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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1969년 3만원에 팔렸던 충청도 시골집

기자
더오래 사진 더오래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 ⑱ 이덕희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충청도 시골에서 인천으로 전학했던 1969년 5학년 시절의 반 단체 사진이다. 세어보니 85명이다. 당시 58년생이 대부분이었던 5학년은 열세반이나 되었으니 한 학년이 천명을 넘었다. 
 
인천으로 이사하기 전 살던 집은 아버지가 대가족 살림에서 분가해 새로 지은 초가였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배려해 헛간이 아닌 마루 끝에 화장실을 만드셨고, 친구들은 동네에서 유일한 화장실에서 일을 본다고 우리 집을 찾기도 했었다. 
 
누이와 형은 10리 길을 걸어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녔지만 내가 학교에 갈 즈음에는 마을에 분교가 세워져 하루 서너 시간의 긴 통학을 피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농사도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신 요즘 식으로 신지식인이었다. 하지만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업생산을 늘리고자 했던 1960년대 농촌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하셨던 것 같다. 
 
1969년 자식 교육을 위해서는 도시로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천으로 이사했다. 인천의 작은 집 마련하느라 농사짓던 밭과 집, 소도 팔았는데 그래도 꽤 컸던 시골집이 3만원으로 소 한 마리 값에도 미치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1975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서클활동을 같이했던 친구들과의 사진이다. 1년 먼저 평준화를 실시한 서울, 부산과 달리 인천에 살았던 나는 마지막 고교입시 세대였다. 
 
내가 응시한 인천의 제물포고등학교는 열두 반에 720명을 뽑았는데, 서울과 부산의 명문고가 사라졌기에 제주도와 울릉도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몰려들어 합격생을 낸 중학교가 무려 172개나 되었다.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에 따라 3년 내내 무감독으로 시험을 보았다. 험한 세상 사는데 양심교육이 될 법이나 한 얘기냐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 또한 대부분의 동창과 마찬가지로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진의 친구들과는 고등학교 시절 한 번도 같은 반을 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직접 실험실을 운영하도록 했던 생물반 활동을 통해 일을 기획하고 여럿이 함께하는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끈끈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세계환경회의에 민간 대표단으로 참석했던 사람들과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있는 예수상 앞에서의 기념사진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리우는 꼬박 24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 곳이기도 했지만,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사치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성장주의 시대였기에 이 회의 자체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185개국 대표가 참가하고 그중 역대 최대로 114개국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환경문제를 논의하면서 국내에서도 취재 경쟁이 불이 붙었다. 민간 대표단에는 기자를 보내지 못한 언론사들로부터 하루가 멀다고 두 개의 인공위성을 통해 연결되는 전화 인터뷰가 쏟아졌었다. 
 
귀국 후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요구가 많아 방송국 인터뷰, 단체 강연과 잡지 기고 등으로 한동안 바빴던 기억이 남아있다.
 
2000년대 초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평창의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1986년 선배의 소개로 만난 아내와 결혼하고 부천에서 전세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장미맨션빌라’라는 이름은 거창했지만 두동에 10여 채에 불과한 연립주택이었다. 
 
서울의 강남까지 하루 서너 시간 전철과 버스로 통근하는 직장생활, 자녀들에 대한 국가보조가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게 상식이었고, 우리도 아들, 딸 하나씩 낳았다. 
 
새벽같이 나가 해가 지면 집에 들어오고, 토요일도 2시까지 근무하던 시절이라 여름 휴가철이 되어야 가족 여행도 가능했다. 우리보다는 애들에게 도움이 되는 여행을 하자는 생각에 휴가철마다 역사유적이나 새롭게 만들어진 곳을 주로 찾아갔다. 
 
이때도 오대산 월정사를 방문한 뒤 우리나라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보여주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1년 전 출범한 한국분석과학기기협회창립 기념사진이다.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하던 학생 시절과 달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국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키는데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과학기술 전문회사에 다니면서 비록 직접 연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 연구소, 기업의 연구개발이 잘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업무가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과거의 모방형, 추격형 성장시대를 넘어 창조적이고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는 연구 장비의 국산화 개발과 관련 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국분석과학기기협회를 창립하였고 초대회장을 맡게 되었다. 아직 고가의 첨단연구장비가 미국, 독일, 일본 등 소수의 진정한 선진국에서만 생산되고 있어 협회가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지난 60년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딛고 일어서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처럼, 이 또한 언젠가는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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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 기간: 2018년 1월 31일까지      
보낼 곳: theo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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