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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자갈치 시장통서 피어나는 인문학

“관광은 여행이 아니다. 기쁜 마음으로 낯선 것과 두려움·불편·고통과 만나러 가는 것이 여행이다. 참된 여행은 순례와 가깝다. 끊임없이 낑낑대다 어느 날 어린애가 두 발로 서는 것처럼 ‘나’를 키우는 거다. 여행함으로써 낯섦·설렘·두려움·기대·불안·아름다움 등 다양한 심리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야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고민할 수 있다.”
 
장현정(43·사회학박사) 호밀밭 출판사 대표의 강의가 끝나자 10여명의 수강생이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곧이어 진행된 수료식에서 학생들은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지난 18일 열린 청소년 인문학 아카데미. [송봉근 기자]

지난 18일 열린 청소년 인문학 아카데미. [송봉근 기자]

지난 18일 오후 생선 비린내가 나는 부산 자갈치 시장통. 깨끗하게 단장된 신동아 시장 5층 강의실은 비린내가 풍기는 1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창밖으로 부산항 풍경이 보이는 그곳에서 상지 E&A(상지 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이하 상지건축)가 진행한 ‘제5기 상지 청소년 인문학 아카데미’가 끝났다. 강의 주제는 ‘여행하는 삶’이었다.
 
수강생은 중 3학년부터 고 2학년까지 청소년 13명. 강의실에는 3명의 어른 청강자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지난 10·11일과 17·18일 네 차례 장 대표 강의를 들었다. 장 대표는 “‘I’(나)와 ‘Me ’(타인이 보는 나)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두 발로 서야 안정된 자기 삶을 살 수 있다”며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강생 이도경(16·북일고 1년) 군은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의미 있는 삶이란 세상의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15·대신중 3년) 군은 “강의를 들으면서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깊이 생각하고, 내가 한 걸음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소감을 말했다.
 
강의를 청강한 김선희(구서여중 국어과) 교사는 “방학이어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며 “학교에선 이런 수업을 하고 싶어도 교과과정이 정해져 있어 안된다. 인문학 공부를 더 해 학생 수준의 자료집을 재구성해 마음의 힘을 기르는 바탕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네 차례 강의가 끝난 뒤 장현정 호밀밭 출판사 대표(왼쪽)가 학생에게 수료증을 주고 있는 모습. [송봉근 기자]

네 차례 강의가 끝난 뒤 장현정 호밀밭 출판사 대표(왼쪽)가 학생에게 수료증을 주고 있는 모습. [송봉근 기자]

상지건축은 2016년부터 겨울·여름방학에 두 차례씩 청소년 인문학 아카데미를 연다. 지금까지 1~5기 50여명이 수강했다. 2015년부터는 성인 인문학 아카데미를 해마다 3차례씩 개최해 지금까지 1~9기까지 35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모두 참석대상에 제한이 없고 무료로 진행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역 인문학자를 강사로 선정한다. 회사가 지역 인문학자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인문학 아카데미는 김동회(71) 상지건축 명예회장이 “사내 인문학 아카데미를 열고 시민과 함께하면 좋겠다”고 제안해 시작됐다. 고영란(46) 상지건축 대외협력실장은 “어렵고 따분한 인문학이 아니라 시장통에서 만나는 인문학, 문턱을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인문학을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건축사사무소가 인문학을?’이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허동윤 (58)상지건축 회장은 “건축은 시대의 가치를 담는 예술이자 과학이며,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며 “이를 지역민과 나누고 싶었기에 지금껏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74년 설립된 상지건축은 건축설계·감리, 전기·소방감리, 해외건설업 등을 을 하는 부산·대구·서울에 상지 디앤에이 건축사사무소 등을 두고 있다. 10년 전부터 부산의 건축 문화 발전을 위한 도시건축포럼을 열고 있다. 
 
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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