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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수직 피난’뿐 아니라 ‘수평 피난’ 가능해야

전문가 3인 동행 취재
중앙SUNDAY와 동행한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교수, 김영철 경기대 교수, 장근호 우원엠앤이 본부장(왼쪽부터)이 세종병원 화재 원인과 이후 대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송봉근 기자

중앙SUNDAY와 동행한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교수, 김영철 경기대 교수, 장근호 우원엠앤이 본부장(왼쪽부터)이 세종병원 화재 원인과 이후 대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송봉근 기자

27일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건물 곳곳은 검은 그을음이 뚜렷했다. 건물 측면에는 하얀색의 경사구조대 3개가 내리워져 있었다. 경찰이 병원 주변에서 화재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지난 26일 발생한 화재로 37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188명의 사상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현장을 중앙SUNDAY가 긴급 점검했다. 이날 김영철(66) 경기대 공학대학원 소방도시방재 전공 교수와 이창우(53)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소방설계 업체인 우원엠앤이 장근호(50) 본부장 등 소방방재 전문가 3명과 동행해 세종병원 화재 같은 참사를 막을 길은 없을지 자문을 했다.
 
화재 현장을 꼼꼼히 둘러본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소방 관련 법규들을 지킨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조금만 더 사전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법 규정은 다 지켰지만, 자력으로 이동이 어려운 노인 환자들을 구하기에는 현행 법 규정 자체가 현실에 이르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김영철 교수는 “현행 소방 관련 법들은 건강한 일반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도움이 필요한 노약자들이 머무는 요양시설이나 병원에 한해서는 관련 규제를 더 강화해 운영한다”고 지적했다.
 
스프링클러 없지만 불법은 아니다
세종병원의 건물 용도는 ‘일반병원’으로 2008년 준공됐다. 5층짜리 건물로 층당 바닥면적은 394.78㎡. 건물 뒤편에는 세종요양병원이 이어져 있다. 세종병원에는 화재 시 불을 끄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다. 현행법상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건물은 층당 연면적이 600㎡ 이상인 경우다.
 
26일 불은 1층 응급실에서 시작됐다. 담당 의사가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실패했다. 사망자는 2층에서 가장 많았다. 2층 입원 환자 34명 중 19명이 사망했다. 이와 관련, 이창우 교수는 “화재 피해를 키운 것은 열·연기가 쉽게 침투할 수 있는 건물 구조였다”며 “병원 1층에 방화문이 있어 제대로 기능했다면 2층으로 열과 연기가 침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화재 시 열과 연기는 초당 3~5m씩 이동한다.
 
세종병원의 경우 층당 층고가 3.7m 선으로 1초에 한 층씩 불길이 계단을 타고 올라간 셈이다. 세종병원은 1층에 방화문이 없지만, 역시 지하층이 없기 때문에 1층에 방화문을 설치하지 않아도 법 위반 사항이 아니다. 세종병원 같은 중소규모 건물은 비상용 승강기나 제연설비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법상 건물 높이가 31m(아파트 10층가량) 이상인 경우 비상용 승강기를 설치토록 하고 있다. 이번 화재엔 엘리베이터에서만 6명이 사망했다.
 
장근호 본부장은 “건물 규모가 작을수록 안전을 위한 장치들도 줄어드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2015년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요양병원 등은 올해 6월까지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했지만 이번에 불이 난 세종병원은 일반 병원이어서 법 적용 대상도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세종병원처럼 이동약자들이 머무는 시설만이라도 안전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건축법이나 소방시설법 등은 ‘자력 피난’이 가능한 일반인을 전제로 한다.
 
이창우 교수는 “현실적으로 노인 환자 개개인을 따로 대피시킬 만큼 병원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중소형 병원들도 요양시설처럼 ‘수평 피난’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시설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재 시 일반인은 계단 등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가는 ‘수직 피난’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은 수직 방향으로 피난이 어렵다. 때문에 서울 시내 대형 종합병원들은 입원실 중앙의 통로 등에 방화벽을 설치해 놓고 불이 나지 않은 공간으로 이동하는 수평 피난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메뉴얼을 준비해 놓고 있다. 병동 왼편에서 불이 났다면 오른쪽으로 피난하는 식이다.  
 
이동약자 머무는 공간은 안전 규제 강화해야
하지만 중·소규모 병원의 경우 현실적으로 수평 피난 역시 어려운 실정이다. 관련 매뉴얼도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명수(자유한국당) 의원은 “최소 법적 기준만 충족하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반복되는 생명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며 “적어도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처럼 자력구조가 힘든 분들이 이용하는 시설에 한해서만이라도 안전기준을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미 지어진 건물엔 새 법이 소급 적용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스프링클러 등의 시설을 기존 건물에 설치하려면 돈이 든다. 임동오 한국소방시설협회 본부장은 “외국은 이런 비용을 건물주가 물도록 강제하지 않고, 세금 혜택이나 지원금을 줘 설치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1973년 자국의 화재 실태와 예방법 등을 다룬 ‘America Burning’ 보고서를 낸 이후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장애인 등이 이용하는 시설의 경우 화재 감지기와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자동화된 화재 진화 시스템 등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당시 보고서를 통해 관련 시설들의 정기적인 소방점검을 하도록 규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정기 점검을 하도록 하지만 형식적인 점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2월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동탄시 메타폴리스 상가 화재 당시 관리업체가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를 꺼놨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또 요양시설 등을 지을 때 쓰는 벽지나 카펫 등의 경우 최고 수준의 방염 성능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미작동 스프링클러 실태 파악 안 돼
“스프링클러나 화재 감지기 등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더라도 오작동이 많다”는 점도 전문가들은 문제로 지적했다. 제천 화재 당시에도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화재 피해 규모를 키웠다. 더 큰 문제는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의 오작동 비율도 정확히 파악된 바가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화재 감지기 등이 설치돼 있어도 건물주나 관리자 등이 일부러 꺼놓는 경우도 많다. 이상이 없을 때에도 수시로 경보음이 울리는 등 오작동이 많아서다.
 
오작동하는 소방설비와 관련해 장근호 본부장은 “소방시설 공사의 경우 건설사와 소방시설업체 간 하도급 관행으로 인해 저가수주가 반복되고 있어 성능이 우수한 좋은 제품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방시설협회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소방시설 공사와 관련해 건축주 발주금액의 약 87% 선에 수주를 한다. 건축주가 소방시설에 10억원을 투자할 생각이라면 건설사는 이 중 8억7000만원을 가져간다. 건설사는 이를 다시 소방시설공사업체에 하도급을 준다. 소방시설공사업체에 최종으로 주어지는 금액은 5억3000만~7억5000만원가량이다. 그렇다 보니 소방시설공사 업체는 중저가의 자재로 관련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방설비의 오작동이나 미작동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이유다.
 
때문에 소방시설 공사 업체를 중심으로 건설사를 거치지 않고 소방시설 공사는 직접 해당 업체들에 분리 발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기도와 인천광역시 등 14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런 문제를 감안해 조례를 통해 ‘소방시설 공사 분리발주’를 시행 중이다. 현재 관련 내용이 담긴 ‘소방시설공사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밀양=이수기·백경서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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