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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상하이 가상 여행 … 그대 지금 무엇을 꿈꾸는가

높이 3.9m, 폭 5.8m의 대형 회화 ‘1935(사진)’ 앞에 선 조덕현 작가. 장지에 연필로 그린 이 화폭엔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한 프레임 안에 압축 된 시공간이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높이 3.9m, 폭 5.8m의 대형 회화 ‘1935(사진)’ 앞에 선 조덕현 작가. 장지에 연필로 그린 이 화폭엔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한 프레임 안에 압축 된 시공간이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주인공 이름은 조덕현. 1914년 경남 합천군 초계면 출생.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다가 1995년 서울 변두리 쪽방에서 고독사했다. 10대 후반에 고향을 떠나 유랑하던 그가 만주를 거쳐 정착한 도시는 중국 상하이. 이곳에서 보낸 그의 청춘은 그 도시의 눈부신 네온 불빛만큼 화려했다. 이야기는 바로 여기, 1930년대 상하이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영화도 아니다.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막한 전시 ‘조덕현:에픽 상하이’의 이야기다. 작가 조덕현(61·이화여대 교수)은 자신의 이름과 같은 가상 인물 ‘조덕현’을 내세워 그의 삶을 추적하며 시각화해온 작품을 이곳에 풀어 놓았다. 소설만큼 극적인 스토리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전시다.
 
2015년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연 ‘꿈’이라는 전시에서 회화와 영상 설치작업을 통해 ‘조덕현’의 말년을 다뤘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조덕현’의 전사(前史·프리퀄), 즉 그의 전성기 시절인 20대를 조명한다. ‘1935’ ‘꿈꿈’ 등 대형 회화 2점을 포함한 회화 작품과 영상 등 18점은 관람객을 가상 인물 ‘조덕현’이 누비던 ‘올드 상하이’의 세계로 이끈다.
 
‘상하이 삼면화’. [사진 PKM갤러리]

‘상하이 삼면화’. [사진 PKM갤러리]

20세기 초반의 그곳은 서양 자본이 밀집돼 세계 5대 도시로 꼽힐 만큼 성장한 국제도시였고, 영화산업이 꽃을 피워 ‘동양의 할리우드’라 불렸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거리엔 가스등과 네온이 밤거리를 밝혔고 백화점과 극장, 댄스홀이 번성했다. 동양과 서양, 전근대와 근대, 식민과 탈식민, 퇴폐와 혁명, 소비와 문화의 에너지가 공존하고 부딪히던 용광로와 같은 곳이었다. 작가는 이곳에 조선에서 온 젊은 ‘이방인’이자 배우인 조덕현을 배치했다.
 
‘조덕현’의 서사를 축조하는 작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작가 조덕현은 또 하나의 가상 인물인 여주인공 홍(紅)과 더불어 당시 상하이의 인기 배우였던 김염(金焰·1910~1983·본명 김덕린)과 루안링위(阮玲玉·1910~1935) 등 실존 인물까지 불러온다.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염은 서울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인 아버지(김필순)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당대를 휘어잡은 원조 한류스타. 공산당원이 되기를 거부한 그는 문화혁명 때 하방(下放)돼 강제 노동을 하는 등 고초를 겪고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작가가 설정한 이야기에서 김염은 상하이에서 인력거를 끌던 가상 인물 조덕현과 우연히 만나며 그가 영화판에 자리 잡도록 도와준다.
 
한편 루안링위는 중국 무성영화 최고의 스타이자 ‘신여성’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유부남과의 연애로 미디어의 가십에 시달리다가 ‘인언가외’(人言可畏·사람들의 말이 무섭다는 뜻)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다. ‘조덕현’ 서사의 디테일은 상하이 출신의 소설가 미엔미엔(棉棉)과 e메일을 주고받으며 협업한 성과다. 미엔미엔은 홍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예정이다.
 
‘미드나이트 상하이1’. [사진 PKM갤러리]

‘미드나이트 상하이1’. [사진 PKM갤러리]

조 작가는 “‘올드 상하이’는 지난 7~8년 동안 구상해온 테마였다”며 “역사에서 한때 화염처럼 타오르고 거품처럼 사라진 그 시절이 요즘 글로벌 사회의 예고편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스탤지어에 이끌려 하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올드 상하이’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가짜와 진짜, 화려함과 역동하는 에너지, 무거움과 슬픔이 혼합되고 모순된 우리 삶의 또 다른 풍경으로 읽힌다”는 설명이다.
 
전시작 중 높이 3.9m, 폭 5.8m의 회화 ‘1935’는 이번 서사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장지에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화폭엔 과거와 현재, 가상 인물과 실존 인물, 상하이의 실제 건물과 영화 세트장 풍경이 뒤섞여 있다.
 
건물 테라스에 선 김염은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지만, 그 옆에 선 그의 아내이자 유명 배우였던 친이(95)는 세월의 변화를 고스란히 겪은 노인으로 그려져 있다. 옥상 꼭대기엔 조덕현이 서서 도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고, 건물 앞엔 배우 루안링위가 말 위에 앉아 조명 세례를 받고 있다. 한 프레임에 겹쳐져 있는 시공간은 이야기를 증폭시키며 관람객에게 삶과 시간의 의미를 묻는다.
 
또 다른 대형 회화 ‘꿈꿈’에도 시공간이 뒤섞여 있다. 1·2차 세계대전의 난민들부터 시리아 난민까지 근현대의 전쟁과 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함께 묘사돼 있다. 이 가운데에도 조덕현이 있다. 이 밖에 네온을 소재로 한 채색 페인팅과 30년대 여러 영화 장면을 5면 거울에 비춘 영상설치 작업 ‘에픽 상하이’도 눈길을 끈다.
 
조 작가는 “이전에는 옛 흑백 사진을 소재로 그 사진의 아우라(aura)를 기반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지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을 혼합해 사실 이상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계속된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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