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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아직 어리단 말이다

동안(童顔)
뷰티 사이트에서 찾은 동안의 조건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얼굴 길이가 짧을수록, 코와 인중이 짧을수록 어려보이고 얼굴 살은 통통하며 기미와 모공이 없는 피부가 동안에 가장 중요하다. 팔자 주름과 다크 서클은 노안의 필수조건으로 꼽힌다.

그 여자의 사전
20대 커리어 우먼일 때는 그여자의 콤플렉스였다가, 30대 주부였을 때는 유일한 자랑거리였다가, 40대 중반 이후부터는 그것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는 것.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을 늘 들으며 살아왔다. 부모님의 판단 미스로 또래들 보다 학교도 1년 먼저 입학했으니 동기들보다는 적어도 1~2년은 어려보이는 게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덥수룩한 아저씨 같이 생긴 동창들이 어찌나 많은지 함부로 반말도 못하고 그 친구들도 나를 거의 동생 취급했다.
 
젊었던 20대 때 동안의 기억은 문전박대와 연결돼 있다. 대학생이 되어 마음먹고 간 나이트 클럽에서 문간에서 쫓겨나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 돌아와야 했다. 졸업 후 만 스물두 살에 수습 기자가 되어서는 첫 업무 현장인 경찰서에서 출입을 제지당했다. 정문에 보초 서던 의경이 도저히 내가 기자라는 걸 믿을 수 없다며 막아서는 바람에 30분을 그와 입씨름을 해야했다. 할 수 없이 울면서 선배 기자에게 전화 했다가 욕만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취재차 어딘가를 방문해 “○○일보에서 왔는데요”라고 하면 신문 구독 알바 학생인 줄 알고 “우리 그 신문 안 봐요”라고 손을 휘휘 저으며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게 주업무인 기자로서는 만만해 보이는 어린 얼굴의 여자란 최악의 조건이었다. 나는 하루라도 더 성숙하고 근엄해 보이고 싶어 안경이나 머리모양, 옷차림을 신경 써 봤지만 별 소용 없었다. 아마 회사를 그만두었던 10년차 정도 되어서야 그나마 입문 단계의 기자로 보였던가. 하여간 일 하는 여성에게 동안은 업무 능력이나 경륜 같은 걸 드러내는데 마이너스만 될 뿐이다 싶었다.
 
이후 한 10여 년 간은 반대로 동안 덕을 많이 봤다. 아이가 다 클 때까지는 어디를 가더라도 “애엄마로는 전혀 안 보여요” “어머, 누나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였다. 젊은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다시 큰 마음먹고 가본 클럽에서도 입장은 물론 나보다 한참 어린 남자들한테 같이 춤추자는 소리까지 듣고 어쩐지 으쓱했다.
 
하지만 동안으로서 누리는 이런 즐거움은 딱 40대 초반까지였다. 30대 초반만 해도 “대학생 같다” 30대 후반에도 “20대 같다”고 해주던 사람들이, 나이 마흔이 넘으니 점점 실제 나이와 가까워지는 숫자를 말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어머, 그 나이같지는 않은데요”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품고 물어봤더니 겨우 두어 살 어린 나이를 말하길래 벌컥 화를 낼 뻔했다. 대학 동창회를 나갔더니 그 옛날 그렇게도 아저씨 같던 ‘노안’ 동창들은 이제는 나랑 더도 덜도 말고 딱 동기동창으로 보였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보니 더 이상은 아무도 내 나이를 의심하지 않을 중년의 얼굴만이 그 안에 있다. 스무 살 시절에는 서른 살쯤 되면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줄 알았고, 또 마흔 살이 되면 세상 모든 걸 다 얻고, 오십이 되면 현명함으로 가득 찬 속을 가질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동안 얻은 것이라고는 가릴 수 없는 주름살과 기미, 흰 머리 같은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SNS의 프로필 사진은 벌써 4년 전 것인데 양심상 바꾸고 싶어 아무리 최근 사진을 뒤적여봐도 차마 올리지를 못하겠다. 더 서글픈 건 이젠 더 이상 ‘십 년 뒤에는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백세시대 긴긴 세월을 어찌 살 수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말을 들을 일이 없는 미래라니.
 
쓰린 마음을 달래며 그동안 동안을 유지했던 비결을 되새기기로 했다. 그건 유난히 큰 눈이나 동글동글하게 생긴 이목구비 때문이 아니라 나이보다 어렸던, 그래서 철 없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테니. 동안에 울고 웃었던 그 시절을 돌고 돌아 이제는 영혼이라도 젊은 사람으로 버티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철들지 않은 채 살아가야겠다는 게 거울 앞에서 소박하게 먹은 마음이다. ●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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