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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수장, 역사문제로 돌연 사임…도쿠가와 이에야스 후손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신관 복장을 한 사람이 목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신관 복장을 한 사람이 목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최고위 신관인 도쿠가와 야스히사(徳川康久·69) 궁사(宮司)가 역사 문제를 이유로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도쿠가와 궁사는 에도막부(1603~1867년)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후손이다.  
교도통신은 “(야스쿠니의 창설 배경인) 메이지유신과 관련한 도쿠가와 궁사의 역사인식을 두고 내부 비판이 제기되면서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년이 보장된 궁사의 조기 퇴임은 이례적”이라고 24일 보도했다.
 
도쿠가와 야스히사 야스쿠니 신사 궁사. [교도=연합뉴스]

도쿠가와 야스히사 야스쿠니 신사 궁사. [교도=연합뉴스]

야스쿠니는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막부군과 싸우다가 숨진 이른바 유신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도쿄쇼콘샤(東京招魂社, 1879년 야스쿠니로 개칭)의 후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쿠가와 궁사는 막부의 마지막 쇼군(将軍)이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15대 쇼군)의 증손자다.
이런 배경을 가진 그가 2016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패군(賊軍)도 합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취지로 말하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패군은 막부 말 존왕양이(尊王攘夷)파와의 내전(보신전쟁)에서 사망한 막부군, 그리고 한때 유신지사였으나 신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맞서 반란군을 지휘했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등을 의미한다.    
막부의 수장인 요시노부는 메이지 일왕에게 통치권을 반납한 대정봉환(大政奉還, 1867년 11월 9일) 이후 화족(귀족) 중 가장 높은 공작 작위를 받았다. 도쿠가와가(家)가 패군 취급을 받지 않고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사이고 다카모리( 1828~1877). [중앙포토]

사이고 다카모리( 1828~1877). [중앙포토]

 
도쿠가와 궁사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야스쿠니의 전 총무부장 등 관계자들은 “궁사가 신사의 설립 이념을 뒤흔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사퇴를 종용해왔다.  
 
도쿠가와 궁사는 석유회사에 근무하다가 퇴직 후 도쿄 미나토구에 자리한 시바토쇼구(芝東照宮) 신사의 신관이 됐다. 
이 신사는 그의 선조인 이에야스를 기리는 곳이다. 그러다가 2013년 야스쿠니 궁사에 선임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중앙포토]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중앙포토]

  
그동안 야스쿠니 내부에선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그가 궁사로 취임한 뒤 일본 보수계가 ‘패군 합사’를 강력히 요청한 게 내부 갈등의 발단이 됐다. 
일본 보수의 대동단결을 위해 영혼을 합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2016년 10월에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와 여야 국회의원 70여 명이 청원에 나섰다.
  
당초 도쿠가와 궁사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종교학자인 시마다 히로미(島田裕巳)는 “내부고발에 따르면 도쿠가와 궁사는 이미 2016년 연초에 직원들에게 ‘야스쿠니 창립의 원점으로 돌아가 그 이념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도쿠가와 궁사 역시 사실상 패군 합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초당파 의원들이 패전 72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8월 15일 야스쿠니를 집단 참배하고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일본 초당파 의원들이 패전 72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8월 15일 야스쿠니를 집단 참배하고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그의 사퇴는 메이지유신 단행 150주년을 맞은 일본사회가 역사논쟁에 빠진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는 견해도 나온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에 대한 재조명이 일본 보수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NHK 대하사극 <세고돈(西郷どん·사이고 다카모리의 별명)>이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사이고는 조선을 정복해 일본의 부국강병을 도모하자는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의 주창자였다. 
야스쿠니에서 전범을 분사하라는 일본 시민사회단체의 오랜 요구와 달리 일본 보수는 현재 자신들만의 역사 전쟁에 골몰한 모양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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