년 방송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사진 KBS]

 
죽책은 왕세자ㆍ왕세자빈ㆍ왕세손 등을 책봉할 때 대나무 쪽에 새겨 수여하는 문서다. 착한 일은 권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는 내용을 주로 담는다. 죽책을 비롯한 조선 왕실의 어책과 어보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예술의 시대적 변천을 반영한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번에 귀환한 ‘죽책’은 1857년(철종 8년) 제작된 강화도 외규장각 물품 장부 ‘정사외규장각형지안’에 수록돼 있었지만, 1866년 병인양요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31일 행사에 참석한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철수하면서 340여 종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웠다. ‘죽책’은 그때 소실된 5000∼6000점의 문화재 중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의 추정에 따르면 ‘죽책’은 당시 프랑스 함대 사령관이었던 로즈 제독이 작성한 약탈품 목록 중 ‘상자 3개’ 안에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 도착한 ‘죽책’은 그 뒤 종적을 감추고 만다. 당시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가 종이책만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선왕실의궤 등이 소장돼 있던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왼쪽 아래)이 실린 프랑스 경매회사 '타장' 도록.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왼쪽 아래)이 실린 프랑스 경매회사 '타장' 도록.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죽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6월이다. 프랑스 경매회사 타장(TAJAN)의 경매 물품 목록에 올라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김동현 차장은 “국외 경매에 나온 한국 문화재를 모니터하던 중 ‘죽책’을 발견했다. 소장자는 65세 여성으로 파리에서 보석상을 경영하던 할아버지 쥘 그룸바흐에게 상속받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경매 도록에 나온 ‘죽책’에는 ‘1759년 결혼과 관련된 문서’라고 적혀있었고, 추정가는 1000∼1500유로(약 133만∼199만원)였다. 재단 측은 고화질 사진을 구해 정밀 감정에 들어갔다. ‘죽책’은 ‘효명세자가례도감의궤’(1819)에 글과 그림으로 남아있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과 정확히 일치했다. 재질ㆍ서체ㆍ인각 상태가 매우 뛰어났고 보존 상태도 양호했다. 곧바로 경매회사에 경매 중지를 요청하고 소장자와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유물 가격 16만 유로, 수수로 3만5000유로 계약에 성공한 재단은 프랑스 정부의 문화재 국외 반출 절차를 거쳐 지난 20일 ‘죽책’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죽책’ 구매 대금을 댄 라이엇 게임즈는 2012년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체결한 후 지금까지 43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업이다.  
 
‘죽책’은 6∼7개월 정도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여섯 폭으로 구성된  ‘죽책’의 크기는 높이 25㎝, 너비 17.5㎝이며, 여섯 폭을 모두 펼친 길이는 102㎝다. 고궁박물관의 서준 학예사는 “‘죽책’의 전시ㆍ관리와 학술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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