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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눈보라와 함께 19세기 러시아로

지난해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요즘 공연계는 여전히 러시아 열풍이다. 대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을 연극·뮤지컬·발레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해 원작의 명성을 업고 가는 무대가 많다. 지난해 7시간짜리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국립발레단이 평창올림픽 성공을 기원해 제작한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들이 화제몰이를 했고, 올해는 1월 뮤지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어 2월에도 뮤지컬 ‘브라더스 카라마조프’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기간: 2월2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문의: 02-580-1300

이 와중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러시아산 뮤지컬’이라서다. 러시아 오케스트라나 발레, 연극의 잦은 내한 공연에 비해 역사가 짧은 러시아 뮤지컬은 뮤지컬 페스티벌에서 짧게 소개된 정도인데, 이번에 대표적인 뮤지컬 프로덕션 ‘모스크바 오페레타 시어터’의 2016년 최신작을 세계 최초 라이선스로 들여왔다. 모스크바에서 1년 넘게 장기공연되며 매진행렬을 이어간 흥행작이다.
 
지나친 압축과 빠른 전개 때문에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지만 톨스토이의 고전 『안나 카레니나』의 스토리가 궁금해 뮤지컬을 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세계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가진 문학·연극·음악·무용이 어우러진 러시아 뮤지컬은 뭐가 다를까. 옥주현·이지훈 등 우리 배우들이 출연하는 한국어 버전이지만, 러시아 프로덕션 알리나 체비크 연출이 직접 연출한 레플리카 방식이기에 자연스럽게 ‘러시아 뮤지컬’만의 예술적 차별점이 궁금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역동적인 무대는 잘 차려진 성찬 같았다. 모스크바의 눈보라를 서울로 몰고와 우리를 19세기 러시아로 데려간 느낌이랄까. LED패널을 장착한 네 덩어리의 2층짜리 블록형 구조물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기차역부터 무도회장, 경마장, 대저택 등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냈고, 영상과 실물이 환각에 가깝게 입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러시아 귀족사회의 생생한 현장감을 구현해 냈다.
 
클래식 발레의 나라답게 안무도 여타 뮤지컬과는 사뭇 달랐다. 롤러 블레이드를 이용한 피겨 스케이트 장면도 현지에서 출장온 러시아 무용수 커플을 중심으로 고난도 안무를 선보였고, 무도회 장면이나 농부들의 풀베기 장면도 예술적인 수준의 군무를 중심으로 볼거리를 채웠다.
 
뮤지컬만의 캐릭터인 쇼마스터 ‘MC’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방대한 소설 원작을 한편의 쇼로 압축시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안나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쇼를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 기차역의 역장 차림으로 등장해 “신사숙녀 여러분 규칙지켜요 그래야 신의 심판 피할수 있죠”라고 노래하는 음산한 보이스는 기차역에서 브론스키와 스치듯 처음 만난 안나가 결국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운명을 예감하는 사신(死神) 같았다.
 
그런데 음악적인 차별점은 초중반 돋보이지 않았다. 클래식부터 록, 팝, 크로스오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넘버 40여곡이 무대를 꽉 채우고 안나 역 옥주현이 폭발하는 고음의 연속으로 명불허전을 입증하긴 했다. 하지만 우리와 감성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다는 ‘러시아 음악’이기에 기대한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선율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압권은 따로 있었다. 엔딩 부근에 안나의 좌절이 극대화되는 오페라 관람 장면에 실제 소프라노 가수가 등장한 것. 소프라노의 허밍과 안나의 울음이 중첩되며 안나의 울부짖음으로 들려올 때, 이전의 아쉬움은 깨끗이 씻겨 나갔다. 풍부한 성량의 소프라노가 편안한 발성으로 들려준 아름다운 아리아 한 곡만으로도 마치 한 편의 오페라까지 서비스로 본 듯한 만족감을 준 것이다.
 
욕망에 충실했지만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안나는 거대한 기차바퀴 모양의 조형물 아래서 피처럼 붉은 드레스를 입고 기차를 향해 뛰어들고, 암전 후 감옥 쇠창살 형태의 조명 속에 간수와도 같은 MC가 홀로 서 있다. 규칙의 감옥에 갇혀 살 것인가, 욕망의 기차를 향해 뛰어들 것인가. 행복의 조건을 찾지 못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와닿았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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