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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에스토니아는 어떻게 일어섰는가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동유럽 국가 가운데 체제 이행과 경제 성장에 가장 성공한 나라는 어디일까. 흔히 체코나 폴란드·헝가리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빨리 증가한 나라는 에스토니아다. 1995년 3000달러에서 2016년 1만8000달러로 5배나 증가해 그 나라들을 크게 앞질렀다. 그것도 구(舊)소련 연방국 중 하나로서 열악한 초기 조건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이다. 그렇다면 에스토니아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개방적인 문화와 제도가 그 첫째 이유다. 에스토니아는 독일·덴마크·스웨덴·폴란드·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20세기 초반 잠깐 동안 독립국가가 됐다가 다시 소련에 편입당했다. 인종적으로도 에스토니아인, 슬라브족, 독일계 등이 섞여 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는 이 피지배 경험과 인종적 다양성을 부채가 아니라 자산으로 만들었다. 개방적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든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가장 개방적인 제도를 가진 나라로 손꼽힌다. 전자영주권(e-Residency)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에스토니아에 살지 않는 외국인도 온라인으로 에스토니아에서 기업을 창업할 수 있게 했다. 에스토니아 은행을 이용하는데도 제약이 없다. 온라인 창업에 걸리는 시간도 수십 분에 불과하고 이윤을 배당하지 않는 한 세금도 내지 않는다. 그 결과 인구당 가장 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에스토니아에 몰리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가 처음 만들어진 곳도 에스토니아다.
 
성공의 둘째 이유는 실사구시적 정책이다. 90년대 초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던 시기에 사유화를 두고 여러 논란이 많았다. 러시아는 경제적 효율성보다 정치적 목적의 사유화를 했다. 기업의 내부자인 경영자와 근로자에게 기업들이 헐값으로 넘어갔고 오히려 빈부 격차는 악화됐다. 체코는 형평성에 사로잡혀 모든 시민에게 바우처를 나누어 주고 기업 주식과 교환하게 했다. 독일은 고용 유지를 최우선 조건으로 걸고 동독 기업을 사유화하다가 오히려 수백조원의 빚만 졌다. 이에 반해 에스토니아는 기업 외부인에게 주식의 절반 이상을 매각해 기업에 진정한 주인을 만들면서도 나머지 주식은 바우처를 통해 주민에게 골고루 배분했다. 효율성과 형평성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경제정책에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 정치에 이용하려 하거나 이념에 경도되지 않으면서 효율과 형평의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중앙시평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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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한 확실한 원칙을 지켰다. 자기 나라보다 인구가 110배나 많고 경제 규모 역시 55배나 큰 러시아에도 당당하게 대했다. 에스토니아 국민이 되려면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에스토니아 거주 러시아인들도 국어 시험을 보게 했다. 러시아는 이를 차별이라면서 전방위적 압력을 가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이를 본 다른 국가들은 인구 130만 명에 불과한 발트해의 작은 나라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세계의 존경을 받을 조건이 충분하다. 거대한 중국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흡수당하지 않았고 일본의 압제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 독립을 맞이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도 바로 한국이다. 공산당 독재국가인 중국과 대비되고,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를 선사받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이를 역동적으로 일구어 냈다. 동아시아의 기적, 아니 세계의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그러나 과거 성공에 비해 현재의 모습은 위중하기만 하다. 그 근본 이유는 한국 사회와 정치가 진보·보수로 나뉘어 고루한 이념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개방성과 실사구시와 원칙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진취적이며 개방적인 유전자가 있다. 대륙과 해양으로부터의 많은 침략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 것을 지키면서도 다른 것을 융합하려는 문화를 갖게 했다. 이를 이 시대에도 활용해 포용적이며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촛불의 정신은 통합적 리더십과 정책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정신에 얼마나 충실한가. 얼마나 개방적 사고를 하고 실사구시적 정책을 펴는가.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을 당당히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하는가. 그렇다면 소득 주도 성장 없이도 소득은 늘어난다. 북핵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도 여기서 나올 수 있다. 2018년 우리 사회와 정부는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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