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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빅터 차, 내정철회 4시간뒤 트럼프 '코피 전략' 맹비난

한국이 아그레망 준 빅터 차 미 대사 내정자 전격 철회 전말
 
지난해 9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부무 장관의 좌담을 진행하는 빅터 차 CSIS 한국석좌(오른쪽)

지난해 9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부무 장관의 좌담을 진행하는 빅터 차 CSIS 한국석좌(오른쪽)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까지 오고간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가 막판 백악관에 의해 인사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빅터 차 내정자(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지명 여부를 묻는 본지 질의에 "그(빅터 차)는 더 이상 백악관의 (주한대사)후보자가 아님을 확인한다(I confirm he's no longer the White House nominee)"고 답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 "빅터 차 내정자가 지난달 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개인적 이견을 표명한 뒤 (주한대사) 지명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 12월 중순 약 6개월 간의 오랜 논의 끝에 빅터 차에 대한 아그레망을 한국 정부에 신청했다. 우리 정부는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 지난해 12월 말 아그레망을 승인했고 백악관의 공식 지명발표만 남은 상태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빅터 차의 아그레망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직접 결재 사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워싱턴의 외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내정자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는 등 특수 상황을 제외하곤 아그레망이 오간 뒤 인사가 철회된 경우는 거의 없다"며 "특히 주한 대사와 같은 주요 포스트가 뒤집힌 적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결정은 어찌보면 문재인 대통령 및 한국 정부가 공식 승인한 아그레망을 내던진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 측은 언론에는 철회 사실을 알리면서 우리 외교부나 주미 한국대사관에는 관련 내용을 일절 전하지 않았다. "고유의 타국 인사권이기 때문"(청와대 관계자)이란 해석도 나오지만 양국이 아그레망까지 주고받은 인사를 전격 철회하면서 단 한마디 없는 것에 대한 결례 논란도 제기된다. 동맹국에 대한 대우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배려는 없다"는 불쾌감의 표시란 지적도 나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그레망이 승인된 후 긴박하게 돌아간 한달 간 사태의 전말을 복수의 핵심 관계자 전언을 토대로 정리해본다.
지난 16일 워싱턴을 방문한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빅터 차를 만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철회는 꿈도 꾸지 못했다. "빨리 지명 발표를 해달라. 그래야 상원 인준을 거쳐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이전에 빅터 차가 부임할 수 있을 것 아니냐." 임 차관은 워싱턴에서 미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다그쳤다. 이미 주미 대사관에선 인준안이 상원에 넘어올 경우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의회쪽을 설득하는 작업을 동시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미국 측은 미온적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상기류가 번졌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지난 24일 밤 초조해진 빅터 차는 마크 리퍼트 전 주한대사 등 여러 지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도대체 난 어떻게 되는거냐?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때를 즈음해 당초 검증 단계에선 발견되지 않았던 강연료 수입, 주한 대사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한국 기업으로부터의 후원이 확인됐다는 등의 미확인 정보가 돌았다. 빅터 차의 후견인 격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갈등관계인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NSC 국가안보보좌관이 막판 뒤집기를 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물론 "빅터 차의 경우 상원에 넘길 자료들이 워낙 방대해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이란 주장이 우세하긴 했다. 이 때 빅터 차와 막역한 관계인 리퍼트 전 대사는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앞으로 2주가 관건이다. 그 때까지 백악관에서 연락이 없으면 '자진사퇴하겠다'고 하라. 말리면 (대사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끝이다. 내가 볼 때 3분의 2는 단순한 시간 상 문제이고, 3분의 1은 진짜 철회할 뜻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2주를 채 가지 못했다. 이로부터 1주일이 지난 30일 오후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빅터 차의 인사철회를 기정사실화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WP가 꼽은 철회 배경은 크게 세가지. 첫째, 대북 정책 상의 갈등이다. 아그레망이 이미 신청된 후인 지난달 말 빅터 차가 NSC 팀과 비공식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타격'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NSC는 북한 핵 시설 또는 미사일 기지만을 골라 폭격을 가하는, 이른바 '코피 전략(bloody nose)'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빅터 차는 WP의 보도가 나온 지 약 4시간이 지난 뒤 마치 준비라도 한 듯 WP에 '북한에 대한 코피 전략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리스크'란 제목의 기고를 올렸다. 한국 국민은 물론 23만 명의 주한 미국인, 9만명의 주일 미국인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자신의 인사철회 배경이 '코피 전략'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둘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위협하는 트럼프의 전략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마지막은 막판에 드러난 '검증 상의 하자'. WP는 지명 과정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 "백그라운드 검증 과정에서 빅터 차가 주한 대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할 적신호(red flag)가 나타났다"고 했다. 구체적 적신호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였던 빅터 차 CSIS 한국석좌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 의해 인사가 철회된 뒤 워싱턴포스트에 '북한에 대한 코피 전략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리스크'란 시위성 기고문을 올렸다. [워싱턴포스트(WP) 캡처]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였던 빅터 차 CSIS 한국석좌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 의해 인사가 철회된 뒤 워싱턴포스트에 '북한에 대한 코피 전략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리스크'란 시위성 기고문을 올렸다. [워싱턴포스트(WP) 캡처]

하지만 현재로선 빅터 차 본인이 함구하고 있고 백악관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아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다. 사실 정책 갈등이라고 해도 이미 6개월 여에 걸쳐 여러차례의 미팅을 통해 정책조율을 끝낸 뒤 아그레망 절차가 들어갔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코피 전략'이나 '한미 FTA 폐기'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아그레망이 뒤집혀졌다면 다음 대사는 그에 찬성하는 사람으로 보내겠다는 이야기냐"며 "이건 보통 이야기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근본적 하자' 또한 장기간의 검증에서 충분히 걸러졌기에 아그레망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보기관에선 "고집이 센 빅터 차 보다는 현재 대사대리를 맡고 있는 마크 내퍼 체제로 가도 된다"는 의견이 개진됐다고 한다. 한 외교소식통은 "특정 요인 보다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철회에 이른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빅터 차를 대신할 후보로는 내퍼 대사대리, 트럼프와 가까운 월가의 지인 등이 거론된다. 어찌됐든 대사 공백이 더욱 장기화될 전망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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