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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분노 정치, 돌쇠 외교, 그리고 올림픽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1 스타일도 생각도 판이한 두 사람에게서 똑같은 단어를 들을 줄은 몰랐다. ‘분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5개월 뒤 ‘분노’를 말했다. “정치보복을 운운한 것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같은 분노지만 상대와 이유는 달랐다. 트럼프는 전 세계를 인질로 삼는 북한을 향했다. 표현은 과격했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 국제사회를 대변하는 ‘공유된’ 분노였다. 당시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어휘는 코멘트하지 않겠다. 다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했다. 개인이나 사감이 개입되지 않은 분노였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문재인의 분노는 어떨까. 청와대는 “MB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운운한 것에 대한 분노”라고 했다. 노무현이란 개인, MB에 대한 사감이 엮어낸 분노다. 그래서 호응을 얻지 못한다. 문 대통령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풀러는 “마음속이 불타면 입으로 불꽃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국민은 걱정을 금할 수 없다.
 

사감 섞인 분노는 공유, 공감 못 얻어
‘정치가 스포츠 위’라지만 더 위는 국민

#2 지난달 해외공관장 회의 당시 청와대 만찬 사진이 워싱턴에서 화제다. 대통령 양옆으로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노영민 주중 대사가 앉았다. 우 대사 옆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앉았다. 지난 정권 현직 외교장관이 대통령 옆자리에서 밀려난 적은 없었다. ‘한국의 키신저’로 불렸던 김경원 전 주미대사는 생전에 “외교가에선 그 사람이 (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지켜보고 그대로 대우한다”고 했다. 의전서열 1, 2위가 된 우·노 대사야 으쓱했겠지만, 외교 수장인 장관과 동맹국(미국) 주재 대사(강 장관 옆자리)가 바깥 자리로 밀려난 건 우리의 외교 지향점과 원칙이 뭔지 생각하게 한다. 원칙이 없다 보니 뒤죽박죽 인사가 난무한다. 워싱턴 주미대사관에는 조만간 공공외교 공사 자리가 신설된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와 언론을 상대로 ‘문재인 대미 외교’를 홍보하고 설득하는 역할이다. 뒤늦은 감이 있을 정도로 절실한 기능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내정된 이가 ‘박근혜 대미 외교’의 선봉에 섰던 북미국장이다. ‘윤병세 맨’으로 승승장구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관계자들은 “코미디 아니냐”고 비웃는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옛 정권의 공무원이 부정되어선 곤란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미 외교 전도사를 곧바로 문재인 전도사로 둔갑시켜 워싱턴을 설득하겠다는 ‘돌쇠 인사’는 공공외교는커녕 문재인 정권의 정통성, 진정성만 헷갈리게 할 뿐이다. ‘무뇌(無腦) 외교’ ‘무혼(無魂) 외교’란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3 그의 말은 정확했다. 지난해 6월 장웅 북한 IOC 위원이 언급한 “정치가 스포츠 위에 있다”는 말. 문 대통령도 아이스하키 선수들 앞에서 “남북이 단일팀을 만든다면 그 모습 자체가 두고두고 역사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똑같은 ‘스포츠 < 정치’ 논리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촛불로 태어났다는 우리 대통령은 그런 정치나 역사 강의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선수들에겐 역사보다 ‘지금’이 절실하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걸 바꾸라고 하는 건 월권이다. 올림픽이란 ‘순간’을 위해 땀과 눈물로 젊음을 바친 그들에게 차라리 “미안하다. 나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은데, 변명하지 않겠다. 두고두고 나를 탓해 다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게 문재인다웠다. 아무리 정치가 스포츠 위에 있어도 그 위에, 가장 위에는 ‘국민’이 있는 법이다. 국민은 무섭다. 기억하기 때문이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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