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정재의 시시각각] 하인 리더십만으론 부족하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군부 독재 시절을 빼고 대통령 리더십을 사람에 빗대보면 김영삼은 큰형님 리더십, 김대중은 가부장, 노무현은 작은 형님, 이명박은 사장(CEO), 박근혜는 공주(병)쯤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국민을 상전으로 모시는 서번트(하인) 리더십일 것이다. 서번트 리더십의 필수 조건은 진정성이다. 그가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찾은 것도, 같이 사진을 찍고, 스틱에 사인을 해준 것도 그런 리더십의 발로였을 것이다. “남북 단일팀이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어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훨씬 더 좋은 단초가 될 것”이란 말도 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기야 문재인이 누군가. 그는 세월호 때 ‘유민아빠’ 김영오와 광화문 광장에서 동조 단식을 했다. 찌는 더위, 불편한 천막에서 10여 일을 김영오의 단식이 끝날 때까지 함께했다. 진정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30년쯤 전 인권변호사 시절 해고된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30층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에 오른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8월 여름 한낮, 쇠도 녹일 더위를 뚫고 외줄 사다리를 올라온 그를 보고 농성 노동자들은 “이것만으로도 분이 풀렸다”고 했다고 한다. 몸에 밴 이런 서번트 리더십이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은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노동자의 고통과 삶에 동지애적 진정성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그러나 진정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성이 강한 신념과 결합해 목표 편향적이 되면 되레 부작용이 생긴다. 자칫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2000년 전 이미 사마천의 『사기』는 병법의 천재, 오기(吳起)의 인생 역정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오기야말로 서번트 리더십의 원조다. 장수가 되자 신분이 가장 낮은 병사와 똑같이 입고 밥을 먹었다. 행군 땐 자기 식량을 직접 지고 다녔다. 종기 난 병사의 고름을 빨아준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병사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 이웃 사람이 “졸병인 당신 아들의 종기를 장군께서 직접 고름을 빨아주셨는데 왜 그리 슬피 우는가” 물었다. 병사의 어머니는 “오 장군은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도 빨아줬다. 남편은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 오 장군이 또 내 자식의 종기를 빨아줬으니 이 아이도 어디서 죽게 될지 모르게 됐다”고 했다.
 
사마천은 오기의 청렴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출세욕은 경계했다. 오기는 노나라 장군이 되기 위해 제나라 출신인 아내를 죽일 만큼 출세 지향적이었다. 그는 젊을 때 “재상이 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맹세가 그의 진정성을 만들어낸 원천이었지만 훗날 그의 목숨을 잃게 한 굴레이기도 했다.
 
이런 굴레를 벗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서번트 리더십의 창안자 로버트 그린리프는 ‘예지력’을 열쇠로 꼽았다. 그는 “서번트 리더가 돼 다른 사람들의 걱정까지 껴안으려면 예지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예지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변화를 알아채고 미래를 통찰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의 꿈이 나라의 꿈이요, 나와 우리의 꿈이 될 수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찾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이 꿈꾼다고 해서 ‘북한과의 대화’가 국민 모두의 꿈일 수는 없다. 하물며 그것이 공정과 자존심을 팽개친 굴신(屈身)의 평화라면 더 그렇다. 500년 전 군주론을 썼던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미리 아는 능력이 부족해 누구나 알 수 있을 때까지 악이 자라도록 내버려 둔다면, 악을 잘라낼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이 이 말을 두고두고 곱씹어 봤으면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