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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1987년 장발과 막걸리와 최루탄

기자
더오래 사진 더오래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 ⑬ 오민석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1971년 서울 청덕초등학교 졸업사진이다. 당시에 ‘없는’ 집 애들은 사진에서처럼 아주 짧은 스포츠머리를 했다. 그날 따라 유달리 추워서 얼굴에 짜글짜글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이다. 제일 왼쪽은 어머님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 내 이모님이다. 저 얼어붙은 진창 운동장을 떠날 때 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키가 자라지 않았고, 내 꿈은 가수로 바뀌었다.
 
1973년 서울 용문중학교 3학년 때다. 아마도 동생의 초등학교 졸업식장에 갔다가 찍은 사진 같다. 나는 범생이 중의 범생이였지만(모자 반듯하게 쓴 것 보라!)
 
전교생이 소풍을 가는 자리에서는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올라 김상희의 ‘빨간 선인장’을 온갖 개폼을 잡고 부르던, 딴따라 기질의 소유자였다.
 
1984년 결혼식 전날, 친구들이 함을 지고 처가댁으로 쳐들어온 모습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들의 퍼포먼스를 함께 즐겼다. 요즘 같으면 소란죄로 신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얼굴에 구두약을 바른 함잡이는 대학 선배였던 고(故) 윤영선 극작가(전 한예종 교수)이다.
 
1984년 제주도에서의 신혼여행 이틀째. 저 어린 것들이 30여년이 넘도록 아들, 딸 낳고 지금도 잘살고 있다. 나를 키운 8할은 내 마누라다. 허리에 찬 ‘워크맨’도 당시에 경제력 제로였던 내게 마누라가 사 준 거다.
 
최근 영화 <1987>을 보고 많이 울었다. 정확히 그해, 1987년에 단국대학교 영문학과 조교의 자격으로 학생들과 어디론가 엠티를 가서 찍은 사진이다. 제일 오른쪽이 나다. 장발과 막걸리와 책과 최루탄이 뒤범벅된 세월이었다.
 
58년 개띠 인생 샷을 보내고 50만원 상금 타세요
중앙일보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를 함께한 58년 개띠 여러분의 앨범 속 사진을 기다립니다.        
응모해주신 사진과 사연은 중앙일보 [더,오래] 지면과 온라인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 독자의 호응이 컸거나 공유·공감·댓글이 많았던 응모작 4편은 각 50만원의 상금도 드립니다.        
 
응모 대상: 58년생(본인은 물론 가족·지인 응모도 가능)        
응모 기간: 2018년 1월 31일까지        
보낼 곳: theore@joongang.co.kr
보낼 내용        
①자기소개와 현재 프로필 사진        
②추억 속 5장의 사진과 사진에 얽힌 사연(각 300자 이상)        
※사진은 휴대폰이나 스캐너로 복사한 이미지 파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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