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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우리가 2등 소비자냐” 동유럽의 분노

‘칼로리 폭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페레로사의 누텔라. 160여 개국에서 연간 3억 650만kg을 소비하는 ‘초콜릿 잼’이다(2013년 기준). 말 그대로 세계를 ‘발라버린’ 누텔라는 어디서 구매하든 똑같을까.
 
적어도 독일과 헝가리에서 각각 구매한 누텔라는 같은 제품이 아니다. 독일에서 파는 누텔라의 코코아 성분 함량이 8.5%인데 반해 헝가리에서 파는 것은 7.4%다. 밀크파우더 함량도 각각 7.5%, 6.6%로 다르다.
 
지난해 7월 로버트 피코 슬로바키아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자리엔 독일 브랜드 제이콥의 커피믹스, 영국의 냉동식품 브랜드 이글로의 피쉬 스틱, 프록터앤드갬블(P&G)의 레노 섬유유연제가 등장했다. 누텔라처럼 동·서유럽에서 차이 나는 품질로 판매되는 제품들이다.
 
같은 상품, 다른 품질

같은 상품, 다른 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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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코 총리는 “이글로 피쉬 스틱의 가격은 2.99유로로 똑같지만, 오스트리아 것은 용량이 300g, 슬로바키아 것은 280g이다”라며 “생선 함량도 65%, 58%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슬로바키아인이 서유럽인과 같은 품질의 제품을 사용하기를 원한다”며 “질 낮은 제품을 계속 판매한다면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의 파문은 컸다. 유럽의 소비자를 1·2등급으로 구분한다는 분노가 폭발했고, “기업들이 질 낮은 제품을 동유럽에 떠넘겨 동유럽인들을 사취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폴란드 일간지 가제타 프라우나는 이런 현상을 ‘식품 차별주의(Food Racism)’라 명명했다.
 
다른 동유럽 국가의 정치인도 가세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근래 발생한 최대 스캔들”이라며 논란을 키웠고, 체코 농업장관은 “동유럽 사람들이 ‘유럽의 쓰레기통’이 된 것처럼 느끼고 있다”며 분노를 고조시켰다. 슬로바키아 농업장관은 “통합에 대한 EU의 책임은 누텔라의 레시피 통합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브랜드 컨설팅 기업인 ‘브랜드트러스트’의 아힘 페이지 대표 역시 슈피겔에 “품질 낮은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스스로 브랜드 이미지를 파괴할 뿐 아니라, 이익을 향한 탐욕으로 유럽의 통합마저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 통합까지 거론되며 사태가 악화하자 EU가 움직였다. 베라 주로바 EU 법무·소비자 담당 집행위원은 동유럽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검사하라고 지시했다.
 
결과는 피코 총리의 주장과 일치했다. 레노 섬유유연제의 경우 슬로바키아 판매 제품의 용량이 오스트리아의 것보다 60mL 더 적으면서 30센트 더 비쌌다. 서유럽 제품엔 버터를 사용하고, 동유럽 제품엔 팜유를 사용한 기업도 있었다.
 
독일에서 파는 스프라이트는 설탕으로 단맛을 냈지만, 체코에서 파는 스프라이트엔 저렴한 인공첨가물인 글루코스 시럽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은 나름의 설명을 내놓았다. 스프라이트 제조사인 코카콜라 측은 “국가별로 다른 선호를 반영했다”며 “스페인·미국에서 파는 스프라이트에도 글루코스 시럽이 사용된다”고 밝혔다.
 
누텔라 제조사인 페레로 측은 “국가 규제”를 거론했다. 그러나 슈피겔은 “동유럽 어디에도 코코아 함량이 낮아야 한다고 규제하는 국가는 없다”고 지적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공산주의 몰락 직후엔 이런 품질 차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존재했다. 동유럽의 구매력이 낮고, 생산공장이 서유럽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통 비용이 더 드는 동유럽에서 수지를 맞추기 위해 기업이 품질을 달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유럽 시장이 커지고, 유럽 곳곳에 공장이 생긴 뒤에도 기업들은 차별적인 관행을 고치지 않았다. 오히려 동유럽에 질 낮은 제품을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결국 주로바 집행위원은 제조사와 소비자 보호단체가 참여한 위원회를 꾸려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도록 했다. 향후 같은 제품의 성분이 지역에 따라 다를 때, 합당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기업은 불공정 행위로 처분하겠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개선에 나선 기업도 있다.
 
독일의 대표 비스킷 ‘라이프니츠’를 만드는 발센은 국가에 따라 다른 차이를 없앴다고 발표했다. 이 기업은 독일과 폴란드에 공장이 있는데, 독일 생산 비스킷의 버터 함량이 높다는 의혹을 받았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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