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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는 단일팀인가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1986년 10월 14일 제12대 국회 본회의에서 신한민주당의 유성환 의원은 “우리나라의 국시(國是)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국회의원이 회기 중 발언한 내용으로 구속된 우리 정치사 최초의 사례며 유 의원은 결국 의원직을 상실하고 270일간의 감옥살이를 했다. 유 의원이 폈던 논지는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국시가 반공이라면 88올림픽 때 공산권 국가들의 참여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며, 거시적인 국가이익을 생각한다면 우리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030세대의 남북 단일팀 반발은
그 논의가 ‘새삼 촌스럽다’는 것
‘반공’ ‘통일’보다 ‘국시’가 문제
통일 열망과 평화공존은 달라
남과 북은 과연 단일팀이 맞나

그 이후 반공과 통일에 대한 우리 생각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냉전 시기의 마지막 올림픽이라 할 서울올림픽에 공산권이 대거 참여했으며 뒤이은 노태우 정권의 북방 정책은 소련·중국과의 연이은 수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시가 반공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고, ‘코리아’ 단일팀과 청색의 한반도기는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익숙한 장면이 되었다. 단일팀의 국가는 ‘아리랑’이지만 아마도 실질적인 국가는 ‘우리의 소원’이었을 것이다. 가사가 말하는 것처럼 이 겨레와 나라를 살리는 것이 통일이라면 정녕 우리의 국시는 통일인 것처럼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정부는 10여 년 전 상태로의 회복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말해 적어도 여전히 반공이 국시라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난 10여 년간 자폐 상태에 놓여 있는 북한을 어떤 형태로든 상호관계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노력을 잘못된 정책이라 말하기 어렵다.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가 한 치라도 옅어질 수 있다면 나는 그 선택을 열렬히 지지할 것이며, 북한의 올림픽 참가 자체는 얼마든지 그 범주에 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단일팀 구성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설득’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며, 그것은 정부가 화해와 협력과 단일팀과 통일과 평화를 한 묶음으로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반공과 통일의 국시 논쟁이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사이에서 마냥 재연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언론이 앞다퉈 대서특필한 20, 30대 젊은 여권 지지층의 이반은 사실 이 모든 논의가 ‘새삼 촌스럽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수사적으로 말하자면 ‘반공’이나 ‘통일’이 문제가 아니라 ‘국시’가 목에 가시처럼 걸렸던 셈이다. 국가가 기본으로 삼는 올바른 하나의 지침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타협할 수 없는 궁극적 가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데, 나는 그러한 것이 있다고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이나 ‘민족’이 지상의 가치라면 그것은 비용-편익 분석의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정의상 설득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위로서의 통일과 민족의 하나됨이 아니라 그 선택이 수반하는 비용과 가져오는 편익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설득하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허풍 같은 통일대박론이나 북한의 부존광물과 값싼 노동력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정부는 공동체의 안보와 경제와 존속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시민들에게 밝히고 설득하는 작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공존의 역설은 사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애초에 하나였던 남북이 70년 동안 분단된 현실을 원상태로 복원하는 일, 서로의 차이와 적개심을 떠안은 채 단일한 국가로의 재통일(reunification)을 열망하는 것은 평화공존과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양측의 헌법이 한반도 전역을 자신의 영토로 정의하고 있고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는 통일이란 평화공존의 반대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이 ‘하나의 중국’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조선은 하나다”는 구호나 “민족공동체의 복원”이 결국은 같은 말이지만 실지로는 엄청난 전투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평화공존이 전제되지 않은 그런 통일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반통일 세력’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평화공존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상이할 수밖에 없는 남북 체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갑작스레 만들어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문제는 남과 북이 오늘 과연 같은 팀인지 자문할 기회도 없이 만들어졌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무관하게 가슴 시린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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