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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나혜석, 세상 속에서 자유를 만나다

1927년 6월 21일, 한 일간지에 세계 일주에 나선 조선인 기사가 실린다. “예술의 왕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동서양 각국의 그림을 시찰하고자 오는 22일 밤 10시 5분 차로 경성역을 떠나 1년 반 동안 세계를 일주할 예정으로…(중략).”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저자: 나혜석
출판사: 가갸날
가격: 1만2800원

곤궁했던 일제 강점기, 기사의 주인공은 나혜석(1896~1948)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개화기 시절 신여성으로 이름 날리던 이였다. 그에게는 특히 조선 여성 최초로 세운 기록이 많다. 동경 유학생이었고, 유화 개인 전람회를 개최했고, 세계 일주를 했다.
 
세계 여행의 경우 일본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퇴임한 남편의 보상휴가에 따라나선 참이었다. 신여성이 경험한 세계에는 자유ㆍ예술ㆍ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 중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천도교 도령 최린과의 불륜으로 결국 이혼하게 되면서 예술가로서 그의 업적은 퇴색되고, 세간의 외면을 받게 된다. 출판사 측은 “나혜석의 여행기는 근대적 개인으로 탈각해 가는 신여성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이라며 “서너 편이 단편적으로 소개되거나 전집 속에 옹송거리고 있는, 나혜석이 남긴 모든 기행문을 집대성했다”고 덧붙였다.
 
부산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ㆍ독일ㆍ영국ㆍ이탈리아ㆍ프랑스ㆍ스위스 등 유럽을 거쳐 미국을 지나, 20개월 만에 다시 부산에 도착하는 그의 여행기 속에는 두 가지 화두가 들어 있다. 여성과 화가로서의 정체성이다.
 
나혜석은 “여자도 인간이다”를 외치는 논쟁가였다. 그는 결혼 후 첫아이를 낳고 잡지 ‘동명’에 ‘모(母)된 감상기’를 발표하기도 했다. “임신을 인정하기 싫었고, 촉망받던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헝클어져 원통한 마음이 컸다”며 모성애가 본능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오늘날에야 놀라울 게 없다지만, 당시 사회에서 그의 주장은 파격이었다.
 
더욱이 여행 중에 만난 세계 여성의 생활상은 나혜석에게 자극이 된다. 그가 본 중국 하얼빈 여성의 생활은 여유롭기만 했다. 아침으로 빵 한 조각을 먹고, 점심으로 곰국을 먹고, 저녁은 점심에 남은 것을 먹은 뒤 화장하고 놀러 나가고 옷은 상점에서 사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름이면 다림질,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조선 여성이 불쌍하다”고 썼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현지 영어 선생으로부터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해 듣고서 훗날 잡지에 글을 쓰기도 했다.
 
화가로서 그는 유럽 여행 중에 인상파ㆍ야수파 계열의 그림을 배우며 즐겨 그렸다. 파리 여행 중에 그는 “처음 파리에 와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 그림을 보고 나면, 너무 엄청나고 자기라는 존재는 너무 보잘 것 없어서 일시적으로는 낙망하게 된다”며 “마치 명태 알 한 뭉텅이가 있다면 대가의 그림은 그 뭉텅이만 하고, 자기는 그 가운데 한 알만한 것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감상한 렘브란트 그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수천 점의 명화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그의 여행기에는 그림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 영향일까. 나혜석이 프랑스 파리 여행 중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화상(1928)’에는 파리의 표현주의 화풍이 고스란히 담겼다. 책의 끝무렵에서 볼 수 있는 자화상 속 우울한 듯 강인한 인상의 여자는 고국에 돌아와 질풍노도의 삶을 살다, 52세에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한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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