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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어떻게 한ㆍ중ㆍ일의 수호신이 됐을까

조선, ‘용과 호랑이’(19세기·부분), 221.5x218㎝

조선, ‘용과 호랑이’(19세기·부분), 221.5x218㎝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전 가보니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 속담, 중국과 일본에도 똑같이 있다. 뿐만 아니다.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 ‘범을 그린다는 것이 고양이를 그린다’ 등 세 나라에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속담이 많다. 예로부터 호랑이에 빗대어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동아시아 삼국이 비슷했다는 뜻이다.
 
20세기 초 무차별 포획으로 호랑이가 멸종한 우리나라와 지금도 시베리아 호랑이 보호구역이 있는 중국의 경우, 호랑이는 일상 속 영물(靈物)이었다. 하지만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던 일본에서도 호랑이는 각종 미술품과 속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삼국 공통의 수호신이 된 호랑이, 145점의 작품을 통해 그 기원을 찾아보고 차이점을 살피는 장이 열렸다. 26일부터 3월 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특별전이다.

 
일본, 가노 마사노부(狩野昌信)의 ‘유마·용호도(維摩 龍虎圖)’, 83.3x32.7㎝

일본, 가노 마사노부(狩野昌信)의 ‘유마·용호도(維摩 龍虎圖)’, 83.3x32.7㎝

중국, 옹동화(翁同?)의 글씨 ‘호(虎)’(1902), 133x65.2㎝

중국, 옹동화(翁同?)의 글씨 ‘호(虎)’(1902), 133x65.2㎝

다음달 9일 개막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중 하나가 ‘수호랑’이다. 백호를 형상화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은 “백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호동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ㆍ참가자ㆍ관중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도 상모 쓴 아기호랑이 ‘호돌이’였다.
 
이처럼 한국은 특히 호랑이와 호랑이 이야기가 많아 ‘호담국(虎談國)’이라 불리기도 했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 그림은 청동기시대부터 한반도에 호랑이가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박경은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의 경우 호랑이에게 사람과 가축이 물려 죽은 호환(虎患)기록이 700건이 넘고, 영조 27년(1751)에는 경복궁 안에까지 호랑이가 들어왔다고 할 만큼 한반도에 호랑이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빗댄 중국 속담도 있다. ‘조선 사람들은 1년의 반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 문상을 다니고, 1년의 반은 호랑이 사냥하러 다닌다.’  
 
호랑이 모양으로 만든 휴대용 남성 변기
조선, 김홍도의 ‘소나무 아래 호랑이’(18세기), 90.3x43.8㎝

조선, 김홍도의 ‘소나무 아래 호랑이’(18세기), 90.3x43.8㎝

김홍도의 ‘대나무 아래 호랑이’(19세기 초), 91x34㎝

김홍도의 ‘대나무 아래 호랑이’(19세기 초), 91x34㎝

전시장의 1부 첫머리는 ‘한국의 호랑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백제시대 귀족층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용 변기 ‘호자’와 개성에서 출토된 ‘호자’를 볼 수 있다. 포효하는 호랑이의 등에 손잡이가 있는 휴대용 변기다. 중국에서도 널리 쓰였는데, 문헌 기록이 흥미롭다. “신선이 호랑이의 입을 벌리게 한 뒤 거기에 소변을 보았으며, 이를 호자라고 한다(예창사지ㆍ藝窓私志).” 이처럼 신성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호랑이는 변기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에서 베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부 전시장의 가운데는 진귀한 호랑이 그림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 중 걸작품으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가 나란히 걸려 있다. 소나무와 대나무 아래 호랑이의 모습을 그렸는데, 조선시대 사대부는 이 맹호도를 특히 사랑했다. 호랑이 터럭마저 한 올 한 올 공들여 그려,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박 학예연구사는 “숲에서 은거하던 은사가 출산한다는 의미에서 군자의 출세를 상징하기도 했다”며 “호랑이가 털갈이를 해 가을철 빛나고 융성한 모습이 되는 것을 대인군자의 면모에 즐겨 빗댔다”고 덧붙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험상궂은 맹수의 모습뿐 아니라 자애롭거나 재밌는 모습으로 종종 묘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선주 아시아부장은 “호랑이를 수렵이나 위협의 대상으로만 봤던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수호하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신으로 권선징악을 판단하고 구별하는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서 유래한 수호신  
일본, 매화·대나무·호랑이무늬 접시(17세기)

일본, 매화·대나무·호랑이무늬 접시(17세기)

중국, 호랑이 모양 베개(금, 1115~1234)

중국, 호랑이 모양 베개(금, 1115~1234)

중국의 경우 상대(商代) 청동기(기원전 1600~1046)에 호랑이 무늬가 단독으로 등장할 정도로 호랑이 숭배문화가 일찍이 있어왔다. 사신(使神)으로서 호랑이의 의미도 중국에서 유래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음양오행설에 따라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수호 동물을 배치하면서다. 사신도 중 백호는 서쪽 방위를 맡은 신이 됐고, 수ㆍ당대에 이르러 십이지신(十二支神) 중 하나가 됐다. 수호신으로서 호랑이의 의미는 중국에서 발현되어 한국ㆍ일본에 전래됐고, 오늘날 삼국이 공유하는 호랑이의 기본 개념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전시장에서는 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를 포함해 호랑이 토템을 보여주는 지배층의 무기, 호랑이 도자 베개 등 다양한 공예품을 볼 수 있다.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던 일본은 도교 미술을 통해 사신과 십이지로 호랑이를 접하게 된다. 또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석가열반도에 호랑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호랑이 그림은 무로마치시대(1336~1573) 말기부터 에도시대(1603~1868)에 이르기까지 당시 지배계층인 무가(武家)의 사랑을 받으면서 널리 퍼지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소가 조쿠안(曾我直庵)과 18세기 화가인 가노 미치노부(狩野典信)의 ‘용호도(龍虎圖)’ 병풍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전방과 좌우벽면을 동시에 스크린으로 활용한 스크린X영상으로 야생의 호랑이 영상을 볼 수 있다. 박종우 감독의 다큐멘터리로,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호랑이 야생보호소에서 지난해 가을ㆍ겨울에 찍었다. 동물원 우리 안이 아닌 야생에서의 호랑이를 자세히 볼 수 있다. 들판 위 호랑이의 모습은 여유롭고, 특유의 줄무늬가 신비롭게 보인다. 과거 동아시아인들이 호랑이에게 품었던 경외와 찬탄, 두려움을 떠올려본다면 더욱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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