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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법에도 없는 지원 강요하는 정부

대기업과 납품업체는 부품과 대금을 주고받는 협력 관계이면서도 한편으론 끊임없이 갈등한다. 납품대금이 적절한지, 납기일을 못 맞출 경우 피해를 어떻게 처리할지 등 갈등 지점도 다양하다. 이런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원청과 하청, 두 계약 주체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법이 바로 '하도급법'이다.
 

2,3차 협력업체 최저임금 지원에
현대차 1500억원 내놓기로 24일 발표
법에 없는 의무 짊어지게 정부가 '주문'
상생방안 발표 자리에 장관 참석

지난 1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을 제·개정해 공포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이 새로 포함됐다. 최저임금·공공요금 상승 등으로 원가가 증가할 때 하도급업체는 원청업체에 하도급 대금을 올려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요청이 오면 원청업체는 10일 이내에 반드시 협의를 개시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4일 "2·3차 협력업체 지원을 위해서"라며 15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하청업체들의 부담이 커졌으니 이를 보전하겠다는 취지다. 이 자리에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참석했다. 앞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지난 17일 현대차를 찾아 상생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일견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이런 자금 집행은 사실 하도급법의 의무 관계를 넘는 행위다. 2·3차 협력사는 현대차와 거래 관계상 무관하기 때문이다. 3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와 원청·하청 관계를 맺고 있지 현대차와는 '두 계약 주체'에 해당하지 않는다. 2차 협력사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차 입장에선 계약 상대인 1차 협력사의 임금 인상 보전 요청은 들어줄 의무가 있어도 2·3차 업체 지원을 밝히는 건 하도급법에도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이를 "법에 없는 걸 강요하면 기업인에게 배임을 종용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물론 3차→2차→1차 순으로 대금 인상 요청이 올 수는 있을 터다. 그러나 경제부총리가 다녀간 지 며칠 안 된 데다 장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거액 출연을 발표하는 것은 이런 '보텀업'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가 "1차 협력업체의 납품대금을 올려 주겠다"고만 밝힌 것과 대조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장관이 입회한 자리에서 (직접 거래 관계가 없는) 2·3차 업체 지원계획을 발표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리한 강요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소지가 있다. 2·3차 협력사로 돈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보려면 1차 협력사의 자금 집행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하도급법이 금지하는 협력사 경영 개입에 해당할 수 있다. 중기벤처부와 현대차는 그래서 위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묘수'를 냈다. 외부 재단과 은행에 출연금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이 2·3차 협력사 가운데 지원 대상을 정하면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집행하는 방식이다.
홍종학 장관은 현대차를 찾은 자리에서 "대기업에 기금 출연을 계속 요청하겠다. 현대차를 계기로 2호, 3호 상생협약이 계속 나와 줄 것"이라고 말했다.
상생의 방식은 정교해야 한다. 대기업을 순회하며 기금 출연을 강요하는 것은 '과정이 공정하지도, 결과가 정의롭지도'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이 말은 기업들에도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한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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