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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친구내각’ 무능·부패 29대 하딩, 최악 미 대통령 오명

트럼프 취임 1년 … 나라 망친 역대 미국 리더들
지난 14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규범을 무시한 튀는 언행으로 벌써부터 ‘최악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14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규범을 무시한 튀는 언행으로 벌써부터 ‘최악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14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 1주년 분위기는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전임자들과 사뭇 달랐다. 통상적으로는 4년 임기의 첫 1년을 마친 것을 축하하고 공과를 꼼꼼하게 따지며 남은 임기를 차분하게 전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타임 등에 따르면 트럼프에겐 곳곳에서 ‘최악의 대통령’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15대 뷰캐넌 노예제 대립 방치
60만 생명 앗아간 남북전쟁 유발

31대 후버 신념 앞세워 개혁 미적
대공항 대처 못해 국가 위기 불러

냉전시대 종식 이끈 37대 닉슨
선거부정·거짓말로 날개없는 추락

43대 부시 허위 정보로 이라크전
국제사회서 국가 신뢰 떨어뜨려

 
사실 트럼프는 지난 1년간 자리에 걸맞지 않은 튀는 말과 행동으로 자질과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낳아왔다. 미국 국내에선 인종차별과 여성혐오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해외에선 지난해 12월 6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선포, 6월 1일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 5월26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동맹 의무 다짐 거부 등으로 평지풍파를 불렀다. 트럼프는 계속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지만 규범을 무시한 그의 언행은 국제사회의 균형과 안정을 뒤흔들어 오히려 미국에 대한 신뢰와 위상을 떨어뜨린다는 평가다. 미국 내에선 갈라진 국민을 통합시키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외려 심각한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이에 못지않은 ‘최악의 대통령’이 적지 않다.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삼권분립 하에서 의회와 사법부가 견제해도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 중심제의 특성상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1948년 이후 이뤄진 미국 역사학자나 대중 대상의 조사에서 최악의 대통령으로 거론된 인물들의 ‘실정’을 파악하면서 대통령제의 문제점과 교훈을 찾아본다.
 
 
고향 포커 친구 내무장관에 앉혀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들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들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 1위 단골은 29대 워런 하딩이다. 잘못된 인사 탓이다. 오하이오주 부지사와 연방상원의원을 지낸 그는 고향 친구들을 워싱턴에 대거 데려와 고위 공직을 맡겼다. 그는 포커친구 앨버트 폴을 내무장관에, 후원자이자 정치 브로커인 해리 도허티를 법무부 장관에 각각 임명했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결과를 초래했다. 행정 경험도, 공직자로서 도덕성도 부족한 이들은 ‘오하이오 갱’으로 불리며 무능과 부패로 일관했다. 하딩이 23년 8월 임기 중 식중독으로 숨지자 자리를 승계한 법조인 출신 부통령 캘빈 쿨리지는 곧바로 ‘친구내각’에 칼을 댔다. 수사 결과 폴 내무장관은 연방정부 자금을 민간 기업에 빌려주고 뇌물과 특혜융자를 받은 혐의로 교도소에 갔다. 미 연방 각료 중 최초 수감의 불명예다. 도허티 법무부 장관은 정부 재산 비리로 재판을 받았으며 보좌관은 증거문서를 몰래 파기했다가 발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래를 만드는 능력이 아닌 과거의 친분이 곧 권력이 되는 잘못된 통치 방식이 빚은 결과다.
 
18대 율리시스 그랜트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을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지만 대통령으론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공직 경험이나 검증된 능력, 도덕성, 대중 평판을 바탕으로 사람을 쓰는 대신 군대 시절 참모를 비롯해 친분이 있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만 고위직에 기용했다. 이런 ‘참모 내각’에 대한 자격·능력 부족 시비로 정국이 소란스러웠던 것은 임기 내내 물론 정권을 뒤흔드는 부정부패 스캔들이 줄을 이었다. 그의 인사 실패는 전쟁 영웅 이미지마저 퇴색시켰다.
 
31대 허버트 후버는 20세기 미국의 최대 재난인 대공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최악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다. 사실 그는 상무장관 출신으로 준비된 경제 대통령으로 통했다.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경제공약을 앞세워 당선했다. 하지만 기업에 임금 상승을 종용하는 권위적인 방식으로 빈곤 극복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경제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며 대공황이 다가오는데 개혁도, 영세민 지원도 거부했다. 지나치게 자기 신념만 앞세우고 현실에 대한 이해와 성찰은 부족해 화를 불렀다는 평가다.
 
미국에서 최악의 대통령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37대 리처드 닉슨은 사실 대내외적으로 공이 많다. 베트남전을 종결했고,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 성공으로 소련과의 오랜 우주탐사 경쟁을 역전승으로 마무리했다. 중국 수교의 기초를 닦고 동서 냉전을 완화해 데탕트 시대 개막에 기여했다. 그런데도 워터게이트 선거부정과 이를 둘러싼 거짓말과 사법절차 방해는 결국 그를 사임으로 이끌었다. 대국민 기만은 모든 공적을 거품으로 만들고 그를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43대 조지 W 부시도 국민에게 거짓말을 일삼은 대통령으로 비난받는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지휘하며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테러와 무관한 이라크를 ‘대량파괴 무기’라는 허위 명분을 앞세워 침공함으로써 백악관에 대한 미 국민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변명 대신 진실을 원한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 대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은 전쟁의 비극만 기억할 뿐이다.
 
 
남·북 7개주 연방 탈퇴해도 방관
 
남북전쟁 전야에 대통령을 지낸 15대 제임스 뷰캐넌은 늘 최악의 대통령 1~2위에 오른다. 국가적 분열을 방치하고 내전을 막지 못한 무능한 정치력이 도마 위에 오른다.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선에서 당선한 1860년 11월부터 취임한 이듬해 3월까지 넉 달 동안 백악관을 지키면서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남부 7개 주의 연방 탈퇴 선언과 정부 수립, 무장 강화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앞서 임기 중에도 노예제를 둘러싼 국가적인 대립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문제를 방치해 갈등을 키웠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4년간 6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남북전쟁을 유발한 뷰캐넌의 행동은 ‘무책임’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에 앞선 13대 밀러드 필모어, 14대 프랭클린 피어스도 노예제를 둘러싼 국가적인 대립과 분열, 갈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 때문에 최악 평가 단골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될 당시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17대 앤드루 존슨은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 지도층을 사면하는 등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남부지역엔 ‘인종차별’과 ‘흑백분리’의 독버섯이 도도하게 번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노예 신분에선 해방됐지만 ‘평등하지만 분리된’ 사회적 지위 속에서 경제·교육·사회 등에서 불평등을 강요받았다. 주거계약·금융대출·직업 차별과 공립학교·대중교통수단·공중화장실·식당·식수대 등에서 흑백 분리가 일상이 됐다. 이번 분위기 속에서 KKK단 등의 인종차별 테러가 기승을 부렸다. 미국의 역사적인 수치였던 인종 분리는 20세기 들어 미국에서 민권운동이 활발해지고 64년 시민권법과 65년 선거권법이 입법되면서 비로소 사라졌다. 존슨의 남부에 대한 동정론과 관대함은 역사적으론 과오였다.
 
[S BOX] 미 보수파 “39대 카터, 인권·도덕 앞세우다 허점 보여 국가 위상 추락”
지미 카터

지미 카터

도널드 트럼프를 떠올리게 하는 이단아로 10대 존 타일러가 있다. 고집통인 그는 취임 당시 휘그당 소속이었으나 2개월 만에 제명당했고 모든 정당이 그를 받아주지 않아 무소속으로 임기를 마쳤다. 미국의 무소속 대통령은 17대 앤드루 존슨과 더불어 단 2명밖에 없다. 초대 조지 워싱턴도 무당파를 표방했지만, 실제론 연방당 정권이었다. 타일러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부통령도 없었다.
 
타일러는 전임자 서거로 자리를 물려받은 첫 대통령으로서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임기 내내 권한만 부르짖었다. 임기 중 9차례 거부권을 행사하며 의회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 결과 1843년 탄핵절차에 들어간 첫 미국 대통령이 됐다. 탄핵은 의회에서 부결됐지만,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쳐야 했다. 주 하원의원과 연방하원의원, 연방상원의원, 주지사와 부통령을 지냈지만, 경력은 대통령직 수행과 무관했다.
 
미 보수파는 민주당의 39대 지미 카터(90세, 1977~81년·사진)를 이단적 대통령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임기 중 인권·도덕 정책을 앞세웠다가 허점을 보여 이란 인질사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겪으면서 국가 위상을 추락시켰다고 비판한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자리이지 도덕적 신념을 국정과 국제정치에 실험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모든 대통령은 공과가 동시에 존재하게 마련인데 카터에 대한 평가는 정파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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