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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의 ‘노쇼’ 퍼레이드 … 조연 맡은 굴욕의 통일부

온다던 손님은 소식이 없다. 그러다가 불쑥 나타나 주인행세를 하려 든다. ‘이게 누구 덕인 줄 아냐’며 호통까지 친다. 아예 잔칫상을 뒤엎을 기세로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평창 겨울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북한의 요즘 행태다. 이달 초 신년사에서 “남조선 겨울 올림픽은 동족의 경사”라고 치켜세운 건 김정은의 허언이 아닐까 미심쩍을 정도다. 누가 북한을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갑(甲)질’과 몽니의 왕국으로 만들었을까.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로 들어가 본다.
 

“평창올림픽 성공에 북 기여”
심기 건드릴까 정부 저자세

주객전도식 북 행태 지나쳐
“올림픽 구원해줬다” 주장도

청와대 눈치보기 이젠 그만
줏대 있는 ‘꼿꼿장관’ 나와야


통일부에서 가장 ‘통일’이 어려운 숙제는 뭘까. 부처 직원들 사이에 회자하는 이 질문의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통일부 장관’이다. 한자리에 모이도록 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매년 3월 1일 창설 기념일 행사나 역대 통일장관 초청 간담회는 늘 반쪽이다. 보수와 진보 성향 전직 장관들은 집권 정부 성향에 맞춰 편 가르기를 한다. 보혁을 떠나 경험을 전수하고 전임자를 예우하는 풍토는 옛말이 됐다. ‘누구누구와는 상종 않겠다’는 식으로까지 치닫다 보니 “정권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펼치겠다”는 건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뿌리는 1998년 김대중(DJ) 정부 출범부터라 할 수 있다. 대북 햇볕정책의 추진은 이전 정부까지의 중도·보수 성향 노선과 결을 달리했다.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선 처녀 출항과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판을 바꿨다. 김대중 정부 초대 강인덕 장관부터 현 조명균 장관까지 모두 14명이 16차례(임동원·정세현 장관은 각각 2번 역임) 거쳐 가며 그 골은 깊어졌다. DJ·노무현 정부 10년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고지전을 방불케 하는 대립각이었다. 지난달에는 특정 성향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 정책혁신위원회란 조직을 만든 뒤 ‘개성공단 가동 중단’ (2016년 2월) 조치 등을 적폐로 싸잡아 비난하는 일까지 벌였다. 부처 이름을 걸고 장관이 국민에게 보고한 내용이 2년도 지나지 않아 ‘반(反)통일’로 낙인찍힌 것이다.
 
통일부의 대북 편향 및 저자세 사례

통일부의 대북 편향 및 저자세 사례

새해 들어 통일부는 모처럼 물 만난 고기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를 공언하고, 대남 대화 공세에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선수단은 물론 응원과 예술공연 등을 맡을 북측 인원이 속속 평창을 향하고 있다. 예술단 선발대 단장으로 북측이 파견한 실세 여성은 ‘현송월 신드롬’이라 불릴만한 바람을 일으키고 돌아갔다. 과잉의전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얻은 게 더 많다는 분위기다. 이에 힘입은 듯 청와대까지 나서 “북한 참가는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기여할 것”(1월 21일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란 입장을 냈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 속에 위기가 있다’는 남북관계 격언은 빗나가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북한은 평창 행 걸음걸음마다 멈칫하거나 발을 뺄 듯 위협한다. 마치 납폐(納幣) 물목을 들고 신붓집을 어슬렁거리는 함지기 모양새다. 급기야 그제는 남북이 내달 4일 열자고 합의했던 금강산 합동문화행사를 걷어찼다. 지난 20일로 잡혔던 현송월 남한 방문을 전날 밤 “중지하겠다”고 통보해온 데 이은 또 한 번의 돌발 노쇼(no-show)다. 나머지 남북관계 일정도 순항을 담보하기 쉽지 않아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통일부의 대처는 미덥지 못하다. 북한 심기를 건드릴까 딱 부러진 문제 제기조차 못 한다. “겨울 올림픽과 관련한 북한의 진정한 조치를 남측 언론이 모독했다”는 북한의 선전공세를 남쪽으로 퍼 나르는 형국이다. 북한의 약속 위반보다 우리 언론보도를 탓하는 뉘앙스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얼빠진 궤변’이나 ‘가련한 처지’ 등 비방을 펼친 북한 관영통신의 보도에도 눈감는다. 통일부 대변인은 뜬금없이 “북한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 브리핑을 했다. 문 대통령 비판 여론에 맞댓글로 방어막을 쳐온 일부 지지세력도 함구한다.
 
북한이 준비 중인 군사퍼레이드는 부비트랩(booby trap)이다. 올림픽 개막 전야인 내달 8일 평양 김일성광장을 붉게 물들일 비장의 카드다. 김정은이 신년사 원고를 짜면서 정교하게 매설해둔 카드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매년 4월 25일 기념하던 북한군 창건일을 올해부터 2월 8일로 급작스레 당긴 점은 이런 심증을 굳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은 물러터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우연히 겹친 것이라 올림픽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청와대도 “몇 해 전부터 2·8절을 (건군 절로) 기념해왔다”고 강변한다. 모두 틀렸다. 통일부가 연초 펴낸 ‘2018 북한 주요행사 예정표’에 북한군 창건일은 4월 25일로 박혀있다. 붉은색 휴일 표시는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은 듯 선명하다. 대규모 열병식은 신호탄에 불과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평창을 겨냥한 김정은의 결정타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군사퍼레이드에 선보일 핵과 미사일 등 무기체계는 올림픽 폐막 이후 차례로 위력과시에 나설 공산이 크다.
 
진상 고객의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혹여 매상에 도움을 주거나 바람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란 헛된 기대는 버리는 게 맞다. 자칫 판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막판 평창 올림픽에 뛰어든 북한의 주객전도는 상상초월이다. “역대 최악의 인기 없는 경기대회로 기록될 겨울 올림픽을 우리가 구원 손길을 보내주자 남조선이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21일 자 노동신문)는 허황한 주장이 대표적이다. 자신들의 ‘성의’를 무시하면 “잔칫상이 제사상 될 수 있다”(15일 노동신문)고 겁박하더니, 며칠 뒤엔 아예 “남의 잔칫상에 재를 뿌리지 말라”(25일 노동신문)며 주인 자리를 차지할 기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세상이 끔찍해지는 건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 악행을 보고도 저지하지 않는 사람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국제스포츠 행사인 겨울 올림픽을 위해 평창을 찾는 손님맞이는 정중하고 따뜻해야 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규범과 상식이 필요하다. 말로는 ‘성과적 개최’ 운운하면서 뒤로는 온갖 지청구와 패악을 쏟아내는 건 곤란하다. 따끔한 경고와 제제조치가 긴요하단 얘기다.
 
이런 현실에 눈감고 대통령과 청와대 눈치만 살피는 건 대북 주무부처의 정도가 아니다. 북한 김정일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아 60만 대한민국 국군의 자존감을 각인한 어느 국방부 장관은 ‘꼿꼿한 장수’로 불렸다. 이전 정부 때 대통령 뜻을 거역한 문광부의 한 국장급 인사는 ‘참 나쁜 사람’으로 낙인됐지만, 결국 소신 관료로 사필귀정했다. 내년 3월 통일부는 50살을 맞는다. 이제 줏대 있는 꼿꼿장관, ‘정말 나쁜’ 고위 당국자 한 명쯤은 나올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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