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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빚 쉽게 면책해주니 … 연리 39% 대출도 “일단 받고보자”

가계부채 리포트<상>
 

대부업체는 파산자에게도 빌려줘
개인회생 2번 받고 또 빚진 30대
“잠깐 빌려 모면하려 한 것 후회돼”

독일선 회생 신청 전 신용상담 필수
한국선 “자율권 침해” 의무화 무산

지난해 말 실직한 김선호(34·가명)씨는 개인회생만 두 번 했다. 군 부사관 시절, ‘작업 대출’이라 불리는 사기 대출에 당한 600만원을 해결하려고 대부업체를 찾은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최대로 빌린 뒤 여유자금으로 쓰세요”라는 대출 상담사 말이 달콤했다.
 
그는 연 39% 고금리로 1000만원을 덜컥 빌렸다. 막상 140만원 월급으론 이자 33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하기 빠듯했다. 다시 대부업체를 찾았다. 추가 대출을 받았다. 원금만 2500만원으로 불어났다. 빚 갚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는 결국 2012년 법무사를 찾아갔다. 법원에서 개인회생 인가를 해준다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법무사에 120만원을 주고 5개월 뒤 법원에서 개인회생 인가를 받았다. 월 55만원(변제금)씩 5년간 꾸준히 갚으면 빚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책)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
 
김씨는 빨리 돈을 벌려고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큰돈을 만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씀씀이를 도리어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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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영업이 첫 달처럼 되지는 않았다. 점점 소득은 줄었지만 한번 늘어난 소비지출을 줄이지 못했다. 개인회생 중에도 대출이 나오는 대부업체를 다시 찾았다. 은행이나 제2금융권은 신용조회에서 개인회생 중이란 코드가 뜨면 대출을 안 해준다. 반면에 대부업체는 최고금리로 돈을 빌려준다.
 
2015년 소득은 월 1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는데 개인회생 변제금 55만원에 추가로 받은 대부 빚 이자 30만원(원금 1000만원)과 가족카드 빚까지. 급기야 개인회생 변제금이 연체됐다. 또다시 법무사를 찾았다. 기존 개인회생을 폐지하고 재신청했다. 법원은 월 25만원씩 다시 5년간 변제하는 조건으로 두 번째 개인회생을 인가해 줬다.
 
이후에도 김씨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한 데다 결혼으로 돈 쓸 일이 많아지면서 또 대부업체에 손을 벌렸다. 지금은 3개 업체에서 총 1700만원을 대출받아 매달 40만원의 이자를 갚아나가는 중이다. 김씨는 “생활비가 모자랄 때마다 ‘잠깐 (돈을) 빌려서 모면하면 되겠지’라며 대출로 쉽게 해결하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후회한다”고 말했다.
 
개인회생은 소득 중 일정 금액을 5년, 개인워크아웃은 최장 8년간 꾸준히 갚아야만 졸업할 수 있는 채무조정 제도다. 따라서 중도에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이 닥친다면 병원비 같은 긴급 자금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런 경우엔 긴급복지제도 등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문제는 단순히 생활비가 필요해서, 소비를 줄이지 못해서 고금리 대부업체로 곧장 향하는 경우다.
 
김선유 전주시금융복지상담소 상담실장은 개인회생 중 다시 빚을 졌다며 상담을 신청하는 채무자에겐 꼭 “왜 다시 부채가 생겼느냐”고 이유를 물어본다.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하다. “대부업체에서 대출해 줬는데요” 또는 “그냥 생활비로 쓰려고요”라는 식이다.
 
김 실장은 “채무조정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사람이 ‘신용카드 발급을 어떻게 해요’라고 질문해 오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며 “기본적으로 빚을 쉽게 내고, 빚을 두려워하지 않는 등 체질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빚 때문에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인데 왜 빚을 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치료 없이 일단 빚부터 깎아주는 게 문제”라며 “체계적인 교육으로 이들이 다시 채무에 빠지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청년 부채 관련 상담을 해 온 설성호 청춘희년네트워크 대표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채무자를 위한 금융지원·채무조정은 있지만 그 사람의 역량을 길러주기 위한 제도나 프로그램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설 대표는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깨진 채무자가 스스로 수입과 지출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려면 각자 처한 형편에 맞춘 재무코칭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런 인식과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상당수 선진국은 채무 면책에 깐깐한 조건을 달고 있다. 독일·네덜란드는 채무자가 사전에 신용상담을 거치고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법원에 증명해야만 개인파산 신청을 할 수 있다. 프랑스는 절차가 더 복잡하다. 개인 채무자는 곧바로 법원으로 갈 수 없고 반드시 정부기구인 ‘과채무위원회’의 상담과 심사를 거쳐야 한다. 법원으로 보낼지, 말지는 과채무위원회가 결정한다.
 
미국도 2005년 연방도산법을 개정해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하기 전에 사전 신용상담을 의무화했다. 또 파산 선고를 내린 뒤 최종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채무자가 반드시 신용교육을 받도록 한다. 쉬운 면책으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면책 뒤 다시 빚 수렁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2004년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하면서 법원에서 개인회생·파산 절차를 개시하기 전에 사전 신용상담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무산됐다. 국민의 자율적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법원을 통한 개인회생·파산은 신청할 때도, 인가받은 뒤에도 아무런 교육이나 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다. 법무사에게 100만원 안팎의 수수료만 내면 알아서 처리해 준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느 나라나 법원을 통한 절차는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이런 비용을 줄이고 채무자들이 미래에 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금융교육과 신용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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