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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슈뢰더에 '어떻게 우리가 연인 됐을까' 물었더니···"

“슈뢰더, 평범한 한국 아저씨 되길 원해…운명적 만남 행복”
 
게르하르트 슈뢰더(74) 전 독일 총리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연방주의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부의 김소연(48) 대표가 올가을 결혼 계획을 25일 공식 발표했다. 사민당(SPD) 소속으로 독일 7대 총리(1998~2005년)로 재임하며 국가 개혁을 추진해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의 경제 발전 발판을 마련한 슈뢰더 전 총리는 지금도 독일에서 존경을 받는다. 두 사람의 결혼이 주목받는 이유다.  

슈뢰더 전 총리와 결혼 김소연 대표
2015년 제주포럼서 만나 2년뒤 연인으로
"우리 생각 쌍둥이처럼 일치"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대표의 결혼은 독일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 창덕궁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지난 17일 ’네, 사랑입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주간지 분테 표지에 실렸다. 영국 해리 왕자와 약혼녀 메건 마클의 사진도 이들에게 밀려 하단에 작게 배치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대표의 결혼은 독일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 창덕궁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지난 17일 ’네, 사랑입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주간지 분테 표지에 실렸다. 영국 해리 왕자와 약혼녀 메건 마클의 사진도 이들에게 밀려 하단에 작게 배치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식 결혼 발표에 앞서 지난 15일 김 대표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2시간 남짓 만났다. 김 대표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자신감이 넘쳤고, 연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볼이 빨갛게 상기됐다. “아직 결혼 전이니 호칭은 슈뢰더 총리라고 하겠다”고 인터뷰를 시작하며 수줍게 웃었다.  
 
김 대표는 통역사 출신이다.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을 수석 졸업한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독일어를 처음 접했는데 어떻게 언어에 남성ㆍ중성ㆍ여성이 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어려웠다”며 “대학원에 가서 내 독일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달았고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독일어만 공부했다”고 말했다.
 
‘국내파 통역사’로서의 삶은 매일이 도전이었다. 결국 통역의 최고봉이라는 정상회담 통역을 전담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방문 때도 수행했다. 전문 통역사로서 탄탄한 길을 걷던 김 대표는 마흔 살에 돌연 NRW연방주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라는 ‘가지 않은 길’에 도전했다. 그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어쩌면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해도 괜찮은 마지막 나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최대 산업 지역이자 최다 인구가 거주하는(8000만명 중 1700만명) NRW연방주의 경제개발공사는 주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공공기관이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등에 14개 대표부를 두고 있다. 한국 기업의 NRW연방주 진출을 지원하는 게 김 대표의 주업무다.
 
그는 “나이 어린 여성이 대표가 됐다는 수근거림도 있었다. 남성과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제가 부임하기 전 한국대표부의 기업진출 실적은 ‘0’이었지만 지난 6년 동안 31건의 한국 기업 진출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특히 NRW연방주에 있는 아헨공대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참여한 최초의 한ㆍ독 공동연구소가 양국에 각각 문을 연 것을 주요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대표직에 있으면서도 통역사 일을 중단한 적이 없다. “나의 정체성이 통역사라고 생각한다. 통역은 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형벌 같다. 하지만 스스로 ‘이제 먹고 살 만하니 통역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순간 넌 늙은 거야’라고 말하며 다잡아왔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1월22일자 1면과 한개면을 할애해 두 사람의 소식을 전했다. ’사진만 봐도 슈뢰더 전 총리가 반려자 김소연씨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12월 창덕궁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두 연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일 일간지 빌트는 1월22일자 1면과 한개면을 할애해 두 사람의 소식을 전했다. ’사진만 봐도 슈뢰더 전 총리가 반려자 김소연씨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12월 창덕궁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두 연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슈뢰더 전 총리와도 통역 일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다. 그는 2012년과 2013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슈뢰더 전 총리의 강연을 통역했다. 통역 부스 안에만 있었지만 ‘정치인 슈뢰더’에 대한 막연한 호감은 있었다. 김 대표는 당시 통역을 하며 느낀 점을 따로 적어뒀던 메모를 소개했다.
 
“그가 사민당과 지지 기반인 노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관철하려 한 경제개혁안은 끝내 그를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독일 국민은 당시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독일은 그 개혁안을 발판으로 굳건하게 서 있다. 리더십이란 희생을 감수하고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다 2015년 5월 제주평화포럼 때 대면할 기회가 생겼다. 원래는 부스 안에서 통역만 하는 일정이었지만 운명처럼 상황이 바뀌었다.  
 
“장소가 제주도라 하루 전에 내려가 있었는데, 예정에 없이 원희룡 지사가 총리를 만나는데 순차 통역을 잠시만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때 처음 인사드리고 ‘그동안 한국 오셨을 때 제가 몇 번 통역을 했다’고 했다. 일정이 모두 끝난 뒤 총리와 롤프마파엘 주한 독일 대사 등이 함께 하는 저녁 자리에 초대받았다. 유럽 정치에 대한 전문적인 대화를 조용히 경청했는데, 갑자기 총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서 내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느낌이었다.”
 
다음 인연은 2016년 8월 베를린 출장 당시 국내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전달하면서 이어졌다. 이 때만 해도 업무적 관계 이상은 아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슈뢰더 전 총리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를 묻자 김 대표는 “정말 그게 언제였을까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답했다. 집요하게 몇 번을 물어도 답은 비슷했다. “작년 봄 쯤부터 관계에 변화가 있었고, 여름 무렵으로 가면서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고만 했다.
 
김 대표는 “나도 신기해서 ‘우리가 어떻게 연인이 됐을까’ 하고 총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질문에 슈뢰더 전 총리는 갑자기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읊었다고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우리가 배운 학문과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데, 이방인으로서 그런 것은 그저 환영하며 받아들이면 되는 운명 같은 것”이라는 구절이었다. 그러면서 슈뢰더 전 총리는 “지금 우리가 바로 그렇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운명이니 받아들여’라는 말에 감동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살면서 정말 운명적 만남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70대인 슈뢰더 전 총리의 ‘젊음’을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젊음은 용기가 비겁함을 누르는 것을 뜻한다. 이상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 것”이라는 새뮤얼 울먼의 수필 ‘젊음’ 중 한 구절을 읽으며 “이 표현만큼 총리를 정확하게 표현한 글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언제 누구와 어떤 장소에 있든 웃을 거리를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우울하거나 의기소침해 있을 때 웃게 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적이 없다. 항상 비장의 무기가 있다. 한 번은 통화를 마무리하는데 갑자기 한국어로 ‘사랑해요!’라고 외치고 끊은 적도 있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라고 한 적도 없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나에게 알려준 적도 없는데 갑자기 그래서 웃음이 터졌다.”
 
각각 독일과 한국에 있는 두 사람의 장거리 연애는 거리가 무려 8300㎞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매일 통화를 한다. 이를 위해 슈뢰더 전 총리는 난생처음 스마트폰도 장만했다. 무료 통화 앱으로 김 대표와 연락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는 토론을 자주 하는데, 생각이 너무 비슷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가끔 우리는 ‘한 뿌리에서 자란 두 그루의 나무 같다’는 말을 한다. 생각이 쌍둥이처럼 일치할 때가 많다. 좋아하는 것이나,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하다”
 
 
 
 
 
‘뚝심과 소신의 사나이’로 불리는 슈뢰더 전 총리이지만, 김 대표는 그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 슈뢰더 전 총리가 지난해 9월 자서전 『문명국가로의 귀환』 한국어판 발간을 계기로 방한했을 때 위안부 피해자 거주시설 ‘나눔의 집’을 방문한 뒤였다. 김 대표는 “할머니들을 만난 뒤 총리는 ‘어쩌면 내 어머니도 이 할머니들 중 한 분이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1944년생인 슈뢰더 전 총리는 나치군 병사였던 아버지가 그해 루마니아 전선에서 전사한 뒤 어머니 밑에서 다른 4형제와 함께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전쟁의 아픔, 역사가 강요하는 젊은이들의 희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총리 재임 시절 독일의 전쟁 범죄를 직접 사죄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각별한 감정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자서전 판매 수익도 한국에서 기부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대표는 25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올 가을 결혼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김경록 기자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대표는 25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올 가을 결혼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김경록 기자

두 사람은 가을쯤 결혼할 계획이다. 한국과 독일 양쪽에 모두 거처를 마련하기로 했다. 여느 부부들처럼 늘 함께 생활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일을 존중하기 때문에 한 결정이다.  
 
두 사람은 독일에서도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다. 이들의 관계는 슈뢰더 전 총리의 전 부인 도리스 슈뢰더쾨프가 지난해 9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의 결별 이유 중 하나는 2016년 봄에 나타난 프라우 킴(김소연씨)”이라고 올리며 알려졌다.  
 
슈뢰더 전 총리는 25일 간담회에서 이를 정면 반박했다. “2015년 3월 (전 부인과) 별거를 시작했으며, 그 전에 이미 몇 년 동안 집 안에서도 별거했다. 이혼은 그 결과일 뿐이고, 당시엔 김 대표를 통역사로도 알지 못했다”며 “도리스는 2016년 다른 정치인과 연인 관계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걱정돼 적극적으로 해명한 것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스스로 한국의 사위라고 칭하는 ‘슈서방’이 바라는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총리는 한국에 함께 살면서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가 되고 싶어 한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부대끼며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총리는 새롭게 제2의 고향을 갖게 된 데 대해 기대와 호기심이 크고, 한국에서 그런 아저씨로 살고 싶어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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