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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7년 전 단일팀의 벅찬 감동은 어디로 갔을까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을 위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대표팀 소식을 들었을 때 27년 전 남북 단일탁구팀 ‘코리아’가 떠올랐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 나와 북한의 이분희 선수가 복식팀으로 나가 감격스러운 단체전 우승을 거뒀다. 당시 탁구대표팀 선수들은 ‘세계선수권에 남북 단일팀이 참가한다’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 코칭스태프에게서 ‘단일팀으로 출전하니 공항으로 나오라’는 전달을 받고,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소양 교육을 받은 후 비행기에 올랐다. 개막 한 달을 앞둔 상황, ‘단일팀이라니 이걸 왜 할까’ ‘하면 될까’라는 의구심이 컸다.
 

정치적 목적 앞세운 일방적 단일팀
선수들과 소통 없어 큰 상처만 남겨
올림픽 끝난 뒤 ‘나 몰라라’ 말고
여자 아이스하키 발전에 지원해야

그러나 예상보다 훈련은 순조로웠다. 무엇보다 양측이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북한 관계자는 처음 나를 보자마자 “당신이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나를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북측에겐 현정화가, 남측에겐 북한 에이스 이분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남북 코칭스태프는 서로 필요한 둘이 하나가 되면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우리 목표는 중국을 넘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기력과 북한의 경기력 모두 뻔했다. 따로 대회를 나가면 중국을 넘는 게 쉽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남북이 만나면서 시너지가 생겼다. 선수들도 자신감이 붙었다. 결국 우리는 중국을 넘어 정상에 올랐고, 헤어질 땐 서로 끌어안았다. 그게 코리아의 힘이었다. 그런 벅찬 감동이 남북 탁구단일팀에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단일팀에는 그런 감동이 없다. 논란들만 있을 뿐이다. 왜일까. 그 뜨거운 감정을 경험했던 나는 오래전부터 단일팀의 필요성을 꾸준하게 이야기해왔다. 문제는 단일팀에 이르는 과정이다. 시간도 필요하고, 해당 종목 선수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탁구단일팀 때는 선수들은 몰라도 탁구협회가 당국과 사전 교감했고,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을 설득할 시간도 있었다. 선수들도 뜻밖이기는 해도 우리의 전력 강화라는 점에서 별 불만이 없었다.
 
시론 1/27

시론 1/27

그러나 이번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는 모든 것이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됐다. 대회가 한 달도 안 남은 상태에서 충분한 소통 없이 갑작스럽게 단일팀이 추진됐다. 스포츠 외적인 목표를 위해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상대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서로를 만나야 윈윈이 돼 경기력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절차상 문제나 불공정성 같은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나온 당국자의 발언도 선수들에게 심한 상처를 줬다. “메달권도 아닌데” 같은 발언들이다. 만약 “충분히 선수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러나 더 큰 그림을 보자. 정부도 아이스하키 발전을 돕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모든 선수가 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그중 극소수의 선수만이 메달을 따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메달을 따기 위한 모든 노력을 귀하게 여기는 게 스포츠다. 메달권도 아니니 포기하라는 식의 얘기는 선수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단 단일팀을 하기로 한 이상 소모적인 논의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까에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앞으로 남은 2주란 시간은 짧지만, 힘을 합쳐 준비하면 절대 짧지만도 않다. 남북 선수들이 더 빨리 호흡을 맞추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 소통이 필요하다. 필요할 땐 우리 선수들이 많은 것들을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런 배려심이 북한 선수들을 변화시키고, 우리 경기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일팀 결정 과정에는 소통과 합의가 부족했지만, 앞으로 훈련과 경기 과정에는 소통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고, 최대한 자율권을 줘야 한다.
 
정부도 단일팀이라는 이벤트를 넘어 여자 아이스하키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중에 어려운 생계에도 꿋꿋하게 도전하는 선수가 많다. 단일팀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가, 올림픽이 끝난 다음엔 ‘나 몰라라’ 한다면 선수들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단일팀을 계기로 커진 사회적 관심이 정부의 정책 지원과 종목의 안정적인 정착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국가대표 선수라면 국가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 숙명이다. 남북 간에 문을 여는 역할은 스포츠가 먼저 해왔다.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당국의 잘못된 접근으로 단일팀의 출발엔 문제가 많았지만,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멋진 경기로 진정한 스포츠의 힘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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