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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무능한 국회와 행정부, 대법원에 난제를 던지다

서경호의 이슈 현장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첫 공개변론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환경미화원 강모씨 등이 경기도 성남시를 상대로 낸 임금 등 청구 소송 상고심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첫 공개변론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환경미화원 강모씨 등이 경기도 성남시를 상대로 낸 임금 등 청구 소송 상고심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연합뉴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벌이고 몸에 불을 붙였다. 산업화가 시작되기도 전인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을 당시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이제는 근로기준법이 현실에 한참 뒤처질 정도로 문제가 많다. 스스로 권력이 된 노조와 이에 포획된 국회·정부가 근로기준법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지 않은 탓이다. 사법부는 낡은 법 조항에 기대 법 해석을 해야 하고 상하급심에 따라 엇갈리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그 부담은 기업과 현장 노동자의 몫이 됐다. 지난주 대법원에서 열린 근로시간 관련 공개변론을 보면서 답답한 현실을 절감했다.
 
1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2층 대법정. 180개의 방청석은 이미 찼다. 13명의 대법관이 들어서자 휴일근로 연장근로 사건에 관한 공개변론이 시작됐다. 대법원은 사회적 가치 판단과 직결된 주요 사건인 경우 해당 분야 전문가나 참고인 의견을 듣는 공개변론을 2003년부터 열고 있다. 2016년 9월 이후 1년 4개월 만에 열린 이번 공개변론은 ‘김명수 코트(court·특정 대법원장 시대)’의 첫 공개변론이다. 대법관과 대리인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기 편하도록 대법관이 앉는 법대(法臺)와 변호사인 소송대리인이 앉는 자리 사이에 변론진술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대법관과 변호사의 물리적 거리가 5m에서 3.9m로 가까워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개정선언을 하고 사건 경위와 쟁점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성남시 환경미화원 강모씨 등 37명이 성남시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이다. 미화원들은 주중 5일간 하루 8시간을 일하고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각각 4시간씩 근무했다. 주당 48시간 일한 것이다. 이들은 주말근무에 대해 휴일근로 가산임금만 지급되고 연장근로 가산임금을 받지 못하자 1주 40시간을 초과한 주말근로에 연장근로 가산임금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1, 2심은 “휴일근로와 연장근로가 중복되는 경우 휴일근로 및 연장근로에 대한 각 가산임금을 중복해 지급해야 한다”며 미화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양측의 변론이 시작됐다. 원고인 미화원들은 법무법인 우리로가, 피고인 성남시는 법무법인 동백이 대리했다. 며칠 전 재판연구관들과 함께 양쪽 대리인·참고인이 참석해서 리허설까지 했지만 참석자들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먼저 ‘1주일’이 쟁점이 됐다. 1주간 근로시간에 휴일도 포함되느냐가 핵심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1주간 40시간(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주간’에서 휴일이 제외된다면 휴일근로는 개념상 연장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경우 40시간(법정 근로시간)+12시간(연장근로)+16시간(주말 휴일근로), 즉 최대 주당 68시간 근무를 할 수 있다. 반대로 휴일이 포함되면 1주간 최대 52시간(40시간+12시간) 일할 수 있고 연장근로에는 당연히 휴일근로까지 포함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인 근로시간 단축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1주간’에 휴일이 포함되지 않아 최대 주당 68시간의 근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원고 측 김건우 변호사는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볼 때 1주일의 시작과 끝이 특정요일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누구나 달력만 보면 알 수 있듯이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해 7일이라는 주장이다. 피고 측 최유라 변호사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1주간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한 근무일의 소정근로시간 합계의 상한”이라며 “법 제정 당시부터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따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개념적으로 중복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주심인 김신 대법관이 피고 측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보통 1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 7일로 보는 게 통상적이다. 다른 해석을 하려면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사회경제적 영향도 주요 쟁점이었다. 이번엔 참고인들이 나섰다. 원고 측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 52시간 상한이 적용되면 근로자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13만~16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은 “근로시간이 단축돼도 고용률이 올라가지 않고 생산 차질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봤다. 그는 “300인 미만 사업장은 현재도 26만여 개의 일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영세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고령자와 외국인 근로자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이 줄어도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일자리를 더 늘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휴일·연장수당 중복할증으로 인한 경제 손실도 원고 측은 5조원, 피고 측은 7조원으로 다르게 추정했다.
 
1시간40분간 진행된 공개변론을 지켜보면서 당위(當爲)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인 흐름이고 경제적 벌칙을 줘서라도 장시간 근로와 휴일근로는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정부의 행정해석을 믿고 따라온 기업을 한꺼번에 범법자로 만드는 것은 지나치다. 90년대 초반의 휴일근로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정부 행정해석은 오랫동안 특별한 이의제기나 분쟁 없이 노사의 확고한 해석기준으로 받아들여졌다. 근로시간 단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 최저임금 고율 인상과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으로 기업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근로시간까지 갑자기 단축되면 기업이 버텨내기 어렵다. 특히 영세 중소기업의 고통이 더 클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입법으로 해결하는 게 순리다. 법을 고치지 않고 대법원 판결로 근로시간 단축이 일시에 확정되면 충격파가 커서 소프트랜딩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여야 3당 간사가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되 휴일·연장근로의 중복 할증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환노위의 여당 일부 의원과 정의당의 반대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간사가 합의했다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반대하는 일부 의원을 설득하고 합의를 관철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 교수는 “통상임금이나 이번 근로시간 이슈처럼 법이 현실에 맞지 않아서 생긴 문제는 입법부가 풀어야지, 언제까지 사법부에 그 어려운 과제를 계속 맡겨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노조의 몽니에 밀려 법 개정으로 풀어야 할 수십 개의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삐걱대는 삼권 분립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떠올렸다. 무능한 국회와 정부 탓에 대법원에 무소불위의 법 해석권을 계속 부여하는 것도, 대법원장조차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한 근로시간 이슈 같은 행정부·입법부발(發) 난제를 사법부에 무더기로 떠넘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아직 한두 달 시간은 남아있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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