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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대구의 딸로 태어나 호남의 며느리 되다

기자
더오래 사진 더오래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 ⑮ 추미애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대구 구남여자중학교 재학 시절 소풍을 갔던 모습이다. 어디로 소풍을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 속 친구들은 길을 가다 소똥만 봐도 허리를 잡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깔깔 웃고 다녔던 단짝들이다. 나는 사진 속에서 오른쪽 끝에 있다.
 
요즘 같은 근사한 웨딩 화보 촬영 대신 대한변협회관 신부대기실에서 소박한 웨딩 사진을 식전에 찰칵했다. 나는 대학 동기를 만나 7년 연애 끝에 1985년 결혼했다. 
 
남편은 전라북도 정읍 출신으로 당시 영남에서는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이 흔치 않았다. 집에서도 반대가 있었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내가 대구의 딸이자 호남의 며느리로 불린 이유다.
 
나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인 1985년부터 춘천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직을 역임했다. 
 
사진은 인천지방법원 근무 시절의 모습이다. 당직 근무 중인 어느 봄날 주말에 아빠와 딸이 법원으로 깜짝 방문했다.
 
나는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으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마다하고 지역구를 선택해 최초의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덕분에 나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선대위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 돼지 저금통'을 들고 선거운동자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2004년 민주당은 탄핵 역풍을 맞게 된다. 내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민주당을 대표해 국민에게 반성하고 사죄하는 일밖에 없었다. 나는 속죄의 의미로 삼보일배 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추미애가 저런 모습으로 있는 건 도저히 못 보겠다"고 TV를 꺼버리셨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내 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건강을 걱정해 주셨다. 이후 내게 환경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 등 2번의 입각제의도 했지만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을 위해 고사했다.
 
정의와 민주주의, 인권과 평화, 민생과 복지는 더불어민주당의 역사와 함께한 가치이며 포기할 수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이다. 넘어야 할 산은 넘으면서 국민과 역사 앞에 떳떳하게 전진하겠다. 
 
58년 개띠 인생 샷을 보내고 50만원 상금 타세요
중앙일보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를 함께한 58년 개띠 여러분의 앨범 속 사진을 기다립니다.      
응모해주신 사진과 사연은 중앙일보 [더,오래] 지면과 온라인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 독자의 호응이 컸거나 공유·공감·댓글이 많았던 응모작 4편은 각 50만원의 상금도 드립니다.      
 
응모 대상: 58년생(본인은 물론 가족·지인 응모도 가능)      
응모 기간: 2018년 1월 31일까지      
보낼 곳: theore@joongang.co.kr
보낼 내용      
①자기소개와 현재 프로필 사진      
②추억 속 5장의 사진과 사진에 얽힌 사연(각 300자 이상)      
※사진은 휴대폰이나 스캐너로 복사한 이미지 파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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