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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기금형 퇴직연금, 안 하는 이유가 뭔가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최근 정책 당국을 골치 아프게 하는 단골 메뉴는 집값 상승과 비트코인 투기다. 오십 대의 부동산 대출 비중이 증가한다는 조사도 있다. 국민 모두가 도박과 투기에 혈안이 된 것은 아닐 터이다. 젊은이는 미래가 안 보이고 중년은 노후가 불안할 따름이다.
 
누구나 노후를 걱정한다. 은퇴 직전 소득이 은퇴 이후에도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의식주 비용과 의료비, 그리고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위한 소득이 절실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 우리 국민이 평균적으로 이런 수준의 노후 소득을 기대하기 곤란해 보인다.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퇴직연금의 저조한 운용 수익률이다.
 
1988년부터 운용이 시작되어 운용 노하우와 전문성이 확립된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의 운용성적표는 초라하다.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은 2016년 4.8%, 2017년 7.5%인데,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연간 2%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실 수익률 차이는 장기적으로 연금 자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연간 2% 수익률이 20년 지속하면 누적수익률은 고작 49%인데 반하여 연간 5% 수익률이 20년 지속하면 누적수익률은 165%이다.
 
부진한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 때문이고 원리금 보장 상품에 의존하는 이유는 현재 이른바 ‘계약형’으로 되어 있는 퇴직연금 제도 때문이다. 현행 ‘계약형’ 제도하에서 확정급여형 (DB형) 퇴직연금은 사업주 즉, 고용주의 입장에서 장기적인 부채 부담 증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운용을 위한 유인이 부족하다. 유인이 부족하기는 퇴직연금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한편, 확정기여형 (DC형) 가입자는 잘 모르고 바쁘다 보니 자신의 퇴직연금 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겨를이 없다. 따라서 원리금 보장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수익률이 부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퇴직연금 가입자인 근로자의 노후만 불안해졌다.
 
그런데 근로자를 위한, 근로자에 의한 퇴직연금 제도가 선진국에는 있다. 이른바 ‘계약형’에 대비되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그것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호주, 미국 등에서 정착된 제도로서 사외에 독립된 수탁법인을 설립하고 전문가, 근로자, 사업주로 구성된 이사회나 운영위원회가 수탁법인과 자산운용 과정을 관리한다. 근로자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전문가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다. 학계와 업계에서도 최소한 근로자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상대적으로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로자를 위한 퇴직연금 제도를 안착시킬 방편이라고 평가한다. 정부에서도 수년 전부터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실시된 관련 연구 용역 결과를 2016년 1월에 공시했고, 2016년 8월에는 입법예고를 했다. 2017년 3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불허하자 4월에 재심사 요청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정성 들여 마련된 정부 입법안이 법제처 심사까지 마친 상황에서 갑자기 철회되어 시장에 실망을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준비가 미흡하다는 판단’과 ‘향후 재추진 계획은 세운 바 없다’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금융위원회와 자산운용업계까지 법제화를 위해 수년 동안 정성을 기울였다. 제도에 걸맞은 금융상품도 시장에 등장했다. 지난 연말 어느 언론이 주관한 퇴직연금 관련 시상식 연설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도록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라는 연설도 했다. 그러면 몇 년 동안 공들인 정책을 불과 한 달여 만에 후퇴할 사정이 생겼는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어떤 준비를 더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선진국의 경험, 전문가의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근면하게 일하는 근로자의 참여가 보장된 바람직한 퇴직연금제도 도입은 어떤 경제 정책보다 시급하다. 국민 모두의 미래 행복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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