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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같던 남북 관계, '평창 마법'으로 녹여라

지난 1990년 남북통일축구경기에서 남한 공격수 김주성이 북한 수비수들을 제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990년 남북통일축구경기에서 남한 공격수 김주성이 북한 수비수들을 제치고 있다. [중앙포토]

만나자 이별인가 칠분간 귓속말 
자유의 품안에 돌아오라 금단아 
너도 나도 울었다네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소
-1964년 황금심 곡 <눈물의 신금단> 중에서
 
신금단(80). 1960년대 중거리 육상의 세계 1인자로 명성을 떨친 북한 여성 체육인이다. 1962년 모스크바 국제육상대회에서 400m와 8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GANEFO·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신흥국경기대회)에서는 200m·400m·800m 세 종목에서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은퇴 이후 북한 최초의 '인민체육인'으로 선정됐고, 북한 육상대표팀 감독과 압록강체육단장을 역임했다.
 
1962년 모스크바 국제육상대회 여자 4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북한의 신금단. 연합뉴스

1962년 모스크바 국제육상대회 여자 4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북한의 신금단. 연합뉴스

그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1호'다. 지난 1964년, 6·25 전쟁 중 남쪽으로 건너온 아버지 신문준 씨와 일본 도쿄에서 극적으로 상봉해 남과 북 모두에 특별한 감동을 안겼다.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불과 7분 여. 짧은 만남을 끝내고 헤어지기 전 신금단이 부친에게 "아바이!"라 외치며 눈물을 흘린 장면은 당대 인기가수 황금심의 노래(눈물의 신금단)로 재탄생했다.
 
당시 특별한 만남을 제공한 무대가 1964 도쿄 여름올림픽이다. 신금단이 올림픽 육상 트랙을 뛰진 못했다. 가네포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불온한 대회'로 규정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신금단을 비롯해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여를 막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회를 보이콧하고 철수하기 직전 남북 체육인들이 뜻을 모아 신씨 부녀의 상봉을 추진했고, 1964년 10월 극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신금단의 스토리는 지난 1985년 역사적인 '남북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및 예술 공연단' 구성의 모태가 됐다.
황금심이 1964년 발표한 '눈물의 신금단' 앨범 자켓. [중앙포토]

황금심이 1964년 발표한 '눈물의 신금단' 앨범 자켓. [중앙포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단일팀을 둘러싼 분위기는 신금단이 아버지와 만난 54년 전과 사뭇 다르다. 단일팀 추진 과정에서 '당사자'인 여자 아이스하키대표팀 선수들이 소외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포츠에 무리하게 정치적 타협 방식을 대입하는 과정에서 무려 35명(남한 23명·북한 12명)이 함께 하는 기형적(규정상 엔트리는 23명)인 팀이 만들어졌다. 맞대결할 상대팀, 지켜보는 국민들 뿐만 아니라 구성원 내부적으로도 '불편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평화 올림픽'이라는 명분을 위해 스포츠의 핵심 덕목인 공정성을 훼손한 건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평창 남북 단일팀과 관련해 "첫 단추를 잘못 꿴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물려줄 유산을 찾기 위한 노력까지 멈춰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선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지난 10년 가까이 '멈춤' 상태이던 남북 체육 교류 시스템이 재가동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6월 러시아 월드컵,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등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다시금 단일팀 이슈가 부각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논의 기간을 확보하고 객관적인 선수 선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1년 구성한 탁구·축구 단일팀을 비롯해 스포츠 단일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은 종종 선수 선발 기준을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남한은 '경기력 우선주의'를, 북한은 '남북 동수 선발'을 앞세웠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구성을 앞두고 두 나라 선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눠 평가전을 치르고 있다. [중앙포토]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구성을 앞두고 두 나라 선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눠 평가전을 치르고 있다. [중앙포토]

엘리트 스포츠에서 출발한 교류의 범위를 민간 부문으로 넓히는 노력도 중요하다. 분단 중이던 지난 1956년과 1960년, 1964년 세 차례 동·서 단일팀을 구성해 올림픽 무대를 밟은 독일이 좋은 예다. 두 나라는 올림픽 단일팀 구성에 만족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 대학, 종교단체 등 민간 스포츠 교류를 이어갔다. 충분한 경험을 쌓은 이후엔 이를 바탕으로 '질서'를 만들었다. 1974년에 동·서독이 뜻을 모아 채택한 '스포츠 의정서'는 두 나라 스포츠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만든 일종의 '모범 답안'이다. 두 나라 정부 또는 산하 단체가 스포츠 이벤트에 공동 참여할 때 필요한 준비 과정, 비용 및 역할의 분담 방법 등 세세한 내용까지 정해 놓았다. '국제 정세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체육 교류만큼은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낳은 결과물이다.
199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 1차전에서 한국의 박종환 감독(맨 앞 왼쪽)과 북한의 명동찬 감독이 선두에서 두손을 잡고 15만 관중의 환호에 답하며 그라운드를 돌아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 1차전에서 한국의 박종환 감독(맨 앞 왼쪽)과 북한의 명동찬 감독이 선두에서 두손을 잡고 15만 관중의 환호에 답하며 그라운드를 돌아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 교수는 "경-평전이나 남북통일축구가 부활하면 체육교류 확대의 신호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난으로 인해 스포츠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어려운 북한은 근래 들어 축구, 양궁, 유도, 역도 등 몇몇 종목을 '전략 스포츠'로 지정해 집중 육성한다"고 소개한 그는 "두 나라 대표팀의 경기력 차이가 크지 않은 종목부터 우선적으로 교류하면 치열한 승부를 통해 주목도를 높일 수 있고, 단일팀을 구성할 때도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민간에서 교류하기도 한결 수월하다"고 강조했다.
 
리우올림픽에서 여자 75kg 이상급 은메달을 차지한 북한의 역도 간판 김국향.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리우올림픽에서 여자 75kg 이상급 은메달을 차지한 북한의 역도 간판 김국향.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체육 교류를 통해 남북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남북 화합에 기여할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대화의 채널을 마련한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면서 "당장은 올림픽 성공 개최에 전념하는 게 우선이다. 군사 문제 등을 민감한 사안을 거론하기보다 올림픽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북미회담, 한반도 비핵화 논의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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