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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3대째 자랑...‘미국의 항복서’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한반도의 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북한이 즐겨 쓰는 이 위협적인 언사는 60년대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일성이 세계에 던진 대답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푸에블로호를 통한 북한의 대내 선전선동과 대미 비난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23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발생 50주년을 맞아 ‘항복서를 밟으며 지나온 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제가 우리 군대와 인민 앞에 바친 항복서에서 피 절은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끝끝내 침략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원수들의 모든 본거지가 멸망의 최후 무덤으로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24일 ‘자주와 병진, 일심단결로 영원히 승리만을 떨쳐갈 것이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미국은 세계면전에서 위대한 주체 조선에 항복의 사죄문을 섬겨 바쳤다”며 “조미 대결전에서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 패배는 항상 미국의 것”을 강조했다.  
 
미군 소속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북한 해안 40km 거리의 동해 상에서 업무수행 중 북한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됐다. 북한은 그해 12월 미국이 북한 영해침공을 사과하는 사죄문에 서명하고서야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를 석방했다. 
 
평양시 보통강구역 보통강변 전승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미군 정찰함 푸에블로호 [사진 조선중앙TV캡처]

평양시 보통강구역 보통강변 전승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미군 정찰함 푸에블로호 [사진 조선중앙TV캡처]

당시 이 사건을 두고 세계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나포 10여 일이 지난 2월 8일 ‘북한군 창건 20주년 경축 연회’가 열렸다. 여기서 김일성은 “푸에블로호 침범은 조선에서 새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제국주의자들의 계획적인 책동의 일환”이라며 “우리는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초강경 대응을 했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졌을 때 김일성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과장으로 있던 김정일을 불러 “최고사령관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지 한번 결심채택을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김정일이 “미국이 항복서를 내기 전에는 푸에블로호 선원(승무원)들을 절대로 석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항복서를 낸다 해도 푸에블로호는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먼 훗날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후대들에 ‘이것은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빼앗은 간첩선’이라고 말해주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한 고위탈북민은 “당시 김정일의 이러한 ‘담력’이 김일성의 마음에 들었고 후계자 책정에 확신을 주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그해 2월 2일 노동당 선전선동부·군사부 간부들을 모아놓고 “신문·통신·방송을 비롯한 출판보도부문과 대외사업부문에서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자백내용과 증거자료들을 가지고 선전공세를 대대적으로 벌릴 것”을 지시했다.  
 
북한은 미국이 푸에블로호 승무원을 송환받기 위해 서명한 사과문을 ‘한국전쟁 이후 이룬 두 번째 현대전의 승리’로 선전했다. 그리고 푸에블로호는 북한 고급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의 교과서에 실려 젊은 세대들의 반미사상교육 대표자로 됐다. 
 
2014년 북한 교육도서출판사에서 출간한 고급중학교 2학년 ‘김일성혁명력사’ 교과서에는 나포된 푸에블로호 사진과 함께 ‘불패의 힘으로 조국의 안전수호’라는 제목의 반미교육 내용이 담겨져 있다. [사진 김수연]

2014년 북한 교육도서출판사에서 출간한 고급중학교 2학년 ‘김일성혁명력사’ 교과서에는 나포된 푸에블로호 사진과 함께 ‘불패의 힘으로 조국의 안전수호’라는 제목의 반미교육 내용이 담겨져 있다. [사진 김수연]

김정일은 원산항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발각되는 위험도 무릅쓰고 99년 공해 상에서 한반도의 영해를 우회해 동해와 남해를 거쳐 서해 쪽 평양의 대동강 ‘충성의 다리’ 근처에 옮겨 반미선전장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미 대통령의 사과문·승무원들의 사죄문 등을 전시해놓은 푸에블로호 앞에서는 반미공동투쟁월간(6월 25일∼7월 27일) 등에 반미구호를 외치는 청년 학생들과 주민들의 군중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김정은은 아버지를 능가했다. 김정은은 2013년 대동강 변에 머물렀던 푸에블로호를 평양시 보통강구역 보통강변 전승기념관의 ‘노획무기전시장’으로 옮기도록 하고 대형전광판까지 설치했다.  
 
게다가 푸에블로호 나포에 참여했던 군복차림의 노병(老兵)들이 영웅 메달을 달고 전승기념관 강사로서 당시의 상황을 실감 나게 해설하도록 함으로써 참관자들이 체제수호의 결의를 가다듬게 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23일 “미제의 죄악을 만천하에 고발하는 증거물로 되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지난 기간 219만여명의 주민이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푸에블로호 나포 당시의 긴장한 교전상황이라며 보여주는 선체의 총탄자국들이 붉은 선 안에 표식돼 있다. 보통강변에 전시돼 있는 푸에블로호를 참관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푸에블로호 나포 당시의 긴장한 교전상황이라며 보여주는 선체의 총탄자국들이 붉은 선 안에 표식돼 있다. 보통강변에 전시돼 있는 푸에블로호를 참관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그뿐이 아니다. 북한은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2015년 10월 10일)을 앞두고 김일성의 혁명역사 등 북한 근현대사를 소설로 재현한 장편 소설 시리즈 ‘불멸의 역사’ 가운데 『존엄』을 출간했다. 아울러 푸에블로호 사건을 다룬 박태수 작가의 이 소설이 “미국의 말로·조선(북한)의 백승의 원천을 까밝혔다”며 모든 주민이 이 소설을 읽도록 하고 있다.
 
푸에블로호 사건을 ‘승리의 역사’로 자랑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대단하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지금도 당시 승무원들이 임시숙소로 이용했던 건물을 북한군 국방체육단 빌딩으로 이용하면서 현장을 보존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제의 침략 본성은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소속 출판보도부문에서 근무한 고위 탈북민 김모씨는 “황해남도 신천박물관이 한국전쟁 중 미군들의 양민 학살을 소재로 반미사상을 고취하는 곳이라면, 푸에블로호는 미국에 대한 승리로 반미사상을 고취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푸에블로호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핵을 포함한 미국의 대북군사 조치의 ‘선택범위와 한계’를 경험했다”며 “이로부터 얻은 ‘대미협상 자신감’이 김정은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도록 견인했다”고 주장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50년 전 푸에블로호 사건의 결말은 당시 미국 국내외의 정세와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넘기지 않고 승무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자국민 보호의 목적으로 취해진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양교수는 “북한당국은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한 대내선전을 통해서 주민결속을 강화할 뿐 아니라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북·미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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