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달의 예술 - 미술] 기억으로 그린 공기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학자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학자

무자비한 겨울 장군답게 냉혹한 날씨지만 그래도 탁하고 해로운 공기보다는 차라리 추운 게 반갑다. 1월 초에 몰려온 미세먼지로 인해 맑은 공기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또 한 번 실감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그 어여쁜 콧구멍으로 처음 들이쉬는 공기가, 혹은 지금 죽어가는 이가 영원히 가지고 갈 마지막 호흡이 중금속으로 범벅된 먼지라고 상상하면 소름 끼친다. 언젠가 숲에서 마셨던 깨끗한 공기를 차곡차곡 몸속에 저축해둘 수 있다면, 아니면 통에라도 담아 보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기도미술관 ‘공기 그림자’전

공기를 통에 담는다는 발상은 이미 백 년 전에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작품으로 구현한 바 있다. 1919년에 뒤샹은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가는 배에 오르면서 약국에 들러 둥그런 투명 약병을 샀다. 그는 내용물인 주사용 액체를 버린 후, 빈 유리병을 밀봉하여 뉴욕에 있는 부유한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그것이 바로 ‘파리의 공기 50cc’라는 작품이다. 아이디어에 승부를 걸었던 뒤샹다운 기념품이었다. 파리의 공기만큼은 제아무리 부자여도 뉴욕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빈우혁, ‘바이센제어 파크 66’, 캔버스에 유채. [사진 경기도미술관]

빈우혁, ‘바이센제어 파크 66’, 캔버스에 유채. [사진 경기도미술관]

뒤샹이 파리의 공기를 병에 담아 뉴욕에 보냈다면, 젊은 작가 빈우혁은 독일 숲의 공기를 화폭에 담아 한국에서 펼쳐놓았다. 독일에서 경험했던, 사람 대신 쾌청한 공기로만 채워져 있던 숲의 느낌을 작가는 잊을 수가 없다. 삶이 답답하여 하소연하고 싶을 때마다 작가는 무작정 숲을 찾아가 심호흡을 하곤 했다. 숲은 마치 세상의 일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없음으로 그를 맞아주었다.
 
경기도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서 2월 18일까지 열리는 빈우혁 전시의 제목은 ‘공기 그림자’이다. 숲에서 직접 스케치한 작업이 아니라, 숲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기억 속에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공기의 느낌을 그린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바이센제어 파크 66’에서도 공기는 수면에 드리워진 숲의 그림자로 제시되어 있다. 작가가 꿈꾸는 것은 공기를 흠뻑 머금은 숲이지만, 현실에서 추적할 수 있는 건 오직 숲의 표피와 공기의 환영뿐이다. 혹시 이것이 우리의 현재는 아닐지. 
 
◆약력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이화여대 미술사학 박사. 전 이화여대 박물관 학예 연구원. 저서 『그림에, 마음을 놓다』 등.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학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