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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베풀어라

삶과 믿음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 폭설이 쏟아진 뒤 기온이 급강하해 길바닥도 꽁꽁 얼어붙어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다. 개와 고양이 등 집짐승들을 거두는 일, 아궁이에 불 지필 장작을 패는 일 외엔 특별한 일이 없다. 옛 선비가 “세상에 두 가지 큰 일은 밭 갈고 독서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한겨울이라 밭에 나갈 일은 없으니, 책 읽는 일로 소일을 하는 셈. 꽤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프랑스 신부인 샤를 델레의 『소용없는 하느님』이란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샤를 델레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일화 하나. 어떤 노파가 오른손에는 숯불이 가득 담긴 작은 화로를 들고, 왼손에는 물이 가득 담긴 유리병을 들고 길을 가고 있었다. 한 젊은이가 노파에게 물었다. “할머니, 그건 무엇에 쓰려고 하시는지요?” 노파가 대답했다. “불은 천당을 태워버리고, 물은 지옥 불을 끄기 위해서라오. 그러면 이제 천당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 젊은이가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해야죠?” “나는 천당에 들어가기 위해서, 혹은 지옥 불이 두려워서 선을 베푸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오. 다만 모든 것 위에 가장 가치 있고, 또한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신의 사랑을 위해 선행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소?”
 
이유 없이 선을 베풀고, 이유 없이 사랑하라는 것. 얼마 전에 읽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성 프란체스코』에도 보면,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신에게 이런 대담한 기도를 바친다. “주여, 제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당신을 사랑한다면 반월도를 손에 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천국의 문을 제 앞에서 모두 닫아버리십시오. 그리고 제가 지옥이 두려워서 당신을 사랑한다면, 영원한 지옥의 불길 속으로 저를 던져버리십시오. 그러나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라면,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당신의 팔을 벌려 저를 반가이 맞아주십시오.”
 
종교인들은 대체로 남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우러나서 한 것이 아니라면 그 행위는 자기 존재와 분리되어 있는, 죽은 행위이기 때문에 신이 기뻐할 리 만무하다. 독일의 수도승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거룩의 바탕을 행위에 두지 말고, 존재에다 두라”고 강조한다. 선한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선한 존재가 되라는 것. 이 순서가 뒤바뀌면, 그런 자선의 행위는 세상에 이로움을 끼칠 수 없다. 자기 안에 거룩한 영의 감화가 없는데도 거룩한 영의 열매임을 가장할 때, 그런 행위는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고, 타인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자선은 우리가 지상에서 피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지만, 그 꽃 피움은 우리의 속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야 하리. 겨울 숲에 핀 상고대처럼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워도 그것은 바깥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해가 뜨면 금세 녹아버리고 말지 않던가.
 
 
고진하 목사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과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원주 한살림 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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