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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의 퍼스펙티브] 지방분권 개헌이 참여정치를 완성할까

문재인의 개헌
대통령 임기 초반에 개헌이 추진되고 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길이다. 현직 대통령들은 임기 초반 개헌 논의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블랙홀’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더 적극적이다. 국회에서 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안(案)을 만들겠다고 한다. 권력구조에 합의를 못 하면 기본권과 지방분권만이라도 우선 고치자고 한다.
 
#권력구조가 빠진 개헌
 
10년 가까이 개헌 논의의 명분은 권력구조였다.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이 임기 불일치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임기가 서로 어긋나 선거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동시 선거도, 중간평가도 아닌 엇박자다. 대통령 권한이 ‘제왕적’이라는 점도 불만이었다. 심각한 지역주의, 인구가 적은 지역 출신은 정권을 잡을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하는 차별, 박탈감도 문제였다. 잦은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의 단절성도 지적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소수 목소리를 반영하고, 다양성과 관용,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선거제도도 고치자고 했다. 대화와 타협이 되려면 다당제로 가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었다. 그런데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왜 중앙 권력끼리만 나누는 것으로 생각하느냐. 지방으로 나눌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판이 바뀌었다. 문 대통령도 “중앙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개헌에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방분권 개헌, 국민 기본권 강화를 위한 개헌 부분은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단계적 개헌을 하자고 한다. 지방 분권 개헌에 대한 문 대통령의 열정은 단순히 합의할 수 있는 범위라서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는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방분권”이라고 말했다. “자치와 분권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 정신”이라는 것이다.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그는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며 “촛불 정신을 국민의 삶으로 확장하고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 전문에 ‘촛불 정신’을 언급하는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기본권과 지방분권을 촛불 정신과 동의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왜 지방 분권인가?
 
왜 지방 분권일까.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중앙집권적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적폐청산도 촛불 혁명의 완성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중앙 권력끼리 권력을 분산하는 방법을 논의해왔다. 수평적 분권이다. 그것을 ‘수직적 분권’으로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다.
 
시민 참여를 확대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구상까지 ‘수직적 분권’에 담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권력 행사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도록 방향을 뒤집어놓겠다는 생각이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커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노무현식 ‘참여 민주주의’의 연장이다. 이런 바탕 위에 중앙 권력도 재편하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분리 개헌론’이다.
 
지방분권이 이뤄지면 중앙권력구조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에만 합의하면 권력구조는 양보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내각제나 분권형(이원집정제)은 다당제를 기반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는 선거제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 또 4년 중임 대통령 중심제로 가더라도 총리를 국회에서 단수, 또는 복수로 추천하는 대안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국회의원이 쥐고 있는 공천을 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무엇을 바꾸려 하나?
 
지방자치 수준을 강화하자는 데는 정치권이 공감한다. 수준만 다를 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시·도 지사를 초청해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방정부’로 개칭하는 내용도 헌법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을 헌법화하겠다고 했다. 분권론자들은 지방 사무를 법률에 열거하던 것을 국가 사무로 규정한 것 이외에는 모두 지방 사무로 하자고 한다. 행정 책임이 먼저 소지역 단위에 있고, 거기서 해결할 수 없는 일만 상급단체에서 해결한다는 ‘보충성의 원칙’을 따르자는 것이다. 시민의 참여가 늘어나고, 현재 보수 세력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 정원 한 명 늘리는 것도 6개월씩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했다. 이제 지방정부가 알아서 하자고 한다. 지역 경제 활성화, 복지 확대도 지방마다 특성에 맞게 독자적으로 추진하자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중교통 무료 정책, 이재명 성남시장의 무상 시리즈 같은 정책들이 쏟아질 수 있다.
 
#지방 분권 대(對) 균형 발전
 
중요한 건 세금이다. 분권론자들은 지방세의 세목, 세율, 부과, 징수까지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자고 한다. 문 대통령은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은 “현재 8 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 대 3으로 조정하고, 장기적으로 6 대 4 수준이 되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아직은 주도하겠다는 말이다.
 
문제는 재정을 그냥 지방 분권하면 빈부 격차만 커진다. 문 대통령은 “수도권이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간 ‘공동세’, ‘지역 상생 발전기금’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의 세수를 다른 구에 나누어주는 것 같은 방식이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을 동시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원을 넘기는 지역 주민이 반발할 수 있다. 세원 발굴에 소홀하거나, 방만한 선심 행정으로 흐를 수도 있다. 굳이 공장 같은 오염 유발 시설을 유치해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헌법개정특위는 국민 발안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조항에도 대체로 공감했다. 60만 명 이상의 국회의원 선거권자가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헌법을 고치기 쉽게 연성화하자는 의견도 공감을 얻었다. 국민이 발안한 개정안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국민투표에 부친다든지, 일부 조항은 국회 의결만으로 개정할 수 있게 이원화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기본체제·정부형태 등은 경성(硬性)으로 하고, 기본권 등은 연성(軟性)으로 구분해놓자는 것이다.
 
#지방 분권 개헌은 참여 정치의 완성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구상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영화 ‘1987’에 나오는 6월 항쟁 이후 지방자치를 하기로 합의해 법률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3당 합당 이후 집권 민자당은 다수의 힘으로 깔아뭉갰다. 그러자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13일간 단식하며 지방선거를 받아냈다.
 
그는 자서전에서 “민주화는 지자제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라이샤워 교수의 조언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별명을 ‘미스터 지방자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랫동안 싸웠다고 말했다. “지역 간의 불균형과 파행이 나라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며 ‘지역등권(等權)론’을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했다. 그는 지방선거가 부활한 무렵인 93년 ‘참여시대를 여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과제는 시민적 참여의 수준이다. … 참여의 제도적 토대로서의 지방자치, 이것을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본 것이죠”라는 구술을 남겼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연구소를 만들 때 “중앙집권체제가 한국사회 공동체를 다 붕괴시켜버렸다. 국민을 전부 피지배자, 피치자(被治者)로 만들어놨다”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생각으로 집권 후 수도 이전을 추진하고, 지방 혁신도시들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의 ‘지방 분권 개헌’은 노무현의 ‘참여 정치’의 완성인 셈이다.
 
#연내 개헌은 가능한가?
 
더불어민주당은 6·1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분리 투표’ 입장이 확고하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연말까지 하면 된다”고 한다. 그는 지난 연말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대한민국 전체 구조를 바꾸는 (지방선거보다) 더 중차대한 문제”라며 분리 투표를 주장했다. 그건 명분이다. 사실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게 두렵다. ‘좌파정권 심판론’이 희석된다는 말은 그런 생각을 드러낸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재적의원(현 296명)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의석은 117석. 민주당 소속 의원 121명과 나머지 모든 의원이 다 뭉쳐도 안 된다. 현재로선 6월 개헌은 어렵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왜 동시 실시를 주장할까. 꽃놀이패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개헌 의제를 선점할 수 있다. 강력한 지방 공약이다. 한국당이 지방 분권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국 선거 구도는 찬반으로 짜일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에서는 6월 개헌의 ‘플랜B’도 거론한다. 서명운동과 지방선거를 통해 분위기를 띄운 뒤 연내에 개헌한다는 시간표다. 이때는 지방 분권 이외에 다른 부분까지 얹어 시민운동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시민 참여가 확대되면 현재의 보수 세력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연내 개헌은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은 너무 수동적, 방어적이다. 그때까지도 끌려다닐 수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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