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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 제전인데…'北 주연' 우려에 응답받지 못한 평창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단일팀으로 함께 뛸 북한 선수단에게 1월25일 충북 진천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 앞에서 처음으로 만나 꽃다발을 건네주며 환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단일팀으로 함께 뛸 북한 선수단에게 1월25일 충북 진천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 앞에서 처음으로 만나 꽃다발을 건네주며 환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벌레소년의 ‘평창유감’이라는 노래가 논란이다. “여기가 북한이야, 남한이야”, “전세계가 비웃는 평양 올림픽 난 싫어” 등 직설적인 화법과 욕설을 담은 평창유감에 대한 찬반 논쟁은 평창 올림픽과 관련해 북한에 과도한 관심이 쏠리는 데 대한 우려의 방증이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김정은의 평창 납치(hijack)”(백악관, 23일)를 걱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적 역량이 결집되기보다 북한 관련 논란이 더 부각되는 것은 정부가 초기부터 평창 올림픽의 방향을 '북한 참가'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면서 생겼다는 지적이다. 이러다보니 평창 올림픽을 세계인의 스포츠 제전으로 만들기 위해 외교력을 쏟는 데는 소홀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 참가해야 평화 올림픽” 자승자박=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평창의 밤’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평화 올림픽을 성사시키는 어렵지만 가치 있는 도전에 나서려 한다”고 밝혔다. 이 때부터 사실상 평화 올림픽 달성의 기준은 북한 참가 여부가 됐고, 정부는 이를 위해 외교력을 집중했다.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 뒤 나온 한국 측 언론발표문에 “양 정상은 평창 겨울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 및 동북아 긴장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그렇게 나온 결과였다. 이 한 문장을 위해 정부는 한·중 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갈등을 매듭지으려 속도전을 벌였고, 대중 저자세 외교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미국 내 기류도 심상치 않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미국 내에서 한국이 북한에 끌려다닌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방남한 이후 이런 기류가 더 강해졌다”고 귀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보스 포럼에는 참석하면서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는 오지 않는 것을 두고도 외교가에서는 뒷말이 많다. 주한 미 대사 자리도 1년 가까이 공석이다.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최종 주자 임춘애씨가 성화봉송을 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최종 주자 임춘애씨가 성화봉송을 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정상급’ 26명 중 실제 정상은 10명뿐=‘VIP 출석률’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청와대는 21개국에서 정상급 인사 26명이 방한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중 국가 원수인 대통령과 행정 수반인 총리 등 실질적 국가 정상만 따지면 10명밖에 되지 않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은 이미 지난해 11월 무렵 확정됐으나, 최근 돌연 취소됐다. 26명 중엔 네덜란드의 정상급 인사만 4명(총리, 국왕, 왕비, 공주)이다.  
 
이는 시 주석을 포함, 36개국에서 정상급 인사 40여명이 찾았던 2014년 소치 겨울 올림픽과도 비교된다. 당시 미·러 갈등으로 미국, 프랑스, 영국 정상이 대거 불참했었다. 평창의 경우에는 이런 눈에 띄는 외교적 갈등이 없는데도 동맹·우방국 정상 중 사실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만 방한한다.   
 
 외교가에서는 30년 전 88 서울 올림픽 당시 스포츠 외교전 때와 같은 치열함을 평창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서 진영의 해빙 분위기 등 국제 정세의 큰 흐름과 여름·겨울 올림픽이라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외교적 환경에서 160개국 참가(한국 포함), 부총리급 이상 10여명 참석 등의 성과를 냈다. 소련, 중국 등 15개국은 수교도 하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특히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동구권이,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서구권이 보이콧한 상황에서 동서 진영이 모두 참가하는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다는 의미가 컸다.  
관중석에서 바라본 88 서울 올림픽 폐막식 공연. [국가기록원]

관중석에서 바라본 88 서울 올림픽 폐막식 공연. [국가기록원]

 
◇서울 올림픽 땐 미 수교국 상대 ‘암흑 속 교신’ 치열한 외교전=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1931~2017)은 1990년 낸 책 『위대한 올림픽』에서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과 세부사항을 교섭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이들이 우리와 40~50년 간 차단돼 있던 나라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돌아보며 이를 “암흑 속의 교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련의 서울 올림픽 참가를 성사시키기 위해 도쿄 호텔에서 수차례 소련 사절단을 만난 사실도 소개했다. 소련 선박의 인천항 입항을 성사시키기 위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직보도 불사했다. 6·25 전쟁 발발에 책임이 있는 소련은 당시 한국에서 소련 선수단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크게 걱정했다. 이에 정부는 구두와 문서로 신변 안전을 약속했다.  
 
이밖에도 암초는 곳곳에 있었다. 대한항공(KAL) 여객기 폭파 테러 등 북한은 공공연한 방해공작을 펼쳤다. 87년 민주화 시위가 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한국의 국내 정세가 혼란스럽다는 인식도 퍼졌다. 미 상원은 안전과 전두환 정권의 인권 침해 문제 등을 이유로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적절치 않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최광수 당시 외무부 장관은 2012년 방송에 출연해 “한 나라 한 나라 다 설득하기 위해 전 재외공관이 나섰다”며 “안전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소련과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우방국들과 외교 교섭을 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인사들은 모든 미 수교국을 방문했고, 159개국으로부터 ‘응답’받았다.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뒤 공연. [국가기록원]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뒤 공연. [국가기록원]

 ◇“평창 그 자체로 안전하게 치러야” 원로들의 조언=이같은 노력은 서울 올림픽 이후 북방외교라는 열매로 이어졌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평창 올림픽 이후의 외교 큰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올림픽 때 현장에서 뛰었던 원로들은 평창 올림픽을 세계의 스포츠 제전 그 자체로 성공적으로 치르고 한국의 역량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서울 올림픽 조직위 국제담당 차장이었던 전상진 전 외교협회장은 “북한이 오든 안 오든 겨울 올림픽의 성패와는 상관이 없다. 지나치게 모시려는 듯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또 “사고 없이, 신기록도 많이 나오고, 왔던 선수들이 만족하고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직위 국장이었던 김삼훈 전 주유엔 대사는 “북한이 평창 참가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다른 중요한 것들도 많다”며 “여름·겨울 올림픽을 모두 주최한 나라가 세계에 몇 없다. 그 자체로 국민적 자긍심을 갖고 안전하게 잘 치르면 된다”고 말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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