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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최저임금 … 맥락 흐트러진 사고가 낳은 단편들

[빠른 삶, 느린 생각] 무엇을 위한 정책인가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적폐청산이라는 계획은 이해할만한 것이기도 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계획이기도 하다. 기구나 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비한 부분들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에 예상치 못했던 불합리와 부패가 끼어든다. 이러한 것들이 정기적인 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초부터 기구 자체가 정권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체제적인 교정 작업은 더욱 불가피하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할 때, 적폐청산이 정치 표어가 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정부에서 그것을 내세울 때, 그 필요에 대한 해명이 반드시 분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부패 사항을 넘어 청산이 어떤 총체적인 사회 이상을 위한 것인가, 어떤 대안적 제도의 수립을 위한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제도 개편, 부동산 규제 정책
전체 아우르는 넓은 시야 아쉬움

핵 버리지 않고 평창에 오는 북한
환영하지만 모순 풀 방안 고민을

트럼프의 일방통행, 흔들리는 EU
혼란기에 필요한 건 연대의 가치

 
여러 차원에서 정치 제도의 개편, 특히 개헌을 중심으로 여러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체제 개편을 겨냥하는지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다. 신문에 보도되는 개혁안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들도 단편적인 것일 뿐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되지는 아니한다.
 
근자에 있었던 정부 조치의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안이다. 그것은 좀 더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나오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전체 계획이 분명치는 않다. 그 조처가 이야기 되자마자 여러 중소 기업체에서 감원을 가져 올 것이고, 전체적으로 실직자 수를 늘이게 될 것이라는 진단들이 나왔다. 사회 안정을 위한 계획이라면, 최저임금 인상과 아울러 고용확대는 물론 넓은 폭의 사회대책의 일부로서 입안되었어야 할 것이다.
 
 
국제 소통 도구인 언어 교육 왜 막나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가격 폭등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큰 관심으로 부상되고, 이런 저런 억제 대책이 발표되었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왜 그렇게 관심을 갖는 것일까? 비전문가로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민의 주택문제 해결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주거 안정은 사회 안정의 기본이다. 필요한 것은 주택의 실수요자에게 적정한 가격의 주택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니면 구입가의 대부(貸付)가 어렵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호화 주택의 가격 통제가 어떻게 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사회정책의 화급한 목표가 되는가?
 
얼마 전에는 유치원 급의 아동들을 상대하는 영어 교육을 금지하겠다는 정부 복안이 발표되었다가 취소되었다. 영어 조기 교육이 아동들의 성장에 유해하다는 것일까? 국어 습득에 장애가 된다는 것일까? 경쟁적 조기 교육 체제를 강화하여, 체제에서 배제되는 아동들이 사회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외국어로 도입되었다가 한국어의 일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한문에 대한 교육은 지금으로 치면 초등 교육 또는 유치원 교육 이전에 시작되었던 외국어 교육이었다. 외국어 교육은 언어를 사고의 수단으로 재인식하게 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본질적인 의의를 넘어, 오늘날 영어는 세계 언어가 되어 있다. 영어 습득은 학문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국제 소통과 교역에서 이점을 얻는 일이다.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보면, 정부나 국가가 하여야 할 일들 가운데 사소한 것들이지만, 적어도 오늘의 정부 전체적인 향방에 대하여 어떤 것들을 과제로 삼고 있는지 짐작을 어렵게 하는 단편적 조처들이다. 정부가 하는 일은, 작거나 크거나, 그 정책의 전체적 향방을 짐작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런 전체의 맥락, 상황 이해의 맥락, 그리고 나아가 삶의 구도 전체에 관계하여 당혹감을 주는 일 하나를 더 보태어 말한다면,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 관계의 문제이다.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이 협조하고, 같은 팀을 구성하고, 또 그 예비 단계로서 북에서 온 점검단을 맞이하고 환영하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국민에게 할 만한 일로 생각될 것이다. 남북이 핵전쟁의 위협 하에 놓일 정도로 긴장되어 있는 관계에서 그러한 협조 관계가 있다는 것, 또는 미소로서 서로 대하는 만남이 있다는 것은 이 긴장관계에 숨통을 트는 일이 된다 할 수 있다.
 
갈등과 대결을 피하지 못하면서도, 미소의 교환만으로도 인간으로서의 공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상호 관계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정치적 군사적 대결을 피하지 못할 듯하면서도, 그것을 넘어가는 인간의 상호 인정을 확인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것은 인간사의 인간적인 기초를 확인하는 일이고 거기로 복귀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비인간적, 그리고 비민족적 위협과 긴장을 넘어 남북 간에 민족적, 인간적 유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되풀이 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그에 더하여 필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가 비인간적 협박과 대결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 관계하여 북의 대표들에게 환영의 뜻을 표하는 것은 핵전쟁의 위험에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두 가지 사항의 모순된 연결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연결의 모순을 잊어버리는 것은 현실 전체에 대한 인식을 포기하는 일이다. 적어도 당국자의 입장에서는 유대와 함께 모순에 대한 의식 그리고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행정 조치나 정책은, 그 자체로는 작은 것일지라도, 더 큰 테두리 속에서 생각되고, 결정되고, 시행되는 것이라야 한다. 사람들이 정책이나 조처에 수긍하는 것은 그에 대한 사실적 이론적인 검토가 있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사회·정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
그런데 전체적 맥락이 없는 정치 사고와 행위의 단편화는 오늘날 세계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은 언제나 분명하게 의식되지는 아니한다. 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분위기가 그것을 의식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까지는 이데올로기와 그 대결이 그러한 의식을 가지게 하는 매체가 되었다. 위에 말한 한국 정부의 사례들과 같은 단편적 정책의 차원에서가 아니고 더 큰 차원에서에서의 일이라 하겠지만, 세계 여러 곳에서 지리멸렬한 결정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를 큰 틀에서 보는 일은 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정책 행위는 점점 단편화된다. 거기에 따르는 문제들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언급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여러 정책적 판단에 일정한 일관성을 부여하였다. 공산권의 존재는 사회적 평등의 의미를 강하게 의식하게 하였고, 이에 대하여 자본주의 진영의 자유주의는 자유의 이념 그리고 인권의 이념을 강하게 의식하게 하였다. 그것이 국가적인 의식을 만들어내고, 또 국가 간의 연대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수호하여야 하는 가치가 확인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지상주의’는 그러한 연대의 필요가 사라진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일방적 민족주의, 인종주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또 그러한 입장에서 나오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유럽에서 일어났던 가장 분명한 정책적 선회는 영국이 2016년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그것은 유럽 평화의 이상과 연대를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국민도 여론 조사에 의하면, 대체로 그러한 탈퇴를 지지한다고 한다. 며칠 전의 인터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하였다. 독일에서는 총선 3개월이 지났는데도 기독교민주연합(CDU)과 사민당(SPD)이 연합 정부에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독일대안당(AfD)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오스트리아에 극우 정당 오스트리아민중당(OVP) 정권이 성립한 것도 이념이나 가치 통합의 필요가 적어지고, 지역적인 문제 그리고 단편화된 정책 문제들이 중요한 것이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 또는 체계화된 정치 이념이 현실에 대한 편향적 판단에 기초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향방을 예상할 수 있게 하고, 그 나름의 인간적 삶의 전체에 대한 이해를 버리지 않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 테두리 안에서는 맥락 없는 정책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많이 밝혀진 바와 같이, 이념적 정치 구도는 대체로 인간의 현실과 이상을 단편화하고 왜곡한다.
 
요즘 보도되는 우리 정부의 정책들은 이중의 단편화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책의 많은 것은 어떤 이념성에 입각한 것으로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와 정치 현실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회적 확신이 전체적 이해를 보장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는 냉전 종식 후의 많은 정치관이 그렇듯이, 그 소신이 개념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하고 아직도 암중모색의 상태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 정부의 정책에서 깊고 넓은 시각의 존재가 확인될 수 있는지 여부는 더 기다려 볼 도리 밖에 없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심미적 이성의 탐구』『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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