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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맛있는 한식의 꿈

2014년 어느 날 압구정에 위치한 8평짜리 식당. 열정과 의욕이 넘쳤던 셰프는 욕심을 냈다. 집밥을 코스로 내보자-. 스타터 3000원, 메인요리 1만원, 디저트 3000원에 코스를 세팅했다. 스타터는 토마토 주스와 샐러드 그리고 직접 만든 채소 스프. 메인은 천연 조미료로 만든 제육볶음과 막 지은 밥. 디저트로 직접 만든 수제 호떡을 냈다. 마실 물로 곡물을 우려낸 차를 준비했다.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44> 양출쿠킹

점심 시간이 되자 중년의 여성이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마자 컵에 담긴 물을 보더니 떠 있는 곡물을 젓가락으로 다 빼버린다. 스타터 메뉴는 손도 대지 않는다. “소꿉장난해?”라며 가져가라더니, 메인 메뉴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여기 주인장 나오라고 해!” 셰프가 뛰어갔다. “당신 밥할 줄 몰라?” “손님, 음식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밥을 이딴 식으로 하는데 어떻게 식당을 해!?” 셰프는 할 말이 없었다. “손님, 저희 음식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음식 값을 받지 않겠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 작은 공간. 셰프는 이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주방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펑펑 울었다. 큰 돈을 벌고자 시작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저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고 싶었다.
 
양출쿠킹 김승미 셰프(39)의 이야기다. 개명 전 이름은 김양출. 그녀는 원래 탤런트였다. 10년간 드라마에서 베테랑 연기자로 활동했다. 대학원에도 진학해 예술경영을 공부하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하지만 배우의 삶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가 뽑아줘야 하는, 선택당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삶이다. 내 의지로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공부가 길이라고 생각했다. 박사 학위를 따러 일본으로 떠났다.
 
그런데 또 다른 길이 열렸다. 한 잡지의 도쿄 통신원으로 맛집과 레스토랑을 소개하게 된 것.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많은 식당을 가보고 셰프들을 만난 것이 촉매제가 됐다. 늦깎이 서른 살에 박사의 꿈을 접고 요리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동경 핫토리 영양 전문학교에 입학해 일본의 전통 조리기술을 배웠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강행군이었지만 ‘해보자,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독하게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밥집’‘집밥’이 유행이었다. ‘맛있는 밥, 건강한 한끼’라면 자신이 있었던 그는 2014년 5월 ‘양출쿠킹’을 오픈했다. 즐겁게 요리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당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제야 알게 됐다. 첫 달에 번 돈이 1200만원. 이 중에 식자재 비용만 900만원이 나갔다. 좋은 재료를 쓰려고 과하게 욕심부린 때문이다. 인건비·임대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음식에 훈수 두는 손님도 많았다. 경력을 보여주는 게 좋겠다 싶어 그동안 딴 수료증·자격증으로 벽을 도배했다.
 
“한식은 손님들에게 좋은 얘기를 듣기가 힘들어요. 늘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게 일상이에요. 가끔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싶어요. 그런데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요리는 싫었어요. 그저 좋은 재료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는데…. 다 내려놓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합니다.”
 
맞다. 한식은 손이 정말 많이 간다. 깻잎 장아찌만 해도 그렇다. 하나하나 씻어서 다듬고 삶고…. 오랜 손질 끝에 얻어지는 양은 또 어떤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찬이 공짜다. 김치도 식당에서는 그냥 준다. 외국에서는 스몰디쉬도 다 돈 주고 사먹는다. 리필 개념도 없다. 식당에서 반찬을 추가로 돈 받으면 궁색해진다.
 
“당장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지만 식당 운영은 마약과도 같아요. 새로운 음식을 선보일 때의 설레임,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싶은 욕심이 계속 생기거든요. 고민 끝에 그동안 이어온 ‘집밥’ 컨셉트를 조금 바꿔 보기로 했어요. 한식을 베이스로 다양한 맛을 선보이는 캐주얼 다이닝으로요.”
 
현재 주방은 김승미 셰프를 포함해 4명이 맡고 있다. 그 중 프렌치를 전공한 송호윤(26) 셰프가 한식에 프렌치 조리 기법을 접목한 다양한 단품 메뉴를 시도하고 있다. 술과 어울리는 건강한 메뉴를 선보이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 지난해 12월부터 저녁 영업도 시작했다.
 
맛있게 맛본 메뉴를 하나씩 소개해본다. 먼저 아보카도. 식후 포만감이 높아 다이어트에 좋아서 꼭 시켜먹는 메뉴 중 하나다. 생으로 잘라 살짝 소금간 한 아보카도 위에 믹서기에 간 김과 건 새우, 빵가루를 올려 냈다. 크리미한 질감의 아보카도에 아삭아삭한 맛이 감초 역할을 한다. 함께 나오는 와사비 마요네즈 소스에 찍어먹으면 된다.
 
우엉 튀김은 새우 튀김으로 착각할 정도로 비주얼이나 맛이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간장에 졸인 우엉을 튀긴 뒤 고추장소스를 점 찍듯 올려냈다. 스틱 형태로 되어 있어 베어 물기도 좋다. 영락없는 술안주. 맥주 또는 화이트 와인 안주로 강력 추천한다. 하우스 와인이 한 잔에 8000원이라기에 냉큼 주문했다. 산뜻한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이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깔끔하게 씻어준다.
 
다음은 버터와 레몬즙을 넣어 부드럽게 익힌 컬리플라워.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 나오는 것 같이 보이도록 단면을 잘라서 낸다. 직접 만든 엑스오(XO)소스로 양념하고 파슬리를 뿌려낸다. 심심할 수 있는 컬리플라워에 소스의 짭조름함과 감칠맛이 더해져 묘하게 술을 부른다.
 
마지막은 소고기 통 가지. 튼실한 통 가지에 전분을 묻혀 통으로 튀겨냈다. 전혀 기름지지 않고 속은 외려 더욱 촉촉하다. 특제 소스에 채소와 고기를 볶아 올려낸다. 젓가락으로 속을 열어보면 김이 모락모락. 식감이 보들보들하다.
 
메뉴를 하나 둘 맛보다 결국 와인 한 병을 다 비웠다. 배는 부르지만 속이 부담스럽지 않다. 자극적인 안주 일색인 요즘. 건강한 술안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다. ●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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