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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문학과 영화의 힘을 빌려 이야기를 그리다

1930년대 상하이의 주요 영화 클립들을 모아 만든 영상 설치작품 ‘에픽 상하이 i ’(2018), 현장 설치작업, 나무구조물, 거울, 디지털 액자 등

1930년대 상하이의 주요 영화 클립들을 모아 만든 영상 설치작품 ‘에픽 상하이 i ’(2018), 현장 설치작업, 나무구조물, 거울, 디지털 액자 등

작가 조덕현(61·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은 사진을 그리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오래된 사진을 보고 연필을 이용해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려내는데, 물론 사진과 똑같이 그리지는 않고 그 사이에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낸다. 그 상상력이 이번에는 더 넓고 더 깊어졌다. 역사와 영화와 문학의 힘을 빌어서다.
 

작가 조덕현이 창조한
1930년대 올드 상하이와
배우 조덕현

PKM갤러리에서 19일부터 2월 20일까지 열리는 ‘에픽 상하이(Epic Shanghai)’는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동양과 서양을 뒤섞고 압축한, 보기 드문 서사(敍事)가 담긴 대하 드라마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가상 인물이 화면에 등장하는 ‘조덕현 3부작’의 두 번째 시리즈다. 1914년 태어나 1995년 외롭게 죽은 무명 배우 조덕현의 ‘젊은 날의 초상’이 1930년대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거대한 연필화에, 반전된 흑백 사진에, 울긋불긋한 네온 그림 속에 꼭꼭 숨어있다.
 
작가는 왜 하필 193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삼은 것일까. 그의 분신인 주인공은 왜 영화배우를 꿈꾸었던 것일까. 갤러리 바람벽에 걸린 18점의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1930년대 상하이 영화계와 할리우드를 뒤섞고 압축해 그려 넣은 ‘1935’(2017), 장지에 연필, 582x391㎝

1930년대 상하이 영화계와 할리우드를 뒤섞고 압축해 그려 넣은 ‘1935’(2017), 장지에 연필, 582x391㎝

식민지 출신의 20대 아웃사이더, 조덕현을 창조하다
2015년 일민미술관에 전시했던 영화배우 김염(왼쪽)과 영화배우 조덕현의 연필 초상화. 이번 전시장에서는 볼 수 없다.

2015년 일민미술관에 전시했던 영화배우 김염(왼쪽)과 영화배우 조덕현의 연필 초상화. 이번 전시장에서는 볼 수 없다.

2015년 8월 28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꿈’은 가상 인물 조덕현의 말년을 다룬 전시인데, 함께 작업한 소설가 김기창은 전시의 뼈대가 된 이야기를 토대로 단편소설 ‘하나의 강’을 집필했다. 그러니까 화가가 소설가와 함께 작품의 배경과 주인공의 캐릭터를 같이 설정하고 이를 각각 자신의 작품으로 형상화해 내놓은 것이다. 일종의 원소스 멀티유즈다.
 
‘꿈’의 프리퀄(前史)에 해당하는 두 번째 시리즈인 ‘에픽 상하이’에서도 문학과의 협업은 계속 됐다. 이번 공동작업의 주인공은 상하이 출신의 소설가 미엔미엔(棉棉). 소설 『캔디』『소셜 댄스』『팬더 섹스』등을 쓰고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상하이를 퇴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중국 내 활동이 중지돼 현재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다.
 
중국 작가와는 어떻게 연결이 됐나.
“갤러리의 네트워크 덕분이다. 갤러리 전시는 꼭 10년만인데, (갤러리에서 하기엔) 좀 ‘무겁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폭 지원해주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고 메일을 주고 받으며 함께 구상했다.”  
 
가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 전시는 가상 인물의 삶을 들춰내 시각화하는 ‘서사 프로젝트’다. 191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조덕현은 일제 강점기 만주로 이주했다가 가족들을 잃고 상하이로 흘러들어간다. 거기서 상하이 토박이이자 자본가의 딸인 연상녀 홍(洪)을 만난다. 당대의 아이돌인 배우 겸 가수 저우쉬엔(周璇)의 음반이 인연을 맺어준다. 안타깝게도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다.(웃음) 통속적으로 풀지는 말자고 소설가와 합의했다. 이해할 수 없는 시공간에 대해 편지를 통해 정신적 교감을 나누기로. 홍은 미엔미엔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인사이더고, 나의 주인공 조덕현은 식민지 출신의 20대 아웃사이더다. 이 두 개의 시각으로 1930년대 상하이를 풀어내려는 시도다.”
 
왜 1930년대 상하이인가.
“동서양의 자본이 갑자기 밀려와 화염처럼 확 타오르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시공간이다. 현대인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지만 사실 동양과 서양, 전근대와 근대, 식민과 탈식민이라는 가치가 대립한 곳이다. 화려한 이면에는 계층간의 갈등과 범죄, 테러와 전쟁의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우리사는 세상과 비슷하지 않은가. 어디나 불안하고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는 격변의 글로벌 시대. 남의 얘기가 아닌 것이다.”
 
어떻게 착안하게 됐나.
“7~8년전 중국통 친구로부터 루안링위(阮玲玉·완령옥·1910~1935)라는 배우 얘기를 들었다. 지금도 중국인들이 못 잊는 배우로, 상하이에서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다 35년 갑자기 자살했다고 했다. 유서에 ‘인언가외(人言可畏)’라고 적혀 있었는데, ‘사람들 말이 무섭다’는 뜻이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악플에 시달리다 세상 인연을 끊은 요즘 연예인들과 너무 닮았다. 그게 더 영화 같았다. 게다가 당시 영화계의 황제로 불리던 사람은 조선인 김염(金焰·1910~1983·본명 김덕린)이었다. 찾아보니 정말 잘 생겼고, 최초의 한류 아닐까 싶었다. 이만한 연결고리가 어디있겠나. 그렇게 사람과 공간을 발견한 뒤 ‘난 올드 상하이를 할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며 준비해왔다.”  
 
‘미드나잇 상하이 1’(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미드나잇 상하이 1’(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모아 진실을 이끌어내기
‘미드나잇 상하이 2’(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미드나잇 상하이 2’(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미드나잇 상하이 5’(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미드나잇 상하이 5’(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미드나잇 상하이 6’(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미드나잇 상하이 6’(2017), 장지에 혼합재료, 100x100㎝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에 걸린 가로 6m, 세로 4m 짜리 거대한 작품 두 점이 우선 시각적 충격을 준다. ‘꿈꿈’과 ‘1935’다. 장지에 연필로 그려냈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미술이 상당히 발전해왔는데 종이에 연필로 기초 소묘처럼 그려낸 것은 역행이나 퇴행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업에는 멋부리지 않고 돌직구를 던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9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1935’에는 상하이와 할리우드 영화판이 묘하게 섞여있다. 백마를 타고 있는 루안링위 옆에서는 루안링위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고, 전성기의 김염과 할머니가 된 김염의 부인 친이(95)여사가 나란히 건물 베란다에 서 있다. 버스터 키튼과 루돌프 발렌티노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보인다. 건물 옥상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영화배우 조덕현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 출연했던 동명이인 영화배우 조덕현을 모델 삼았다. 조덕현은 인력거를 끌다가 김염을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상하이 영화계에 진출한다. 이 모든 것이 한 화면에 병치돼 있다. 장편 소설을 읽는 것처럼 숨어있는 코드를 즐겨달라는 것이 작가의 주문이다.
 
“사실 서양 미술사에는 역사화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 것들이 거의 하나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저는 다양한 시공간 자료를 가져와 그것들을 한데 압축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증폭시키는 것이 다른 것이죠. 이전의 역사화와는 다른 진화된 형태랄까.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모아 진실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별관 전시장에서는 네온 간판을 그린 ‘미드나잇 상하이’와 건물 사진을 담은 ‘메타포’ 시리즈가 관람객을 맞는다. 사진에 있는 건물은 진짜와 가짜가 혼재돼 있다. 와이탄 등에 여전히 남아있는 옛 건물과 영화 세트장에 만들어진 건물을 찍어 교묘하게 편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흑백으로 반전해 마치 야경처럼 보이게 했다. 이것은 형광색 모래로 액센트를 준 현란한 네온 간판 작업과도 연결되는데, 어떤 간판은 실제 간판이지만 어떤 것은 노래 가사나 당시(唐詩), 혹은 라틴어에서 따온 말을 간판처럼 보이게 했다.
 
“우리 삶에도 가짜가 많죠. 옛날에는 다 진실이었지만 요즘은 페이크가 얼마나 많습니까. 리얼리티와 픽션이 섞여 있는 삶을 살고 있지요. 요즘 애들에게는 게임이 더 익숙한 현실일지도 몰라요. 그런 삶의 모습이 들어가야 요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는 중국어를 모르니까 그런 내용을 부제를 통해 슬쩍 알려볼까 생각중이에요.”
 
마지막 작품은 영상 설치물이다. 작은 창으로 들여다보면 8대의 모니터가 5면 거울에 비치면서 무한대로 증폭돼 보인다. 김염과 루안링위가 출연한 영상 클립들이 만화경처럼 돌아간다. 물론 우리의 조덕현의 모습도 한쪽 켠에 볼 수 있다.
 
“어렵지 않은 언어를 가지고 쉽지 않은 질문을 하는 것이 제 작업입니다. 쉽지 않은 언어로 쉬운 얘기를 하면 뭐하러 전시를 보러오겠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 안에 숨겨진 기호들을 찾다보면 ‘아, 만만한 얘기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습자지에 먹이 스미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조덕현 3부작’의 마지막은 1950~60년대 한국 영화계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해방 이후 귀국한 조덕현이 발전을 거듭하는 한국 영화판에서 행세하는 얘기다. “그래서 영화배우 안성기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귀띔하는 작가는 “3부에서는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다룰 줄 아는 젊은 소설가와 작업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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