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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서두르는 여, 미적대는 야 … 산으로 가는 개헌 논의

최상연의 정치 속으로
국회 헌정특위 지난주 개문발차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 쟁점이지만
여야 채널 없고 회의장 입씨름만

개헌안 연계 때 지방선거 불리한
한국당 ‘6월 개헌 불가능’ 총력전

정파 간 타협으로 개헌된 적 없어
2월 말 후 청와대안 현실화될 듯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가 지난 주 두 차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며 정치권이 또다시 개헌 논의를 시작했다. 여야가 지난 연말 ‘개헌특위 6개월 연장’에 가까스로 합의한 결과다. 전망은 밝지 않다. 개헌 시기와 권력구조 형태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서로 한 치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과연 6월 개헌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시작과 함께 산으로 가고 있는 개헌 논의를 짚어봤다.
 
23일 오후 3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3층에선 국회 헌정특위가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열렸다. 인선 후 첫 회의였던 만큼 시작 땐 덕담이 많았다. ‘나라의 근본 틀을 바꾸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앞뒀지만 반드시 해법을 만들자’는 다짐이 이어졌다. 그러나 평화로운 분위기는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정회와 속회를 반복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투표를 해야 한다는 민주당 입장과 이에 반대하는 한국당 입장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정작 개헌 이슈는 꺼내지도 못했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이 “개헌을 하려면 국민투표법을 2월 임시국회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헌법개정을 언제까지 해야 하니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자는 건 선후관계가 바뀐 것”이라고 맞받았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설전에 가세하며 회의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사회주의 정부서 지방분권 거론 … 속임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같은 시간 바로 아래층 246호실에선 자유한국당의 개헌 의총이 2시간30분동안 길고도 격렬하게 이어졌다. 2월 임시국회를 앞둔 새해 첫 의총이었지만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진행을 주장하는 청와대와 민주당을 향한 분노와 반론이 불을 뿜었다.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의 문재인 정부가 지방분권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속임수’란 흥분이 줄을 이었다.
 
단상엔 ‘문재인 개헌 NO 국민개헌 YES’란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여당 개헌은 선거용 관제 개헌, 야당 개헌은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이라고 주장했다. 29일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국회의원 연찬회에선 “문재인 정권은 좌파 이념 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해 개헌을 지방선거에 엮어 국민을 속이며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회의를 주재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에게 물었다.
 
6월 개헌 전망은.
“불가능하다.”
 
왜 그런 것인가.
“이번 지방선거는 8~9표를 찍어야 하는 복잡한 투표다. 국가 체제를 바꾸는 중대사를 그런 땡처리, 패키지, 곁가지 식 투표와 함께 처리할 수 없다.”
 
개헌엔 국민적 공감대가 있지 않나.
“여권이 정치적 정략적 이해타산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한마디로 6월 개헌은 안 하겠다는 얘기다. 현재 민주당 의석 수는 121, 한국당은 117석이다. 개헌안 의결엔 국회 재적의원(현 296명)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만큼 어느 쪽이 반대해도 개헌 의결은 불가능하다.
 
개헌투표 선거와 엮이면 2030 투표율 상승
 
개헌에 찬성하는 한국당 의원들이 당론을 따르지 않고 개헌안 의결에 찬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볼 순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도 개헌 정족수처럼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했지만 가결됐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 탄핵 찬성 의원들이 가세한 건 정계 개편과 반기문 카드로 재집권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당 의원들에겐 개헌 찬성으로 얻을 이익보다 눈에 보이는 손실이 크다.
 
무엇보다 개헌 국민투표가 지방선거와 엮이면 야당에 불리한 게 지금의 선거 구도다. 개헌 찬성론이 많아서다. 지방선거가 아니라 개헌 선거로 갈 경우 정권 2년 차 중간 심판의 성격도 퇴색된다. 선거 프레임이 ‘개헌 대 반개헌’으로 흘러버리면 야당으로선 얻을 게 없다. 개헌 투표를 지방선거와 함께 치를 경우 젊은 층 투표율이 높아질 거란 점도 보수당 입장에선 부담이다.
 
야당이 끝까지 반대하면 접점이 없고 당연히 개헌도 없다. 사실 우리 개헌 역사가 그랬다. 정파간 대타협으로 개헌이 된 예를 찾긴 어렵다. 독재와 혁명의 에너지를 빌려야만 가능했다. 그리고 31년 전 시민과 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전두환 정권이 받아들여 만들어진 지금의 헌법은 사실상 개헌을 할 수 없도록 대못을 쳤다. 헌법 개정안은 국회 의결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개헌 보이콧 운동이라도 벌어지면 어느 쪽에서든 개헌이 무산될 수 있다.
 
여권, 문 대통령 최소 개헌으로 논의 집중
 
문재인 대통령 개헌 관련 발언

문재인 대통령 개헌 관련 발언

여야의 충돌 지점은 시기 외에도 권력구조와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있다. 민주당은 헌법 전문과 기본권, 한국당은 권력구조, 국민의당은 선거구제를 최우선 개헌 대상으로 꼽는다. 각자의 이해득실이 엇물려 있다. 제3당인 국민의당은 승자독식의 소선구제에서 벗어나 다당제의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 하지만 거대 여야당이 그걸 선호할 까닭이 없다. 특히 중대선거구로 가자면 영호남당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렇다고 비례대표를 늘리자면 지역구 의원 모두가 반발한다.
 
두 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의 힘을 빼자고 한다. 문 대통령은 선거제 개혁에 합의하면 권력구조는 양보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논의는 다시 선거구제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개헌 가짓수를 줄이자는 아이디어는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회와 정부가 합의를 못 하면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국민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으로 개헌 대상을 좁혔다. ‘최소 개헌’이다. 시한은 2월 말이다. 그러나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정부와 여당은 최소 개헌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쟁점을 줄이면 합의가 쉬워지겠지만 대상이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이라면 개헌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게 문제다. 개헌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건 현행 헌법에서 탄생한 모든 대통령이 예외 없이 불행한 말로를 겪게 된 배경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와 최순실 국정농단이 직접적 계기다. 그런데 권력구조를 제쳐둔다면 개헌을 위한 개헌이 된다.
 
국회 정부개헌안 부결 땐 역풍 가능성도
 
그래서 이번엔 헌정특위 민주당 간사인 이인영 의원에게 물었다.
 
권력구조가 핵심인데 왜 논의에서 빼자는 건가.
“헌정특위서 그 문제도 논의하자는 거다. 그런데 야당이 날짜 정해놓고는 안 한다니 그게 문제 아닌가.”
 
어떤 권력구조가 당론인가. 대통령 4년 중임제인가.
“다음달 초 의총서 결정한다. 2월 말까진 어떻게든 야당과 합의안을 만들겠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난 주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개헌 설문조사’에선 권력구조 개편 문항이 빠졌다. 헌법 전문과 지방분권 등에 집중됐다. 게다가 합의를 만들겠다는 여당은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설득 대신 압박을 택하고 있다. 1987년 당시의 전두환 정권과 비교하며 ‘개헌 세력 대 호헌 세력’(추미애 민주당 대표)이란 표현까지 동원했다.
 
왜 그런 것인가. 여당으로선 합의든 아니든 남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여야가 다음달까지 개헌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그러면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안을 뺀 무난한 개헌안을 제시하게 된다. 국회가 그것마저 부결시킬 경우 개헌 실패의 책임을 야당이 덮어쓸 수 있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과 정치 불신이 모두 높은 상태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회가 개헌안을 부결할 경우 2004년 총선 때의 탄핵 역풍까진 아니어도 강한 반발이 재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조만간 내놓겠다는 건 ‘개헌 대 호헌’ 프레임에서 벗어나겠다는 노력이다. 개헌 시기 논란을 개헌 내용 중심으로 바꾸려는 뜻이다. 그렇다고 6월 개헌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권력구조에 집중하는 개헌 논의가 현실적
 
지방선거가 끝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등 전국적 선거에 따른 정치적 결산이 불가피하다. 어쩌면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 지도부를 꾸려야 할지도 모른다. 개헌 논의는 2차적 관심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은 권력구조 문제에 집중하되 가장 시급하면서 합의 가능성이 높은 최소 개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어차피 정부 형태는 정파간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하지만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건 공감대가 크다. 일단 검찰과 감사원, 공영방송 사장 인사권 등을 대통령이 틀어쥐는 구조를 손보는 방식이 있다. 사법부 독립성 강화, 감사원과 방송위원회 독립기관화와 연결돼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상이몽인 여야가 이런 논의에 착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구나 사실상 ‘분권은 빼라’는 지침을 여당에 준 문 대통령이 이런 힘 빠진 대통령제 개헌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직 대통령의 찬성으로 적기를 맞은 헌정사 10번째 개헌이다. 하지만 실제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아 보이는 난이도 높은 방정식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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